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콘 기사의 차량운송 거부로 레미콘 제조회사를 압박해 복지기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민주노총 건설노조 간부들에게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노조법상 노동자인 레미콘 기사가 파업을 통해 노조 간부 월급으로 쓰인 복지기금을 받은 것은 적법하다는 이유에서다. 윤석열 정부의 ‘건폭몰이’가 무리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부산지법 동부지원 이창민 판사는 지난 15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공갈),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건설노조 부산울산경남지역본부 석모 본부장과 산하조직 간부 등 7명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부산울산경남지역본부 산하 부산건설기계지부 레미콘지회는 2020년 5월, 2022년 5월 두 차례 부산·경남 지역 47개 레미콘 제조회사가 모인 부산경남레미콘산업발전협의회와 합의서(단체협약)를 체결했다. 합의서에는 협의회가 “레미콘 산업 발전 및 조합원 고충 처리, 산업안전활동 등을 위한 복지기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협의회는 협상 과정에서 레미콘 기사는 개인사업자인 데다 레미콘 제조회사와 아무런 계약을 맺지 않은 레미콘지회 상근 간부 급여로 사용되는 복지기금을 지급할 근거가 없다며 지회 요구안을 수용하지 않았다. 이에 석모 본부장 등은 레미콘 기사들에게 차량운송을 전면 거부하도록 하는 등의 방식으로 협의회를 압박해 합의서 체결을 이끌어냈다. 검찰은 2023년 석모 본부장 등의 행위를 정당한 파업 주도가 아닌 공동공갈·업무방해로 보고 이들을 기소했다.
이 판사는 우선 레미콘 제조회사와 운반도급계약을 맺는 레미콘 기사가 노조법상 노동자라고 봤다. 특수고용직인 이들은 사실상 전적으로 회사로부터 받는 수입에 의존하고, 회사 운송계획·배차지시에 따라 레미콘 운반 업무를 하는 등 전속성이 강하기 때문에 노동3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레미콘 기사가 파업이 가능한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된 만큼 남은 쟁점은 파업이 적법한 요건을 갖췄는지다. 적법한 요건을 갖춘 파업은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다.
이 판사는 복지기금이 파업의 정당한 목적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복지기금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필요한 노조활동 내지 단체교섭의 여건 형성에 필요한 범위 내의 금전으로 볼 수 있다”며 “레미콘 지입차주들이 소규모 영세 기업에서 노조 업무를 위한 근로시간면제 등 법적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해왔던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고 밝혔다. 이어 “파업이 비록 노동위원회의 조정절차를 거치지는 않았으나 이로 인해 파업의 정당성이 상실된다고까지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이 판사는 또 파업이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업무방해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건설노조는 성명에서 “부산의 레미콘 회사들이 윤석열 정권의 건설노조 탄압에 준동해 소송이 진행됐지만 정당한 노조 활동을 해온 특수고용 건설기계노동자들의 세월을 돌릴 수는 없었다”며 “건설기계노동자들이 노조법상 노동자라는 상식적이고 정당한 판결을 환영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