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이별의 성공 사례

2024-10-23

실패하면 브로커, 성공하면 참모다. ‘정치 컨설턴트’란 직함으로 정치판을 뛰어다니는 사람들 말이다. 외국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영혼의 단짝’ 칼 로브(Karl Rove)가 대표 사례다. 그는 1971년 대학을 중퇴하고는 정치에 입문했다. 부시 가문과 연을 맺은 후 아들 조지 W 부시의 선거 전략을 짰다. 몇 번의 선거를 거쳐, 마침내 부시가 대통령 재선에 성공했을 때 그의 인생은 정점에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 직후 그와 연루된 의혹이 있는 스캔들이 잇따라 터지자 백악관에서 짐을 쌀 수밖에 없었다. 백악관 정치고문이던 그가 나가지 않으면 부시 정권 자체가 흔들릴 수 있던 상황이었다. 스스로 더러운 일을 도맡았던 그에 대해 같은 공화당 사람들도 혐오하고 비난했다.

그의 선거기법 중 가장 악명 높은 케이스는 2000년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내 경쟁자였던 존 매케인을 겨냥한 ‘푸시 폴(push poll)’이라는 여론조사였다. ‘푸시 폴’은 반대자에 관한 소문 등을 퍼뜨리기 위해 실시하는 가짜 여론조사를 말한다. 그는 당시 “매케인 후보에게 흑인 혼외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대선 후보로 그를 뽑으시겠습니까?”라는 여론조사를 돌렸다. 허무맹랑한 가짜뉴스였지만, 정교하게 설계된 질문에 유권자들은 부시로 마음을 돌렸다.

부시가 로브의 악랄한 선거운동 방식을 알았다거나 승인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수십 년간 그를 끼고돌았던 이상, 책임이 없다고 하기 어렵다. 로브는 부시라는 정치적 인격의 어둡고 교활한 한 단면이다. 그럼에도 인간적 비난은 오롯이 로브에게만 쏟아졌고, 부시는 ‘정치는 잘 몰라도 인간미 있는 대통령’으로 미국인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로브 홀로 온 세상의 비난을 묵묵히 감수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버린 보스를 원망하는 말 한마디 없었다. “당신(부시)을 위해 기도하는 평범한 미국인들과 함께하겠다”는 게 그가 남긴 말이다.

로브의 인생엔 후일담이 있다. 다들 로브가 끝장난 줄 알았지만 그는 공화당의 큰 손으로 변신했다. 부자들과 인맥을 바탕으로 정치자금을 끌어모으는 역할을 하며 막후에서 정계를 주물렀다. 유력 보수 언론에도 칼럼을 기고하며 목소리를 내는가 하면, 선거 컨설팅과 강연 등으로 모은 순자산만 1200만 달러(한화 165억원)로 추정된다.

때론 성공한 ‘정치적 이혼’이 당사자(부시와 로브)는 물론이고, 나라와 국민 모두를 살릴 수 있다는 좋은 선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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