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임실에서 부부가 운영하는 한 사업체가 관급 공사·용역을 수의계약으로 연간 80건을 수주한 것으로 드러났다. 회사 사무실과 주소, 전화번호 등이 같아 사실상 동일한 업체로 보이지만, 업체는 사업자 명의가 달라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임실군도 법적으로 문제는 없으나, 수의계약에 따른 의혹을 불식하고 공공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제도 개선안을 마련했다.
20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임실군은 지난해 2000만원 이하, 또는 5000만원 이하 공사와 물품 구매 등을 위해 임실읍에 있는 건설회사 5곳과 120여건(총 30억원)의 공사·용역을 수의계약으로 체결했다. 계약은 거의 매달 1∼4일 간격으로 반복적으로 이뤄졌다.
이는 2000만원 이하 공사·용역의 경우 수의계약이 가능한 지방계약법에, 5000만원 이하는 여성·장애인 기업을 우대하는 여성기업법과 중소기업기본법에 각각 따른 것이다.
문제는 수의계약을 체결한 회사 5곳 주소가 모두 동일한 데다 이 중 2개사는 부부가 명의만 다른뿐 같은 사무실을 운영하고 전화번호까지 동일해 사실상 한 회사나 다름없다는 점이다. 업체 두 곳이 임실군과 수의계약한 공사·용역은 지난해만 80건(18억여원)이나 된다. 같은 건물을 사용 중인 다른 3개 업체도 같은 기간 40여건을 수의계약으로 따냈다.
부부 업체는 “업체명과 대표자가 다르고 같은 사무 공간이지만 칸막이를 쳐놓고 각자의 업무에 임하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고 밝혔다. 3명의 대표가 있는 다른 회사들도 “각각의 사업체를 운영 중이고 지역에 사무 공간이 많지 않아 함께 쓰고 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임실군도 “업체 등록이 달라 별도의 회사로 구분되고 법적 계약 서류와 진행 절차 등에도 배제할 만한 사유가 없어 법적으로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수의계약의 경우 사업자 난립과 계약 독점,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공정한 경쟁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앞서 참여자치 전북시민연대가 2022년 11일 발표한 ‘최근 2년간 전북 14개 시군 1인 견적 수의계약 체결 현황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1000만원 이상 1인 견적을 통해 체결한 수의계약은 총 4만1824건으로, 전체 계약(8만2274건)의 54.2%를 차지했다. 이는 ‘지방재정365’에서 공시한 2020년 1000만원 이상 수의계약 전국 평균 31.1%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이었다. 당시 진안군이 83.0%로 가장 높았고 완주군 71.2%, 무주군 68.6% 등 순이었으며 임실군도 66.2%로 평균치를 훨씬 웃돌았다.
이에 시민단체는 “수의계약에 대한 공정성과 효율·합리성을 담보하기 위해 심의위원회를 운영하고, 특정 업체에 편중되지 않도록 계약 횟수와 금액 제한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경기도의 경우 특혜 시비를 없애기 위해 2021년부터 특정 업체와의 수의계약 횟수를 1년에 3차례로 제한했다. 하지만, 전북 지자체의 경우 지금까지 2년이 넘도록 이를 새로 도입하거나 실행한 지자체는 찾아보기 힘들다.
문제가 불거지자 임실군은 수의계약 제도에 대한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운용 개선안을 마련하고 이날 발표했다.
개선안에 따르면 사업 신청 시 공공성 검토 결과 보고서를 작성해 사적 용도 여부 등을 검토한 후 예산을 수립하게 했다.
또 업체명이나 대표자 이름만 다를 뿐 사실상 부부나 형제 등이 운영하는 ‘한 지붕 두 업체’가 수의계약을 독식하는 폐해를 막기 위해 건물 등기부등본, 임대차계약서 등에 대한 서면 심사와 방문 조사해 부적격 업체에 대해 행정처분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관내 건설업체 200여곳과 물품 용역 업체 220여개 업체를 전수 조사하고, 고의적인 ‘쪼개기 공사·용역’ 등에 대한 감사도 강화한다.
이와 함께 전자조달 시스템을 활용한 공정 경쟁입찰을 확대하기 위해 모든 수의계약 금액을 1건당 2000만원 이하로 일괄 조정한다. 지금까지는 일반 공사·용역은 2000만원 이하, 여성·장애인기업의 경우 관련 법에 따라 5000만원 이하에 대해 수의계약을 해왔다. 이 지역 공사·용역 업체는 총 200여개사, 여성기업과 장애인 기업은 각각 75개사, 22개사가 있다.
심민 임실군수는 “그동안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된 분할발주 등 수의계약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세부 추진 계획을 별도로 수립해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임실군은 인재 영입을 위해 사무보조원 등 공무직과 청사 방호 등 청원경찰에 대한 채용 방식도 바꿔 각각 필기시험, 체력 검사를 올해부터 도입한다. 지금까지는 비정기적으로 서류 전형과 면접시험만으로 이들을 채용해 왔다.
임실=김동욱 기자 kdw763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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