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수피해 당하고도 다시 반지하로…"기후위기, 주거권 위협"

2024-02-22

최근 2년 새 최소 76명 기후위기 사망

취약지역 응답자 10명 중 9명 ‘심각’

“에너지성능 낮은 주택에 대한 장기적 지원 필요”

“침수 피해를 보고도 또다시 언덕에 있는 집 반지하로 이사했죠. 물난리를 겪지 않을 수 있고, 햇빛 비치는 지상으로 이사 가고 싶어요.”

2022년 8월 서울에 폭우가 쏟아졌다.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들에는 삽시간에 물이 들이닥쳤다. 침수로 현관문이 열리지 않아 한 여성 주민은 외출했던 아버지의 도움으로 창문을 뜯어 가까스로 탈출했다. 당시 옆집에 살던 발달장애 가족 3명은 끝내 탈출하지 못하고 죽었다.

당시 침수 피해를 본 한 주민은 난리를 겪고도 다른 반지하로 옮겨갔다. “어젯밤 비가 쪼록쪼록 왔는데 신림동 지하에 살던 기억이 남아 잠이 안 왔다”는 그에게 주머니 사정상 반지하 말곤 선택지가 없었다. 신림동 한 공인중개사는 “2022년 사건 직후에는 반지하 입주자를 구하기 어려웠는데 결국 사람들이 다시 찾는다”며 “(인근 반지하 주택은) 월세와 관리비 포함해서 30∼40만원이고 보증금도 1000만원 안쪽인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14일 발표한 ‘기후위기와 주거권에 관한 실태조사’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서 폭우와 태풍, 산사태, 대형 산불 등 이상기후로 인한 자연재해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최소 2022년 26명, 2023년 48명으로 집계됐다. 불과 2년 새 70명이 넘었다. 이들은 주로 거주지에서 변고를 당했다. 기후위기가 ‘적정 주거에 대한 권리’ 침해로 이어진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용역 연구를 진행한 한국도시연구소는 산불피해지역 63가구, 침수피해지역 136가구, 농어산촌 157가구, 쪽방촌·이주민 거주시설 122가구 등 총 478가구를 대상으로 심층면접조사와 기후위기 취약지역 현장조사를 벌였다. 쪽방촌이나 반지하처럼 취약거주시설 주민과 재난피해지역 주민들은 한목소리로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곳에 살고 싶다고 강조했다.

응답자 10명 중 9명(89.9%)은 기후위기가 심각하다고 봤다. ‘보통이다’는 8.2%, ‘심각하지 않음’은 1.9%에 불과했다. 기후위기를 체감하는 요인별로 나눠 보면 ‘폭우·태풍·집중호우’(56.4%) ‘폭염’(47.7%) ‘산불·화재’(18.6%) 순으로 비율이 높았다.

이들은 주거지에서 건강과 안전을 가장 위협하는 요소로 ‘습기·곰팡이’(60.3%)를 꼽았다. ‘수해’(43.3%) ‘폭염’(41.3%) ‘한파’(28.9%) ‘화재’(28.7%) ‘누전·감전’(13.2%) ‘균열·붕괴 위험’(10.5%)이 뒤를 이었다. 만들어진 지 40년 이상 지난 주거지에 사는 응답자로 좁혀서 보면 ‘폭염’(72.1%)과 ‘한파’(44.1%)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컸다.

이들은 정부의 재난 예방이 미흡하다고 응답했다. 연구진은 기후위기에 대한 정부 대응을 7개 항목으로 나눠 점수를 매기도록 했는데, 이 가운데 6개 항목이 3점(보통) 미만으로 낙제 수준이었다. 최하점을 받은 항목은 재난 예방으로 2.16점이었다. 이 밖에 재난피해자 일상회복 지원(2.17점), 재난 발생 시 즉각적인 대처(2.22점), 전반적인 대응(2.3점) 순으로 낮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정부·지방자치단체의 주거지원을 받았다고 응답한 가구는 전체 응답자의 절반(48.3%)에도 미치지 못하기도 했다.

기후위기가 주거권을 위협하는 상황을 두고 연구진은 생태가 기본 구조와 기능을 유지하면서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기후복원력’을 강조했다. 주택을 개량하고 개조해서 에너지효율도 개선하고 폭염이나 한파 등 기후재난에 따른 피해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침수방지시설 설치 등 현행 정책은 기존 주택관리 관련 제도를 개선하지 않은 임시방편에 가깝다”며 “주택 대량공급 시기에 지어진 에너지성능 낮은 주택의 기후복원력을 높일 수 있도록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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