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의 베팅, 판돈은 국회: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돼?!

2024-07-04

차별과 혐오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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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9일, 마크롱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했다. 그리고 3주 만에 총선이 이루어졌다. 이 기간 동안 프랑스 사회는 전에 없이 흉흉해졌다. 이전까지만 해도 자신들만의 커뮤니티 안에서, 혹은 인터넷에서만 뱉어내던 외국인, 인종, 여성, 성소수자 등 모든 형태의 약자에 대한 혐오 발언과 행동들이 프랑스 곳곳에서 실제로, 즉 오프라인, 면대면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파리 북서쪽에 위치한 노르망디의 루앵 시의 한 상점은 거리 입간판에 이런 문구를 써 붙였다.

"이 가게는 캄보디아 출신 프랑스인이 운영하는 가게입니다. 이 점에 대한 손님 여러분들의 의견, 논리, 농담 등은 저희 가게가 아닌 다른 곳, 이를테면 소셜네트워크나 화장실 등에서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적당히 예의를 차린 문구에는 손님들의 언행에 대한 주인의 '빡침'이 그대로 전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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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교외 지역에서는 지난 유럽의회 선거에서 국민 연합이 선전한 이후, 여기에 고무된 한 프랑스의 코카시안 부부가 자신의 이웃인 유색인 프랑스인에게 "이 원숭이야 너네 집으로 돌아가"라는 등의 발언을 하는 것이 방송에 그대로 송출되기도 했다. 극우 지지자들에게는 이제 더 이상 뇌에서 입을 통하는 필터가 필요 없어진 듯했다.

한편, 프랑스의 진보 단체들은 거의 일주일에 한 번꼴로 전국적인 규모의 집회를 조직했다. 그들의 목표는 하나였다. 바로, 진보의 재결합.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 사회당(PS), 공산당(PCF), 녹색당(LV) 등이 연합하여 극우를 저지하고, 현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6월 15일 집회에는 프랑스 전역에서 64만여 명(경찰 추산 24만)이 거리로 나와 좌파연합 신 인민전선(NFP)을 지지하며, 극우 저지에 힘을 보탰다.

2024년 6월 15일, 파리 레퓌블릭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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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의 목소리가 거세질 수록,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RN)은 이 이번 총선에서 이민정책 강화를 비롯해 사회복지 제도를 프랑스 시민들에게만 제공해야 한다는 등 내외국인에 대한 차등 정책을 전면에 내세웠다. 사실 국민연합 등 극우 측에서 프랑스 시민의 등급을 나누는 시도는 이전부터 있어 왔다. 특히 유색인종 프랑스인에 대하여 ‘서류로만 프랑스인’이라고 한다던가, 프랑스 거주 외국인에 대한 사회보장 혜택을 없애자거나 하는 것들이 대표적이다.

이번 의회 해산 이후에 집중적으로 다루어진 주제는 이중국적자에 대한 것이었다. 국민연합은 이중국적을 지닌 프랑스인으로 하여금 국방이나 사회 안보 분야의 주요 보직을 맡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현재 프랑스의 법무부 장관인 에릭 뒤퐁 모레티(Éric Dupond-Moretti)와 같이 프랑스와 이탈리아 이중국적자의 경우는 상관이 없지만, 프랑스-러시아 이중국적자, 혹은 프랑스-알제리 이중국적자는 안된다는 것이다. 결국 국민연합의 이러한 정책의 기저에는 증명되지 않은 편견 및 혐오가 깊고 광범위하게 깔려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포착할 수 있다.

1차 투표 결과, 극우의 약진

많은 시민의 연대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1차 총선 투표 결과,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이 제1당이 될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잘못하다가는 극우가 하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극우 당대표가 국무총리가 되어 국정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참, 그 전에 토막상식 하나. 프랑스는 상원과 하원 양원제이고, 하원의 의석은 총 577석이다. 절대다수당이 되려면 그의 절반인 288.5, 즉 289석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프랑스 총선은 프랑스 대부분의 선거가 으레 그러하듯, 1차와 2차가 있다. 1차에서 어떤 후보가 50% 이상의 득표율을 확보하지 않으면 결선, 즉 2차 투표가 이루어진다. 결선에 진출하려면 후보는 1차 투표에서 최소 선거인단의 12.5%p의 득표율을 얻어야 한다.

