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문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 "식탁물가 올해 더 힘들어… 정부, 기후플레이션 대응 지원을" [세계초대석]

2025-01-14

기후변화TF, 7대 혁신방안 내놔

가뭄·폭우에 강한 신품종 종자 육성

저온창고 확충·저탄소 농어업 전환

온라인 도매시장·직거래장터 활성화

식량 무기화 가속… 안보 직결

主食, 5곡으로 확대… 쌀 과잉생산 탈피

비축량 등 통계농업 선제적 수급 관리

사계절 수확 ‘스마트팜’ 시설 지원 시급

K푸드 최대 수출 실적 명암

업자뿐 아니라 농어민도 수혜 봐야하나

비싼 유통비·식품가공 체제 미비로 한계

고부가 창출 인프라 구축 정책 지원 필요

“지난해 농산물 가격 급등으로 고생했지만, 올해는 더 어렵다고 본다. 기후변화로 농산물 작황 부진이 심한데, (이에 대처할) 법과 제도는 미흡하고 국가정책 뒷받침도 덜 돼 (우리 농어민이) 몸으로 막을 수밖에 없는 한 해가 될 거라는 걱정이 든다.”

국내 농수산식품 수급을 책임지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홍문표 사장은 올해 물가를 전망해달라는 말에 이렇게 솔직히 진단했다. 홍 사장은 이어 “기후변화가 국가적인 어젠다로 본격 거론된 게 5년 정도 됐으나 저탄소 친환경 농법이다 뭐다 했지 더 깊은 각론이 없었다”고 돌아봤다.

충남 홍성·예산에서 4선 국회의원을 지낸 홍 사장은 국회에서 주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몸담았던 전문성을 살려 지난해 8월 aT 수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5개월여 국내외 사업장을 둘러보면서 농업현장의 애로를 직접 확인했다.

지난 3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난 그는 “(명함에) ‘농어촌·농어민(축산)이 잘살아야 대한민국이 강한 선진국 된다’고 적어놨는데, 실제로 복지국가인 호주, 덴마크, 스위스 모두 농어민이 잘산다”며 “비교해보면 우린 더 나이 들었고 병들었으며 빚도 많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홍 사장이 취임 일성으로 기후변화 태스크포스(TF)부터 꾸린 것도 이처럼 고령화 등으로 생산성이 더욱 떨어진 농어민을 돕기 위한 ‘각론’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절실함에서 비롯됐다. TF가 정립한 7대 혁신방향(△친환경·저탄소 농어업 전환 △씨종자 신품종 개량 △저온비축기지 거점별 광역화 △온라인 도매시장과 직거래 장터를 통한 유통구조 개선 △‘국민 주식(主食)’ 개념 전환 △통계농업 및 사계절 스마트팜 △농수산식품 수출로 ‘식품 영토’ 확장)에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만 더해지면 “대한민국은 농산물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작년 11월과 12월 대전과 서울에서 K푸드 수출에 관심 있는 농민들을 모시고 공청회를 했는데 서너 시간 계속 질문하는 등 열기가 대단했다”며 “이렇게 정부에 요청할 것을 준비해놨는데, 이번 정치 파동에 제출을 못하고 있어 더욱 안타깝다”고도 했다.

또 “‘기후플레이션’(기후+인플레이션) 시대에는 식량의 자급 가능 여부가 안보와 직결된 ‘무기’로 인식돼야 한다”며 “부족한 식량을 누가 먼저 확보하고, 발전된 농어업 기술로 새 자원을 개발·육성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선진국 기준이 달라질 수 있으며, 남북통일에도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홍 사장과의 일문일답.

―7대 혁신방향이 어느 정도 진척됐는지 궁금하다. 먼저 기후변화를 이길 수 있는 신품종 개량 성과물을 언제쯤 기대할 수 있나.

“농촌진흥청과 함께 병·해충, 가뭄 및 폭우 등의 극한기후에 저항성이 높고, 속성재배를 통해 단기간에 수확할 수 있는 종자를 육성 중인데, 3월 정도면 서너 가지 내놓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종자로 생산했더라도 국내 저온창고는 우리 공사가 운영하는 14곳 등에 그쳐 오랫동안 저장할 수 없다. 세계 최대의 곡물회사인 카길은 3년간 영양, 빛깔, 당도 모두 신선하게 유지해주는 최첨단 저온창고를 운영한다. 공사 저온창고는 대부분 40∼50년 된 시설이다. 국내 대기업이 수출에만 힘쓸 게 아니라 저온기지 현대화도 등한시하면 안 된다. 정부도 능동적으로 나섰으면 한다.”

