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노 아이 반다' 모든 것은 녹음돼 있다

2025-02-10

얼마 전 타계한 전설의 감독 데이빗 린치(LA 산불이 원인이었다)의, 역시 전설적인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23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더라도 모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다만 오랜 세월이 지난 만큼 사람들의 지력도 높아져서 영화의 내용 중 어떤 것이 현실이고 어떤 것이 비현실인지를 구분할 수는 있을 정도가 된다.

영화가 얘기하는 것 중 어떤 것이 실제로 벌어졌고 어떤 것이 벌어지지 않은 일인가. 그 경계를 구분하는 것이 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정작 더 중요한 것은 그런 구분이 정말 필요하냐는 것이다.

멀홀랜드 드라이브, 곧 멀홀랜드 도로는 할리우드 블로바드(대로) 혹은 선셋 블로바드 같은 LA의 주요 거점에서 휴양지인 산타 모니카로 넘어 가는 능선 도로 길이다. 비교적 위험한 산길 도로이고 그 아래 가파른 비탈에는 영어로 할리우드 알파벳 입간판이 크게 설치돼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정상에는 전망대가 있으며 그곳에서 LA 도시 전경과 그 너머의 태평양 바다를 볼 수 있다.

멀홀랜드 드라이브 전망대에서 보는 LA의 야경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등장한다. 특히 필름 누아르(film noir)나 미스터리 영화에서 많이 쓰인다. 추적 씬, 비밀스러운 만남, 돈 거래, 정부와의 밀회 등등이 다 이곳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찍힌다.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이야기, 서사의 축은 크게 두 가지이다.

일단 캐나다 온타리오 딥 리버에서 온 배우 지망생 베티(나오미 왓츠)가 LA 공항에 도착하는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베티는 고모이자 할리우드 배우인 루스의 비벌리 힐스 집에 머물 예정이다. 당연히 베티는 꿈에 부풀어 있다. 그녀는 중간에 누군가에게 끌려가 대형 세트장에서 진행되는 오디션 현장을 구경하게 된다. 거기서 나오는 노래가 린다 스콧이 부르는 ‘내가 모든 별들에게 얘기했지(I’ve told every star)’일 정도이다. 그녀는 자신이 무비 스타가 되거나 연기파 배우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베티는 고모 집으로 온 첫 날부터 이상한 일에 직면하게 된다.

자신의 이름이 리타라고 하는 여자(로라 엘레나 해링)가 샤워를 하고 있었던 것. 그러나 리타라고 하는 이름도 여자가 벽에 걸려 있는 리타 헤이워드 영화의 포스터를 보고 문득 생각한 것이어서 진짜는 아니다. 아무 것도 기억을 못한다는 리타의 지갑에는 막대한 돈이 들어 있다. 돈에는 피가 묻어 있다. 그녀는 차 사고가 났다고 한다.

다음 날 베티는 리타를 데리고 패스트 푸드 점인 윙키스(Wimkie’s)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리타는 웨이트리스의 이름표를 보다가 자신의 본명이 다이안 셀윈이라는 걸 기억해 낸다.

두 여자는 전화번호부에서 다이안 셀윈의 주소를 알아내고 그녀의 집으로 가게 되지만 놀랍게도 부패되고 있는 한 여인의 시신을 발견하게 된다.

리타인지 다이안인지, 미스터리 여인은 시체를 본 후 머리를 자른다. 그녀는 가발을 쓰고 금발 행세를 한다. 베티는 그런 그녀와 섹스를 한다. 베티와 자던 리타는 잠꼬대를 하는데, 계속 ‘실렌시오’ ‘노 아이 반다’라고 중얼거린다. ‘노 아이 반다’는 ‘밴드는 없다’라는 뜻이다.

이야기의 또 한 축은 아담 캐셔라고 부르는 영화 속 영화감독(저스틴 셔룩스)이 겪는 일이다.

그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갱단인 카스틸리아네 형제에게 쫓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담 캐셔는 또 제작자와 매니저로부터 캐스팅 압력을 받고 있는데 본인이 그다지 마땅지 않게 여기는 여배우 카멜라 로즈를 기용해야 할 참이다.