지난 6월 30일 1차 투표 결과 국민연합이 29.25%, 좌파연합인 ‘신 인민전선’이 27.99%, 여당은 20.04%를 득표했다. 이는 국민연합 34.2%, 신인민전선 28.1%, 여당 20.3%로 나온 출구 조사 결과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국민연합의 지지를 받은 공화당 후보까지를 같은 진영으로 계산하면, 극우가 33% 이상을 득표한 상황이다.

2024년 6월 30일, 1차 총선 출구 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환호하는 국민연합 지지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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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합은 축제 분위기다. 2002년 국민전선의 장 마리 르펜이 대선에 출마하여, 낮은 투표율로 인해 결선에까지 진출했다가 자크 시락 82.21%, 장 마리 르펜 17.79%를 받고 참패했음을 기억하면, 정말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현재 국민연합은 국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289석 이상(하원 의석 577석) 의 절대다수당이 되고, 또한 당대표인 바르델라를 국무총리의 자리에까지 올려놓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2027년 대선에서는 아마도 마린 르펜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그저 허무맹랑하다고만 말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극우 저지를 위해 뭉친 좌파 연합

한편, 대다수 한국 언론이 국민연합의 승리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데에 반하여, 28%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범여권을 꺾고 2위를 기록한 좌파 정당 연합, 신인민전선의 선전에도 주목해야 한다. 참, 한국 언론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한국의 일부 언론에서는 Nouveau Front Populaire를 신민중전선이라고 일컫기도 하던데, 1930년대 프랑스에서 파시스트 독재 체제를 수립하려 시도한 극우 세력의 기도를 저지하는 데에 성공한 좌파 연합인 Front Populaire의 한국어 번역 명칭이 ‘인민전선’임을 감안하면 ‘신 인민전선’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최근의 유럽의회 선거까지 분열하던 좌파연합은 2022년 총선에서는 NUPES, 즉 신민중생태사회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선전하여, 프랑스 하원 577석 중 133석을 차지한 바 있다. 참고로 당시 국민연합은 89석을 차지하는 데에 그쳤다. 하지만 멜랑숑을 중심으로 하던 신민중생태사회연합은 이후 멜랑숑에 대한 부정적인 언론이 커지고, 좌파 정당 사이의 갈등이 생기면서 그 중심을 잃어갔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2024년 총선에 등장한 좌파연합의 명칭이 ‘신 인민전선’으로 바뀐 것이다. 이는 이번 총선을 유리하게 이끌어가기 위해 멜랑숑의 그림자를 지우겠다는 의도도 얼마간은 포함하고 있다고 이해해야 한다.

2022년 신민중생태사회연합의 이름으로 총선 결선에 진출한 후보는 370명이었다. 2024년 총선에서 결선에 진출하는 ‘신 인민전선’의 후보는 500명에서 550명 정도 될 것으로 예상된다. 2년 만에 대략 150명가량이 늘었다. 따라서 ‘신 인민전선’의 선전은 그래도 프랑스 사회에 아직 일말의 희망이 남아 있다는 지표로 해석할 수 있겠다.

지난달 30일, 반극우 집회에서 연설 중인 녹색당(좌파연합 소속) 당수 마린 톤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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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에서 프랑스의 정당들은 극우를 어떻게 저지해야 할지를 두고 많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신 인민전선은 2차 선거의 후보가 3명이고, ‘신 인민전선’의 후보가 3위일 때, 이 3위 후보가 선거를 완주함으로 인하여 극우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면, ‘신 인민전선’에서는 후보가 자진 사퇴할 것임을 밝혔다.

