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움에 처한 농업이 도움을 청해야 할 곳이 정치계여야 할 텐데 오늘의 형편은 그렇지 못한 듯하다. 국민의 어려움을 풀어가는 정치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들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 매끄럽고 타의 모범이 돼야 하지만 현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현재의 정치난국을 풀어가는 단초를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 국민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잠시 인류문명의 생성과 지속을 위해 최초로 등장한 생업이 농업이라는 것을 상기해보기로 하자. 인간 생명 유지를 위한 영양분이라는 기본 요소를 농업이 제공하고 이 산업을 기초로 해서 다른 산업들과 필요한 사회제도가 파생했다. 그러면서 복잡해진 사회제도를 조절하는 가장 상부에 정치가 존재하기에 이르렀다. 인류문명과 함께 발전한 여러 산업과 복잡해진 사회운영상 파생되는 여러 갈등을 해결하고 조정해나가는 통치행위에서 정치의 존재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어느 국가에서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내부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원만하게 풀어가지 못하는 혼란한 상태에 이르게 됐을 때, 우리는 인류가 발전시켜온 첫 산업으로서 농업의 기본적 성격이 무엇인지 살펴보며 이 혼란을 해결해나가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인류가 발전시켜온 여러 산업 중 가장 먼저 출발한 농업 속에서 우리가 잘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던 인간이 지닌 집단적 의식의 특성 속에 상생으로 가는 지혜의 길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산업으로의 농업이 지닌 첫번째 특성은 ‘생명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생명을 대상으로 하는 산업에는 여러 종류가 있을 수 있다. 반면 가장 넓은 범위의 생명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종사자인 농민 생활의 공간 또한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자연환경과 가장 근접해 있다는 점에서, 농업이라는 산업이야말로 가장 원천적인 생명산업이다. 이 생명산업에서 ‘거짓’은 금방 들통이 나서 오래 지속될 수 없고 ‘정직과 진실’만이 생명을 살리고 키워갈 수 있다.
농업의 두번째 산업 특성은 종사자들이 ‘지속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로서는 농업생산에 결정적 기초가 되는 농지를 단기가 아닌 장기적 관점에서 생산성 향상과 유지를 해야 성공적인 농업경영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는 농업은 결국 실패한다는 점을 가슴깊이 깨달아가는 것이 진정한 농민의 자세이다.
농업의 세번째 산업 특징은 자기 생산물을 선택하는 소비자와의 관계가 기본적으로 ‘상생의 관계’를 지닌다는 점이다. 영농 종사자는 자기 생산물을 선택해주는 최종 소비자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는지에 관계없이, 그 소비자와의 상생 관계를 잊어버리고 자기만 살겠다는 ‘독자적 생존’을 염두에 둘 때, 그 순간부터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이상 산업으로서 농업이 지닌 세가지 특성에 비춰 정치계가 인식해야 할 세가지 덕목은 분명하다. 첫째 ‘생명을 대상’으로 하는 농업특성으로부터 ‘정직’을 깨우쳐야 한다. 둘째, ‘지속가능성’으로부터는 정치가 ‘단기적 승부’가 아닌 ‘역사적 평가’가 기다리는, 오랜 기간에 걸쳐 지속되는 끈질긴 승부의 세계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셋째, ‘상생의 관계’로부터는 정치의 대상인 ‘국민’과의 상생뿐만 아니라 정치적 이념을 달리하는 상대방과도 장기적으로 상생하는 관계에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내수 향토지적재산본부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