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 우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Belling the Cat)’는 모두에게 절실한 일이 있어도 이를 위해 위험을 감수할 사람은 희귀하다는 교훈을 준다. 2021년 2월 한 영국인이 자서전 『우리는 벨링캣(We are Bellingcat)』을 내면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 그것이 우리 단체의 이름이자 사명’이라고 천명했다. 공개정보(OSINT)를 기반으로 사실 조사(fact-checking)를 하는 탐사 전문 단체 ‘벨링캣’의 리더 엘리엇 히긴스(46)다.
인터넷·위성 활용, 민감 정보 폭로
우크라이나 정보 전쟁서 맹활약
북한군 러시아 파병 밝힐지 주목
2014년 출범한 벨링캣은 노트북과 시간만 있으면 누구든 범죄를 폭로하고 허위 정보를 가려내는 정보수집 방법을 창안했다. 전쟁터나 인권 침해 현장, 범죄가 만연한 동네, 허위 정보와 온갖 음모가 창궐하는 지역에서 진실 추구를 사명으로 내세웠다. 정보수집 활동은 개방적이고, 수집 방법은 투명하며, 수집 결과는 공개한다. 정보수집 조직은 독립적으로 운영했다.
카메룬 정부군의 민간인 살해 밝혀내
벨링캣은 시리아 내전에서 시작해 예멘 내전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러시아 야당 지도자 나발니 독살 기도 사건과 2021년 미국 국회 의사당 공격 사건 등에서 실력을 발휘했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정확한 팩트체크로 관심을 모았다. 히긴스는 벨링캣이 10년 넘게 활동을 지속하면서 ‘시민에 의한(by the people)’ ‘시민을 위한(for the people)’ 정보기관이 되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2018년 7월 여성과 아이들이 무방비로 살해당하는 동영상이 소셜 미디어에 올라왔다. 살인범이 동영상을 직접 찍은 것으로 추정될 뿐, 누가 언제 어디서 반인륜 범죄를 저질렀는지 오리무중이었다. 벨링캣이 나섰다. 동영상 속의 지형적 특징을 위성지도와 일치시켜 위치를 추적했다. 시간은 해시계를 이용한 그림자의 방향과 길이로 산정했다. 살인자의 신원은 정부 기록과 소셜 미디어 프로필로 특정했다. 그 결과 카메룬 정부군이 테러단체 ‘보코하람’ 연루가 의심되는 여성과 아이들을 살해한 범행으로 확인됐다. 이듬해 미국은 카메룬 군대에 1700만 달러를 기부하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유럽의회도 정부군에 의해 자행된 고문·실종·살인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벨링캣의 촉각은 우크라이나로도 뻗었다. 2022년 6월 우크라이나 중부 크레멘추크의 한 쇼핑몰이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즉각 러시아를 비난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쇼핑몰을 겨냥한 공습은 없었다면서 쇼핑몰 북쪽의 탄약 공장을 정밀 공습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탄약 공장 공습에서 발생한 유폭이 쇼핑몰을 덮친 것이라고 강변했다.
벨링캣은 공장 인근 CCTV에서 쇼핑몰이 먼저 공습을 받고, 공장은 뒤이어 공격받는 영상을 확보했다. 쇼핑몰 지붕이 공습으로 납작해진 데 비해 500m 떨어진 공장은 멀쩡한 위성사진도 공개했다. 쇼핑몰 직원의 인스타그램·페이스북 게시물과 쇼핑몰 고객의 영수증까지 제시했다. 러시아의 거짓말이 드러났다. G7 정상들은 공동성명을 내고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선언했다.
시리아의 북한 미사일 사용 확인
벨링캣의 광폭 그물망엔 때때로 북한도 걸린다. 2016년 3월 ‘시리아의 북한제 휴대용 방공미사일’이란 제목의 글이 벨링캣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시리아에서 북한제 무기가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두 나라가 ‘허위’ ‘날조’라며 극구 부인하던 시절이었다. 벨링캣은 시리아와 북한에서 휴대용 방공미사일이 촬영된 사진을 입수했다. 2013년 2월 알레포와 2015년 11월 라타키아에서 찍힌 사진을 북한의 열병식 사진과 비교했다. 사진 속의 휴대용 방공미사일이 일치했다. 시리아에서 북한제 방공미사일이 사용되고 있음이 그렇게 확인됐다. 이슬람 무장단체의 페이스북과 북한의 방송자료에서 확보한 사진을 과학적 이미지 분석기법으로 검증했다. 당시 벨링캣 폭로에 앞서 미국 국가정보국(DNI) 제임스 클래퍼 국장이 북한제 휴대용 방공미사일 확산을 경고했으나 국제 사회는 벨링캣 발표에 더 강렬한 반응을 보였다. 전통을 자랑하는 최강국의 정보기관이 자발적으로 모인 민간정보 요원들에 밀린 셈이다.
우크라이나 전장에 파병된 북한군에 대해 아직 벨링캣은 정보를 내놓지 않고 있다. 서로 다른 정보와 주장이 난무하는 현실이다. 북한의 어린 병사들이 우크라이나군에 포로로 잡혔는데도 북한과 러시아는 북한군 파병과 관련해 오리발을 내민다.
북한 사람들을 수사해본 경험으로 판단할 때 생포된 군인들은 북한 병사임이 분명하다. 그들은 한국 직원의 말을 잘 알아들었고 대답하는 말투도 북한 말씨가 확실하다. 고려인들의 경우 남한 사람의 말을 바로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말씨도 북한 사람과 확실히 차이가 난다. 진술 내용도 그렇다. 이들은 “러시아에 훈련 가는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 만약 러시아 국적의 고려인이라면 “징집을 당했다”고 답했을 것이다. 벨링캣이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날이 올지 기다려진다.
독립성 위해 특정 국가 기부금 거절
히긴스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독학으로 컴퓨터를 배웠다. 실직 상태에서 아이를 돌보며 틈틈이 블로거로 활동했다. 전쟁터에 가 본 경험도 없다. 그런데도 세계 최고의 무기 분석가가 되었고 독재 국가나 범죄 집단이 가장 기피하는 인물이 되었다.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벨링캣에는 히긴스를 포함한 관리자 4명과 정규직원 18명이 일할 뿐이다. 자원봉사자 30명이 돕고 있다. 개인 후원금으로 운영자금을 댄다. 독립성을 위해 특정 국가나 정부의 기부금은 거절한다. 강대국 정보기관의 가용 자원과 비교하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
신비에 싸여있던 정보기관 활동이 벨링캣 앞에서 무색해졌다. 인터넷만 연결되고 정보 분석 기법만 익히면 누구나 정보 요원이 되는 시대가 열렸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률에 있어서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거기에 한국 남자는 육·해·공군과 다양한 특수·정보부대 복무 경험까지 갖췄다. 벨링캣 같은 수준급 민간 정보기관이 나오는 건 시간문제다.
◆장석광=국가정보원에서 수사처장과 국가정보대학원 교수로 28년간 근무했다. 수사 실무부터 국제 첩보 분야까지 섭렵한 정보 전문가다. 정치공작전 뿐 아니라 심리전·법률전·정보조작전 등 나날이 치밀해지는 정보전의 세계를 소개한다.
장석광 국가정보연구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