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새해가 밝으면 여기저기서 한 해의 흐름을 짚어보는 예측들이 쏟아진다.
정치, 경제, 사회 등등 문화예술분야도 그렇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2025~2027 문화예술 트렌드’를 발표하며, 앞으로 예술계의 변화를 이끌 10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대표적 키워드는 예상대로 인공지능(AI)이다. AI등장이 예술인의 작업환경에 변화를 주고 창작 방식에서 영향을 줄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예술과 인공지능. 이 둘이 과연 어울릴까. 과연 AI는 사람의 상상력을 뛰어넘을 수가 있단 말인가.
감성과 이성, 창의성과 계산, 인간과 기계가 함께 걷는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그러나 이미 세상은 그런 물음을 던질 틈조차 주지 않는다. AI는 음악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무용의 안무도 창작하고 있다. 지난해 AI가 그린 그림이 경매에서 수천만 원에 팔렸고, AI가 작곡한 음악은 영화와 게임의 주제곡이 된다.
이 변화 앞에서 예술가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AI가 창작의 영역을 넘보는 듯하고, 인간만이 지니고 있던 고유한 감성과 상상력이 흔들리는 것 같으니 말이다. 그러나 예술의 역사는 언제나 변화와 혁신의 흐름 속에 있었다. 19세기 사진기의 발명과 보급은 인물과 자연을 충실히 재현하던 화가들에게 그야말로 충격적인 사건이자 위기였다. 화가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물을 그대로 묘사하지 않고 화가의 시각에서 재해석해 그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인상주의라는 새로운 화풍을 예술을 탄생시킨 배경이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AI도 다르지 않다.
이쯤 해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AI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할 것인가?’이다. AI를 경쟁자가 아닌 동행자로 바라보는 것. AI는 예술가의 감각과 상상력을 대체할 수 없다. 다만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작업을 대신하며, 예술가가 더 깊고 넓은 사유와 감성을 창작에 담아낼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기술과 예술이 서로 보완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것. 바로 그 지점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런 변화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디지털 기술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이제 예술가도 AI와 디지털플랫폼을 자연스럽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 AI 기반 창작 도구를 배우고 익히는 일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예술가들도 교육을 통해 기술과 예술이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윤리적이고 법적인 기준도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AI가 만들어낸 창작물은 누구의 것인가?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아직도 불분명하다. 예술계, 법조계, 그리고 정책 당국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술은 앞서가고, 우리는 뒤따라가며 혼란만 겪게 될 것이다.
AI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창작이 특정 집단에만 사용되지 않도록 기술 접근성도 고려해야 한다. 자본과 기술력이 집중된 곳에만 기회가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지역 예술가 등 누구나 기술을 쉽게 접하고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술의 본질적 가치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이 예술의 경제적 가치를 키우는 데 집중된다면, 예술의 가치와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예술은 사람과 사람을 잇고, 사회의 상상력과 공감을 확장하는 힘이다. 기술을 활용하되, 그 과정에서 예술의 공공성과 책임을 잊어선 안 된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예술은 언제나 변화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왔듯 열린 사고로 기술을 이해하고,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며, 책임있는 자세로 나아갈 때, 우리는 예술의 또 다른 지평을 열 수 있을 것이다. 2025년 을사년(乙巳年) 새해!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다.
최영규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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