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좋다는 운동 왜 하기 싫을까 "사람은 그렇게 진화된 생물[BOOK]

2024-10-18

운동하는 사피엔스

대니얼 리버먼 지음

왕수민 옮김

프시케의숲

오래달리기를 잘하는 구석기인들이 동물이 지쳐 죽을 때까지 쫓아가 사냥을 했다는 이야기를 어렴풋이라도 들어보았다면, 이 책의 지은이 대니얼 리버만의 영향을 이미 받은 셈이다. 하버드대 인류진화생물학 교수인 그는 2004년 오래달리기가 인류 진화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해 고인류학계의 흐름을 바꾼 장본인이다.

오래 달릴 때 과열되는 체온을 견디기 위해서 본래 고열에 유난히 취약한 뇌세포가 증가했다든지, 육류 공급이 증가한 덕에 뇌와 신경계 발달이 용이했다든지, 그렇게 뇌가 커진 덕분에 지능이 발달했다든지 등은 모두 리버만의 연구에서 비롯된 이야기다.

그의 전작 『우리 몸 연대기』가 인류의 진화사를 전달하고 여러 함의를 스케치하는데 주안점을 둔 반면 『운동하는 사피엔스』는 사람들의 피부에 와 닿는 질문들을 풀어가는 방식으로 구성을 바꾸고 범위를 넓혔다.

이 책은 많은 사람이 은연중에 품는 불안을 바탕에 깔고 시작한다. 운동이 건강에 그렇게 좋다는데, 왜 나는 자꾸 빈둥거리고 싶어할까. 내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저자의 답을 짧게 요약하자면 “그렇지 않다. 사람이란 생물은 그러도록 진화했다”. 그럼 우리는 건강하지 않게 살도록 운명지어진 것인가? 역시 그렇지 않다. 각종 만성질환과 기능장애는 짧게는 몇백 년, 길게 보아도 몇천 년 간 일어난 생활환경의 변화를 몸의 진화가 따라잡지 못한 탓이니, 적절한 대처가 가능하다. 잘못된 신화들에 매몰되지 않는다면.

다만 이런 짧은 요약은 지은이가 경계하는 잘못된 신화가 되기에 십상이다. 책은 운동에 대한 신화들이 왜,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를 인간 신체의 진화 과정과 엮어서 이야기한다. 앉아 있기는 무조건 건강에 나쁘다거나, 나이 들면 몸을 덜 움직이는 게 정상이라는 등의 12개 신화다. 처음 10개는 신체 활동 부족, 근력, 지구력에 대한 것들이고 마지막 2개는 더 나은 운동을 막는 신화들이다.

첫 장에서는 '운동 잘하는 야만인 신화', 즉 자연적인 인간인 야만인은 운동을 잘하니, 그렇지 못한 문명인도 달리기를 통해서 원래의 건강한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부서진다. 달리기 잘하는 것으로 찬양받은 고지대 부족민이든 문명인이든 쓸데없는 운동을 싫어하는 것은 마찬가지란다.

마지막 13장은 비만, 암, 우울증, 불안증 등 현대인이 고통받는 8종의 비전염성 질환과 운동의 관계를 거론한다. 신화를 해체하려는 과학자답게 근거 없는 희망이나 일방적인 처방 따위는 제시하지 않는다. 예컨대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을 낮추는 방법은 신체 운동이 유일한 최선책이지만, 어떤 운동을 얼마나 해야 가장 효과적인지는 아직 빈약한 이해밖에 없다고 한다.

평생 건강하게 운동할, 믿고 따를 처방을 기대한 독자라면 실망할 수 있다. 그보다는 이런저런 비방들과 상식들이 왜 서로 충돌하는지, 그런 혼란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 넓고 느슨한 지침을 제시한다. 그 와중에 툭툭 튀어나오는 정보와 통찰을 읽어내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건강에 좋겠거니 항산화제를 복용했더니 오히려 산화 손상이 심해지는 경향이 발견됐단다. 근육은 몸을 움직이게 할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생리적 기능도 하니, 꼼짝없이 의자에 앉아 공부하게 하면 건강에 해로울 뿐만 아니라 집중력도 떨어진다. 그렇다고 입식 책상이 건강에 좋다는 증거도 없단다.

순수과학의 '쓸모'를 묻는 질문은 종종 몇몇 부류의 쓸모만을, 당장 써먹을 단답형 답변을 염두에 두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그런 식으로만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보다 넓은 세계를 보여주면서, 그런 세계를 가이드 삼아 덜 불행하고, 덜 헤매고, 덜 자해하는 삶으로 가는 길로 안내한다. 어폐가 있지만, 응용 순수과학이라고 불러도 될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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