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 과학] 수학적인 평평함을 양산하기

2025-01-02

우리는 평면에 둘러싸여 산다. 필자나 이 글을 읽는 이들의 대부분은 아마 평평한 바닥과 벽, 문, 유리창 가까이서 안정된 자세로 앉아있을 것이다. 평면 없이 곡선으로만 이루어진 방에 오래 있으면 정신이상 증세가 올 정도로 우리에게 평면은 일상의 규칙성을 다잡는 기준이자 가시적인 세상을 환원주의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분할의 도구로서 익숙하다.

하지만 이러한 평평함에 대한 감각은 우리 신체에 내재한 특성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필자에게 1리터 정도의 찰흙덩어리를 주고 수학적으로 평평한 표면을 만들라고 한다면 평평하기로 알려진 기존의 도구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아마 책상이라는 (이미 알려진) 평면 위에 찰흙을 두는 것으로 시작을 한다고 해도, 윗면을 책상과 평행하도록 깎아내는 일을 손놀림과 눈짐작만으로 한다면 금방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비교적 간단히 평평함을 만들어내는 한 가지 방법은 가열해서 녹인 양초(파라핀)를 넓은 그릇에 부어 바람 없는 공간에서 식혀 굳히는 것이다. (양초가 없으면 그릇에 물을 담아 얼려서 영하의 온도에서 작업해도 된다.) 굳어진 윗면은 매끈하고 평평한데, 이를 참조용 원판으로 삼아 찰흙덩어리에 눌러서 평면을 본뜬 다음 찰흙을 말리고 구우면 (녹는 점이 더 높은 금속 등을 부어서 복제할 수 있는) 거푸집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원시적인 작업으로 아파트, 교량 등 현대의 기반 시설을 만들 정도로 기계적인 평평함을 가진 자재를 대량 생산하는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건축 자재뿐 아니라 이를 가공하는 작업에 필요한 도구를 대량 생산하는 일조차도 평평한 면을 절삭하는 기술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필요와 이에 응답하는 발명의 연속으로 정밀 절단용 선반(旋盤)과 다른 공작기계들이 개발되었는데, 1차 산업혁명을 촉발시킨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알려진 증기기관의 발명 못지않게 이러한 도구들의 등장도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다.

그러나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응고된 물질을 다량 준비해서 참조용 원판을 만들어내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바로 정확한 직선운동을 하는 물체를 힘으로 뒷받침하는 일인데, 이것이 가능해야 칼날을 부착하고 원목과 같은 재료를 깎도록 하여 평면을 만들 수 있다. 단순한 직선운동이라면 구슬을 떨어뜨리는 것과 같이 쉽게 만들어낼 수 있지만, 이동하는 구슬에 무작정 힘을 실으면서 구슬의 직선 궤적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힘의 근원이 하나의 기준점에 고정이 된 상태로 가해져야 하는데, 이때 힘을 가하는 매개체는 그 기준점을 중심으로 원운동을 한다. 그렇다면 힘이 실린 직선운동을 만들어내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은 원운동으로부터 힘의 방향을 변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최초로 발표한 사람은 증기기관의 발명가인 제임스 와트(Watt, 1739~1819)인데, 증기기관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기제가 필요하게 되어 여러 시행착오 끝에 특허명세서에 아래 그림과 같이 “와트 링크(Watt’s linkage)”의 설계를 작성하여 1784년에 영국 특허청에 제출하였다.

