한국 국내정치에 촉각 곤두세우는 나라들

2025-02-06

12·3 계엄령 이후 국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와 구속 사태에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다. 그동안 문화·기술 강국으로 평가돼온 한국의 이미지와 다른 국내 정치 상황에 세계인들이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각국의 외교·안보 당국자들은 심화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경쟁 와중에 한국 상황이 자국의 외교 전략에 줄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중에 미국 정부 입장은 분명하다. 2024년 8월에 개최된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를 발전시켜 나가자는 데 대해 초당적인 지지가 있다. 지난 4년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서 최우선순위는 한·일 관계 개선이었다. 대북 억지력을 강화하고,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의 연계로 중국의 강압적 태도를 제한하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었다.

윤 대통령 탄핵 사태에 예의주시

인·태 전략 지속 여부에 큰 관심

정치권, 한국 글로벌 위상 고민을

그러나 이런 공감대가 미국 정가에 완전히 자리 잡은 것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 의원들이 지지하는 아시아 전략에 대해 아직 개인적으로 지지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따라서 미국의 한·미 동맹 옹호론자들은 윤 대통령의 한·미 동맹 중심 의제에서 벗어나거나 역행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캐나다 같은 주요 우방국에 하듯 한국을 대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시바 시게루( 石破茂) 일본 총리는 여소야대 상황이라 한·일 관계에서 전향적인 외교 정책을 펼 여력이 없다. 만약 한국에서 반일을 부추기는 정치적 움직임이 생기면,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전 경제안보담당상) 같은 숙적이 국수주의적 반한 카드를 이용해 이시바 총리를 공격할 빌미로 삼을 것이다. 최근 필자가 진행한 조사에서 일본 안보전문가의 80% 이상은 한·일 안보·외교 협력이 중요하지만 양국 국내 정치로 인해 협력에 차질이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호주도 마찬가지다.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 정부에서 한·호 양국의 국방·경제 교류가 강화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인·태 전략은 호주 정부의 인·태 전략과 일맥상통했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 위기로 양국 교류에 어려움이 생길지 우려한다.

영국도 한국의 현 정치 상황에 낙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Brexit) 이후 글로벌 무대에서 독자 생존을 모색해 온 영국 입장에서 한국은 아시아의 부상하는 핵심축이었다. 영국을 위시한 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한국의 강력한 지지 입장, 한국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IP4(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지속적 참여 여부에 예의주시할 것이다.

일부 동남아시아 우방국들도 초조하게 한국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싱가포르 ISEAS 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동남아 지역에서 한국에 대한 신뢰 수준이 아주 높다. 하지만 베트남·싱가포르·인도네시아의 외교·안보 당국자들은 만약 한국의 인·태 외교 전략이 윤 대통령 이전으로 후퇴할지에 촉각을 곤두세울 것이다.

일본·호주·베트남·영국의 공통점은 아시아 지정학이 미·중 경쟁 때문에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아시아 역내가 다극 체제이며 유사 입장국들의 협력을 통해 각국의 영향력을 키울 수 있고, 이를 통해 미국 주도 체제를 강화하고 필요할 경우 미국의 행동을 중재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 시절 적극적 외교 정책 덕분에 일본은 아시아의 다극 체제에서 주요한 파트너국가로 우뚝 섰다. 그러나 일본만으로는 부족했기에 윤 정부가 다극 체제와 인도·태평양 지역을 외교 정책의 근간으로 삼았을 때 호응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들 국가는 탄핵 사태로 윤 대통령이 새로운 외교 전략마저 날려 버린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은 중국·러시아·북한 당국자들도 예의주시하는 부분이다. 힘을 잃어 순종적으로 변하는 한국은 이들 국가의 전략에 부합할 테니 말이다. 한국 정치인 누구도 이런 질문을 회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언론과 국회가 국내 정치에만 몰두하는 가운데 부상하고 있는 여야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물어야 한다. “작금의 정치 위기가 끝난 뒤 한국의 글로벌 위상을 지속해서 강하게 유지해 나갈 복안이 무엇인가”라고 말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국 CSIS 키신저 석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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