그는 모든 협상을 거부하고 회의장을 박차고 나온 후 집으로 간다. 집에는 아내가 수영장 관리를 하는 남자와 동침을 하고 있다. 아담은 아내의 남자에게 두들겨 맞고 집을 나온다.

한편 베티는 할리우드의 한 제작사에 들러 오디션을 보고 만족해서 나오지만 다른 여배우에게 이끌려 한 촬영 현장에 가게 되는데 그게 바로 아담 캐서 감독이 촬영하는 곳이다. 거기서 베티는 카멜라 로즈라는 여배우를 보게 된다.

총 러닝 타임 140여 분, 그러니까 2시간 20여 분 중 2시간째에 이르면 모든 인물이 뒤죽박죽이 된다. 베티는 어느 덧 다이안으로 불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베티가 정작 다이안이라 불렀던 미스터리 여인은 카밀라가 돼 있다. 베티는 리타가 됐다가 다이안으로 된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누구인가. 이것은 한명의 얘기인가 두명의 얘기인가.

이쯤되면 영화의 처음을 떠올려야 한다.

오프닝 타이틀이 뜨기 전 영화는 일군의 젊은이들이 지르박을 추며 신나게 노는 장면을 보여 준다. 장면은 상당히 키치적이다. 유치한 아이들의 모습을 담아 내기 때문이다.

그 다음 컷으로 바로 ‘멀홀랜드 드라이브’라는 타이틀이 뜨고 곧 이 도로를 달려 가는 자동차를 보여 준다. 자동차 안에는 리타 혹은 다이안, 나중에는 카밀라라 불렸던 여인이 타고 있다.

여자가 길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운전석의 남자가 돌아 보며 총을 겨눈다. 남자가 뒷 좌석 문을 열고 총을 쏘려는 순간 좀 전에 지르박을 추던 아이들이 두 대의 차에 나눠 타고 과속으로 달리다 여자가 타고 있는 차와 충돌한다.

차는 거의 반파가 되는데 차에서 간신히 기어 나온 여자는 혼이 나간 모습으로 산 아래로 내려 와 어떤 집에 숨어 들어 가는데 그게 베티의 집, 베티 고모의 집이다.

이야기가 도무지 어떻게 되는 것인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영화의 마지막 10분은 모든 것을 정리해 준다. 물론 한번에 깔끔하게 정리되지는 않지만 누가 무슨 짓을 벌였고 누가 현재 어떻게 된 것인지를 알게 해 준다. 이 모든 이야기는 누군가 죽어가는 찰라의 순간에 떠 오른 파노라마의 기억이자 환상이다. 영화는 그 순간을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에서 실렌시오 클럽 장면이 매우 중요하다.

실렌시오는 리타=다이안이 베티와 자면서 잠꼬대로 중얼거린 말이다. 두 여자는 실렌시오 클럽에서 마술쇼와 스탠딩 코미디를 본다.

무대 진행자는 계속 떠든다. 노 아이 반다, 노 아이 반다. 밴드는 없습니다. 모든 것은 녹음된 것입니다. 저는 불지 않는 트럼본 소리를 좋아 합니다. 그러면 트럼본 주자가 나와 녹음된 음악에 맞춰 립씽크로 연주를 한다.

유명 여가수 레베가 델 리오가 나와 졸란도(Llorando), 곧 크라잉(Crying)을 부르다 졸도를 하기도 한다. 실렌시오 클럽은 일종의 이 영화 자체를 암시하는 메타포이다. 모든 것은 녹음돼 있다. 모든 것은 연출된 것이다. 모든 것은 다 환상이다 라는 것을 말해 준다.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모든 것은 환상이다.

데이빗 린치의 초현실주의적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영화의 스토리 텔링이 지니는 무한한 확장성, 그 상상력의 극치를 보여 준다.

인간은 상상할 수 있고 거짓을 진짜처럼 꾸밀 수 있으며 인간의 삶은 때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서 있는 것과 다름 아님을 보여 준다.

안젤라 바달라멘티의 음악은, 그의 음악이 린치 영화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것인 가, 영화와 영화음악의 조합이 갖는 최고치를 보여 준다.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린치의 죽음을 추모하며 현재 국내에서 특별 상영중이다.

[ 경기신문 = 우경오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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