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267250)가 인도에 신규 조선소 건설을 추진하고 나선 것은 인도 조선업의 성장성이 크다고 전망했기 때문이다. 인도 정부가 국가전략산업으로 조선업 부흥을 추진하고 있어 향후 군함은 물론 일반 상선까지 대규모 발주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특히 미중 무역 갈등으로 한국 조선 업계의 경쟁자인 중국 조선사의 인도 시장 진출이 주춤한 틈을 타 인도 내 제조 생태계를 서둘러 구축하는 것이 향후 시장 선점에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8일 HD현대와 업계에 따르면 인도 정부는 2047년까지 세계 5대 조선 강국을 목표로 ‘마리타임 암리트 칼 비전 2047’ 등 조선업 육성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연간 50만 GT(그로스톤) 이상의 생산 체계를 구축해 2023년 5%에 불과한 유조선 국산화율을 2047년까지 69%로 끌어올리는 한편 현재 1500척 규모인 상선을 2500척으로 확대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야심 찬 계획이다.
인도 정부가 조선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집중 육성하려는 배경에는 조선 산업 경쟁력이 과거에 비해 크게 약화돼 인도의 국방·경제 측면에서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어서다. 실제로 인도의 선박 건조량은 2000년대 초만 해도 연간 30만GT 이상으로 세계 10위권을 유지했지만 지난해에는 4만 GT로 전 세계 선박 건조량의 0.06%를 차지하며 16위까지 떨어졌다.
인도 상선의 절반 가까이(46%)가 20년 이상 노후화된 데다 조선소 역시 규모가 작아 신규 선박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실제 인도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 코친조선소조차 길이 250m 이하 선박만 건조가 가능해 유조선 등 초대형 선박 건조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HD현대가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 투투쿠디에 신규 조선소 건설을 추진하는 것도 인도 조선업 상황과 인도 정부의 육성 정책을 동시에 겨냥한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인도에서는 이미 국영기업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신조 발주 물량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다. 인도해운공사(SCI)는 노후 선대 교체 및 확장을 위해 2030년까지 23억 달러의 선박 건조 계획을 발표했고 국영 석유 기업들도 대규모 선박 발주를 준비하고 있다.
HD현대 역시 이 같은 인도 조선 산업 환경을 파악하고 인도 코친조선소와 설계, 구매, 생산성 향상 및 해군 상륙함 사업 협력을 맺는 등 인도 정부 및 조선 업계와 관계를 밀접하게 유지해오고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인도는 해군력 강화와 에너지 물류 내재화 등을 위해 조선업을 키우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며 “신규 시장 발굴을 통해 장기 성장 동력을 확보하려는 한국 조선사들과의 필요와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미중 무역 갈등 영향으로 중국 조선사들이 인도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HD현대가 인도 조선소 건설을 추진하게 된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인도 국영 에너지 기업인 ONGC는 5월 10만 ㎥급 에탄운반선을 발주하면서 중국 조선 업체들을 배제한 바 있다. 인도에서 대규모 선박 발주 시장이 열려도 저가 후려치기로 나서는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은 부담스러운데 인도 측이 중국 기업 배제 움직임에 힘을 싣자 현지 진출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분석이다. HD현대는 이달 초 인도 국방부 산하 국영기업인 BEML과 ‘크레인 사업 협력 확대를 위한 MOU’도 체결해 조선소 운영에 필요한 기자재 공급망 구축에도 발 빠르게 나섰다.
HD현대가 타밀나두주 정부와 손잡고 현지 조선소를 설립하기로 했지만 실제 건설에 들어가려면 인도 중앙정부의 승인이 남아 있다. 현재 인도 정부는 타밀나두·구자라트·안드라프라데시 등 5개 후보지를 놓고 신규 조선소 부지를 검토해 왔다. HD현대는 타밀나두의 입지와 기후가 경쟁력이 있는 만큼 조선소 부지로 결정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타밀나두의 연평균 기온은 28도 정도로 인도 다른 지역과 비교해 무덥지 않고 9월 이후 진행되는 우기에도 비가 15일 정도만 내려 야외 작업이 많은 조선소를 운영하는 데 적당하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HD현대중공업의 조선소가 있는 울산과 비슷한 지형인 데다 투투쿠디에 대형 항구가 있어 선박 입출입 등에서 유리하다.
HD현대가 투투쿠디 조선소를 완공하게 된다면 해당 조선소는 인도 최대 민간 조선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지에서는 투자 규모가 20억 달러(약 2조 9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는데 업계에서는 이 정도 투자면 대형 도크 2~3개를 지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HD현대 관계자는 “중앙정부의 부지 선정이 남았지만 타 지역보다 경쟁력이 있는 만큼 가능성은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