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라져도 이 말만은…

2025-05-29

부모님을 떠나 보낸 후 문득문득 그분들의 말씀이 생각나는 건 남겨진 자식들의 대부분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어머니에 관해 자주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다. 이제는 작고하신 지 3주기가 지난 어머니가 하루는 나를 부르시더니 “미리 말해 두는 것이 좋겠다”시며, 사뭇 진지하게 이야기를 꺼내셨다. “너는 엄마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딸이었다. 엄마는 여한이 없다”라고. 내가 “엄마 왜 갑자기 이러세요?” 했더니, 어머니는 어느 날 불현듯 세상을 떠나게 되면 이 말을 못할까 봐 미리 해둔다고 미소 지으셨다.

AI 예술, 삶의 무상성 일깨워

정작 생생한 건 어머니의 유언

인생의 마지막 말 미리 남겨야

당신이 세상에 없는 미래를 떠올리고 더 이상 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을 예상하여 그때 하고픈 말을 현재에 미리 당겨서 전한다는 것. 어머니의 그 말은 내게 묘한 감정의 교차를 느끼게 했다. 자신이 세상에 없는 미래와 아직 존재하고 있는 현재 사이의 간극. 그건 죽음과 삶 사이의 간극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의 언어는 그 시간적 간극을 돌아 오늘(현재)로 회귀한다. 나는 그때 아련한 슬픔으로 가슴이 먹먹해졌다.

누구나 죽음을 맞게 되지만 자신이 죽은 후의 세상을 실제로 떠올리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요즘처럼 인공지능(AI)이 대세로 되어가는 추세라면 지금 시점에서 미래를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미술 작품에서라면 어떨까. 현재에서 미래의 어떤 시점을 지정한 후 플래시백 기법으로 현재로 다시 돌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

지난 2월부터 열리고 있는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1962~)의 전시를 보았다. 그는 오늘날의 미술가 중 난해하기로 유명한데, 작업의 전반적 특성은 ‘포스트휴머니즘’이라는 최근의 사유와 맥을 같이 한다. 주로 영상 및 설치 작업을 통해 그는 인간이 자연의 생물이나 무기물, 또는 기계 등과 동일한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고 보고 인간과 비인간의 상호 관계를 모색한다.

예컨대, 이번 전시에 나온 위그의 작품 ‘카마타(Camata)’는 그 앞에 서 있는 우리에게 인간이 없을 미래를 생생하게 목격하게 한다. 이 영상 설치작업은 인적이 사라진 황량한 사막이 아름다운 석양빛을 받는 풍경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중앙에는 해골이 놓여있고 AI 통제 기계들이 자체적으로 움직이며 알 수 없는 단순한 작업을 진행한다. 해골은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서 발견된 실제 광부의 유해라고 했는데, AI에 의해 실시간 편집되는 자율적 ‘영상 설치작업’이었다. 다시 말해 로봇 팔을 포함한 다양한 위치에 장착된 카메라들이 자체 모니터링하면서 여러 각도의 장면을 기록, 실시간으로 편집되어 하나의 영상으로 구성된다. 결과적으로 시작도 끝도, 현재도 미래도 없는 비선형적 시간성을 구현하는 것이다.

영상 속에서 로봇 팔은 학습 알고리즘에 따라 인간의 해골 주위를 돌며 일련의 제스처를 수행한다. 기계들은 철공 같은 작은 사물을 옮기거나 주변에 반응하는데, 모든 움직임은 인간의 개입 없이 이루어진다. 무의미한 듯 보이는 그 작동은 인간의 의도나 관점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불그스레 번지는 노을빛이 로봇과 해골만이 덩그러니 놓인 사막을 채워준다.

위그의 영상은 인간이 사라진 후 미래의 어느 시점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공허와 쓸쓸함이 너무 실제적이라 그 디스토피아의 비전에서 벗어나 다시 현재로 돌아왔을 때 안도감을 느낄 정도다. 우리는 이 하이테크 영상을 통해 미래를 찍고 다시 현재를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인간들 사이의 온기와 눈빛, 그리고 서로의 기억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새삼 깨닫는다. 더불어 끝나지 않는 영상의 시간과 달리, 언젠가 멈춰버릴 내 인생의 시간을 짚어보게 된다.

위그의 영상은 어머니의 언어와 그 시간적 구조를 떠올리게 해준다. 다만 AI 디지털 화면이 보여주는 개념적 메시지에 비해, 인간의 체온이 깃든 어머니의 말은 나의 기억에 언어적 현존으로 각인되었다. 그래서 인간은 연약하지만 언어는 강력한 것이다. 특히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마지막 말은 미래를 살고도 남을 만큼의 힘이 있다.

우리의 남은 시간은 결코 알 수 없고 대부분의 사람은 삶의 종말에서 하고픈 말을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남겨진 말로 평생 기억될 수 있는 관계라면 미리 그 말을 생각해 두는 게 좋겠다. 나중에 내가 이 세상에 없을 때를 생각하며.

전영백 홍익대 교수, 미술사·시각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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