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국방부는 흔히 ‘에어포스 원’으로 불리는 대통령 전용기를 두 대 운영 중이다. 둘 다 보잉 747-200B 기종으로 각각 1990년, 1991년에 도입돼 상당히 낡았다. 백악관은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대통령 전용기를 새로 장만하기로 하고 보잉사와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제작 지연으로 2027년 이후에나 납품이 가능한 것으로 전해지자 트럼프는 다른 방안을 찾아 나섰다. 유달리 급한 트럼프의 성격을 감안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다.
얼마 전 트럼프의 중동 순방에 맞춰 석유 부국인 카타르가 왕실이 소유한 최신 보잉 747-8기종 여객기를 미국에 기증한다고 발표했다. 가격이 무려 4억달러(약 5500억원)에 달해 ‘하늘을 나는 궁전’으로 불린다. 이는 개조 과정을 거쳐 트럼프의 남은 임기 동안 에어포스 원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카타르 정부는 “우리 국방부와 미 국방부 간의 거래일 뿐”이란 입장이나, 미국인들 사이에선 “트럼프가 미국·카타르 관계 개선을 미끼로 뇌물을 받은 것”이란 비판이 거세다.
트럼프 취임 후 미국과 사이가 부쩍 멀어진 대표적 국가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꼽힌다. 남아공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군사 작전을 펼치는 이스라엘을 비난하자 트럼프는 남아공을 “반미 국가”로 규정하고 미국 주재 남아공 대사를 추방했다. 또 “남아공의 백인들이 흑인들한테 인종차별을 당하고 있다”며 남아공에 대한 모든 원조를 끊어버렸다. 남아공 출신 기업인으로 트럼프의 핵심 측근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건의를 받아들인 결과로 풀이된다.
그제 미국을 방문해 백악관에서 트럼프와 만난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이 정상회담 도중 “우리도 대통령께 선물할 비행기가 있으면 좋겠다”며 “드릴 비행기가 없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카타르가 미국에 건넨 항공기를 두고 뇌물 논란이 확산하는 것을 꼬집으며 ‘우린 그런 식의 외교는 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 뼈 있는 농담이라 하겠다. 트럼프는 주저 없이 “나도 그러길 바란다”며 “만약 남아공에서 비행기를 준다면 바로 인수할 것”이라고 답했다. 욕심쟁이 트럼프가 한국으로부터는 어떤 선물을 기대하고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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