―보통 5∼6단계를 거치는 농산물 유통구조로 농민은 제값을 못 받고 소비자는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는 불만이 크다.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과 공사가 참여 중인 온라인 도매시장은 2∼3단계까지 단축해주는 혁신적인 플랫폼이다. 작년 거래 금액은 목표치인 5000억원을 넘었고, 올해는 1조원을 바라본다. 2027년에는 현 가락시장 거래 규모인 5조원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노르웨이 등에서 오래전부터 보편화된 직거래 장터도 대안이다. 지난해 홍성과 예산에서 군수가 품질을 보장한 지역 농산물로 시범사업을 했는데, 국내 급식시장 1위 업체 삼성웰스토리가 상담을 통해 10∼20% 싼 가격으로 싱싱한 농산물을 대거 구매했다. 직거래 장터를 확대하려면 생산자인 농민이 일일이 나설 수 없는 노릇이고, 국가의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 기획재정부에선 난색을 보이던데, 예산만 확보하면 공고를 내고 심사를 통해 지방자치단체 15∼20곳을 선발할 계획이다. 이에 더해 직거래 장터에 ‘이동 보건소’를 설치해 농민이 침이나 주사를 맞고 약도 탈 수 있도록 보건 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역축제처럼 문화행사를 여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지난해 ‘금배추’, ‘금사과’로 식탁물가가 급등했다. 대비 방안은 마련됐나.

“도매시장 경락가격, 반입량, 기후 등의 데이터를 활용해 적기·적정 비축량 산출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이런 통계농업을 기반으로 계약재배를 활성화해 선제적 수급관리를 할 수 있다. 도매시장에 상장돼 거래 중인 배추, 무, 양파부터 먼저 추진한 뒤 검토를 거쳐 품목을 확대할 계획이다. 계약재배를 통해 필요한 물량의 70% 정도를 생산하고 나머지는 자연농, 즉 텃밭에서 기르는 이들에게 맡기면 된다. 계약재배 물량이 예상보다 많이 나오면 정부가 수매해주면 된다. 정부는 또 스마트팜을 통한 4계절 농업을 해야 한다고 권장하는데, 시설 비용이 관건이다. 농민이 모두 부담하라 하면 대출받아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중앙정부에서 60%, 지방자치단체에서 30% 각각 지원하고 10% 정도는 농민이 부담하는 구조라야 안착할 수 있다.”

―주식 개념을 쌀에서 밀과 콩, 옥수수, 보리를 더한 5곡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게 aT 기후변화 TF의 제안인데, 어떤 취지인지.

“2022년 기준 국내 쌀 자급률은 105%다. 쌀의 과잉 생산에서 벗어나려면 오곡을 주식으로 하는 농정 시스템으로 변모할 필요가 있다. 미국 등 선진국은 그렇게 하고 있다. 전쟁과 같은 비상사태 때 수급도 쉬워진다. 나아가 식량은 무기라는 사회운동으로 승화해야 한다고 본다. 쌀 외 오곡 생산을 확대할 수 있는 신규 사업을 정부에 건의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생육기간이 짧아 밀 등 동계작물과 함께 이모작을 할 수 있고, 수확량이 많은 논콩 신품종인 ‘선유 2호’ 등을 정부가 수매하면 논작물 전환을 유도할 수 있다. 보리는 전략작물 직불금 외 육성책이 없는 만큼 지원사업을 활용해 생산을 장려해야 한다고 본다.”

―지난해 K푸드 수출액(농식품 분야) 99억8000만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올해 전망은.

“희망적으로 보지 않는다. 업자만을 위할 게 아니라 농어민에게도 이익이 되는 수출이어야 한다. 농민이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해 공사의 전 세계 20개 지사를 통해 수출한다고 예를 들어 보자, 농민이 생산과 저장, 유통은 물론이고 가공까지 모두 개인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라면이나 과자류 등 가공식품이 전체 수출을 견인하고 있다. 생산한 농산물을 가공해야 부가가치가 붙는데, 현재는 농민에게 다 맡겨놓은 실정이다. 그나마 우리 공사가 유일하게 행정적·기술적으로 도움을 주는데, 정부의 지원이 더 있어야 한다고 본다. 제 판단으로는 현재의 예산 지원은 (수요 대비) 20% 정도다. 이런 부분이 공사와 제가 안고 있는 큰 고민이기도 하다. 우리 딸기 품종이 해외에서 인기를 얻어 품귀 현상을 빚는다. 최근 태국과 인도에서 수입을 더 할 수 있냐는 연락이 왔는데, 우리 농가에서 그만큼 더 생산·유통을 할 수 없다고 하더라. 수출을 해도 유통비용 탓에 많이 남지 않아서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해줘야 한다. 정부와 국회에서 고민해보길 바라고, 꼭 그렇게 되길 간청한다.”

―이른바 농수산식품 영토 확장에도 힘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수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도와 신규 수출기업으로 육성하고 대·중소기업 협업 모델을 확산하는 한편 등 수입국의 비관세장벽 대응도 강화하고 있다. 또 포도와 배, 딸기 등은 기후변화 대응 신품종을 발굴하고, 건강기능식품 등 고부가가치 유망 품목도 지속해서 발굴하려 한다. 전체 수출의 46% 수준이 일본·중국·미국 시장에 편중돼 있는데, 중동과 중남미, 인도 등 미개척 시장 개척을 적극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홍문표 aT 사장은… ●1947년 충남 홍성 출생 ●건국대 농화학 학사 ●한양대학교 사회복지정책 석사 ●제17·19·20·21대 국회의원 ●국회 유류피해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 ●제19대 국회 후반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제20대 국회 후반기 교육위원회 위원장 ●자유한국당 사무총장 ●대한하키협회 회장 ●국회 국회의원 태권도연맹 총재 ●aT 사장

대담=황계식 논설위원, 정리=이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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