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빛과 멜로디

2024-11-15

조해진 작가가 <빛의 호위>를 쓴 지 십 년 만에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장편으로 만든 2024년 신작이다. 이 소설은 분쟁지역을 취재하던 기자 권은과 그녀를 취재하는 잡지사 기자 승준이 끌고 간다. <빛의 호위>와 이어지면서 배경이나 관련 인물이 늘어났다. 분쟁지역과 연관된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의미다. 2024년 현재 전쟁을 겪는 나라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시리아, 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 외에도 20개국이 넘는다.

전쟁터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고통,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끔찍함이 일상인 곳이다. 필사적으로 도망쳐 나와야 할 전쟁터로 가는 사람들, 그들은 셔터를 누를 때 모이는 빛처럼 고통에 처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민다. 이 책에는 그런 사람들이 퀼트 조각처럼 연결되어 있다. 그 조각 속에 사진 이야기가 있다.

권은과 승준은 어릴 때 친구였지만, 성인이 되어 만난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두 사람 사이에 카메라가 있었다. 승준이 건넨 카메라는 부모의 방임과 학대로 고립되어 있던 권은의 생명을 구한다. 물론 승준은 그 사실을 몰랐다. 권은은 사진을 찍기 시작한 때를 자주 떠올린다. 그리고 자신도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온기를 나눠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어쩌면 추워서, 추운 것이 싫고 무서워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지도 몰랐다. 사진을 찍을 때는 빛이 모여들었으니까. 평소에는 지붕 아래나 옷장 뒤편, 아니면 빈 병 속처럼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얄팍하게 접혀 있던 빛 무더기가 셔터를 누를 때면 일제히 퍼져 나와 피사체를 감싸주던 순간만큼은 적어도 춥지 않았으니까. 카메라를 처음 만져본 이후로, 그녀는 그 순간에 매료되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사진은 예술을 추구하면서, 현실과 현장을 기록하는 수단이기에 강력한 정치적 도구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사진을 통해 분쟁지역의 참상을 알리고, 한 장의 사진으로 가족을 잃고 남은 아이들의 비극을 보여준다. 사진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라면 다큐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될지 모른다. 사진가와 피사체의 관계도 생각하게 하는 소설 속 문장을 소개한다.

“아랍어로 낙서가 된 담벼락에 기대선 채 해맑게 웃는 두 소년의 얼굴을 담은 사진이었다. 그녀와의 인터뷰를 준비하던 때 참고 자료로 들여다본 사진들 중 하나였는데, 그녀의 다른 사진들과 마찬가지로 빛의 움직임이 제법 인상적으로 남아 있었다. 그녀의 사진을 두고 빛의 리듬과 호흡까지 담아냄으로써 비극을 잠시 잊게 하는 입체적인 판타지를 제공하면서도 그 판타지에 극적으로 대비되는 현실을 되돌려 인식하게 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사실적인 사진이며, 미학과 저널리즘이 어우러진 사진이라고.”

오영애 울산환경과학교육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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