점 A와 C, C와 D, D와 B 사이는 단단한(경질의) 막대기를 사용해서 이으면 되는데, 막대기 자체가 완벽한 직선일 필요는 없이 연결점 사이의 직선거리만 일정하게 유지해 주면 된다. 점 A와 B를 고정한 상태에서 수평을 기준으로 선분 AC와 BD를 잇는 막대기가 위아래로 20도까지만 회전할 수 있게 만들면 점 E는 수직의 각도를 유지한 직선운동에 ‘매우 근접한’ 궤적을 그린다. 비교적 간단한 이 설계로 양쪽의 막대기가 회전할 자유도가 주어지더라도 중간지점은 수직의 각도를 유지시킬 수 있기에 와트 링크는 오늘날에도 자동차의 균형을 유지하는 서스펜션(현가장치)의 형태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점 E에 칼날을 부착하고 옆에 나무를 가져다 댈 수 있도록 기계를 다듬고 재조립하면 우리가 처음에 원했던 기계적 평면을 깎아 만들 수 있게 된다. 나무를 고정한 상태에서는 직선 모양의 홈이 파이지만, 얕게 파인 시점에서 조금씩 나무를 회전시키다 보면 얼마 후에는 직선 홈이 넓어지면서 결국 평면으로 깎이게 된다. (직선을 아직 별도로 만들 수 없는 상황에서는 나무를 홈의 직각 방향으로 정확히 직선을 그리며 밀어낼 수는 없지만, 고정된 회전축을 한 군데 지정하여 돌리는 것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위에서 말한 대로, 와트 링크의 점 E는 직선에 ‘매우 근접’하지만 양쪽 막대의 회전 각도가 커질수록 직선 궤적에서 조금씩 벗어난다. 그러나 와트 링크를 기초로 하여 새로운 세대의 연장들이 만들어지고, 이를 사용해서 또다시 다음 세대의 직선운동 기구를 고안해 내는 작업이 반복된 끝에 19세기 중반부터는 ‘수학적으로 정확한’ 직선운동을 만들어내는 일에 성공하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아래 그림과 같은 장치를 들 수 있다. 점 A와 B를 고정하면 막대기 끝의 점 C가 원운동을 하게 된다. 이 상태에서 점 E는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직선을 그린다는 것을 프랑스의 공학자이자 육군 장교인 샤를-니콜라 포셀리에(Peaucellier, 1832~1913)가 증명하여 1864년에 발표하였다. 이 장치에서도 점 E에 칼날을 부착하고 오른쪽에 나무를 가져다 대고 회전시키면 평면을 깎아낼 수 있다.

이와 같은 장치들은 대부분 1차 산업혁명 전후로 개발되어 선반 등 평면절삭 공구의 최초 형태를 만들어 준 이후로는 우리 일상의 공산품에서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평면의 책상, 모니터, 옷장 등 생활에서 너무 당연하게 인식되는 시설들이 이러한 평면을 만드는 기술 없이는 적절한 가격에 우리에게 공급될 수 없었을 것이다. 주택을 높게 지어봤자 평평한 자재를 대량으로 공급받지 않으면 2~3층을 넘어가면서 기계적 안정성의 한계에 도달할 것이고, 이는 도시 전체의 인구밀도와 운영상의 효율에도 제한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단순한 일상의 편리함을 넘어 현대 사회의 물리적, 경제적 구조를 형성하는 데에 결정적인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평면 제작 기술은 단순히 물체를 다듬는 것을 넘어 인간의 사고방식 자체도 변화시켰다. 오늘날의 디지털 세상에서도 시각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컴퓨터와 스마트폰 화면은 대부분 평면이며 (게임의 몰입감을 위해 넓고 오목한 화면을 선호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이 평면 위에서 세계를 탐구하고 소통한다.

2023년 4월 7일자(524호) 틈새 과학에서도 다룬 적이 있듯, 물리적 세계에서 시작된 평면의 개념은 이제 가상 세계로 확장되어 인간 경험의 새로운 차원을 창조하고 있다. 동시에 평면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세상을 단순화하고, 복잡한 현실을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도록 하는 경향도 있다. 이는 사회의 갈등과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평면은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도구일 뿐임을 이해할 때, 우리는 이를 발판으로 더욱 다차원적이고 유기적인 사고방식을 함양하고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양창모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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