여당의 경우는 ‘신 인민전선’보다 조금 복잡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국무총리 가브리엘 아탈은 공화국과 그 가치를 수호할 것을 강조하며, 극우에 단 한 표도 줄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여기에서 공화국의 가치는 두말할 것 없이 자유, 평등, 박애다. 여기에서 더 자세히 들어가게 되면, 여당의 적지 않은 수들은 멜랑숑과는 연합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음을 쉽사리 파악할 수 있다. 즉, 2차 선거 후보가 3명이고 여당 후보가 3위일 때, 이 3위 후보가 선거를 완주함으로써 극우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면, 여당 후보는 자진 사퇴할 테지만, 멜랑숑 정당, 즉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 정당의 후보는 연대의 대상으로 고려하지 않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여기에서 우리는 2022년 5월, 마크롱이 대통령으로 연임했을 당시 수락 연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마크롱은 자신이 연임된 것이 자신이 잘해서라기보다는 프랑스 국민들이 극우를 저지하기 위하여 마린 르펜이 아니라 자신에게 표를 준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하지만 그동안 실제로 마크롱 정부가 주요 공격 대상으로 삼은 것은 극우가 아니라 멜랑숑이었다. 그러하기에 이번 1차 총선 이후 여당의 반응은 크게 놀랍지 않다. 한편으로 여당 후보 중에는 "나는 정치적 맞수와 국가의 적을 혼동하지 않는다"며 자진사퇴를 통하여 ‘신 인민전선’ 후보에 대한 지지를 보낸 이들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여당 후보 알반 브란랑(Albane Branlant)

"나는 정치적 맞수와 국가의 적을 혼동하지 않습니다"라고 밝히며 자진 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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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합에 숟가락 얹은 공화당

한편, 공화당의 행보도 주목할 만하다. 공화당은 프랑스의 전통적인 우파 보수 정당이다. 자크 시락,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공화당의 전신인 대중운동연합 후보였다. 보통 중도 우파 정도로 분류되던 이 당은 현재는 극우와 완전히 한 몸이 되어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우정당 '국민연합'과의 제휴를 주장한 에리크 치오티 공화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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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의 대표 에릭 치오티(Eric Ciotti)는 총선을 앞두고 당원과 동료 정치인들의 동의를 얻지 않고, 국민연합과 연합할 것을 선언한 후, 제명당한 바 있다. 하지만 이에 반발하여 당사 열쇠를 가지고 당사로 들어가 안에서 문을 잠그는 해프닝을 벌이고 만다. 이후, 프랑스 법원에서는 에릭 치오티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에릭 치오티는 아직도 공화당의 당수로 남아 있다.

1차 총선 이후, 에릭 치오티는 국민연합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를 밝히며, 유권자들로 하여금 국민연합에 표를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국민연합의 대표인 바르델라가 국무총리가 되어야 ‘우리’가 제대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정확한 워딩이었는데, 여기서 ‘우리’라는 표현은 프랑스 정치에 관심을 두고 지켜보던 이들에게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공화당의 몰락을 목격하는 것인가 싶다.

마크롱의 전략 실패...!?

상황이 이렇게까지 온 것을 보며, 우리는 이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아니, 마크롱은 뭐 하러 의회를 해산했던 것인가. 이런 말도 안 되는 난리굿판이 펼쳐지리라 예상하지 못했던 것인가 하는 그런, 하나 마나 한 질문들. 이번 총선 전까지 여당 및 여당 연합 정당은 하원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하지 못했다. 따라서 마크롱이 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려면 다른 정당의 지지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리하여 마크롱의 두 번째 임기 동안 대통령 직권 상정 법안이 그렇게나 많았다.

마크롱은 이번 기회에 의회에서 여당을 절대 다수당으로 만듦으로써, 남은 대통령 임기 동안 자신의 드라이브를 강하게 추진하려고 했을 것이다. 프랑스 하원 해산은 유럽의회 선거 직후에 이루어졌음을 기억하자. 당시 유럽의회에서 극우가 굉장한 선전을 보이고, 반면 좌파 정당들은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고 있었다는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분열하고 있던 좌파 정당들이 이렇게나 단시간에 다시금 연합하여 하나의 세력으로 등장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즉, 좌파가 분열하고 있는 동안, 극우의 유일한 대항마로 여당을 내세우려고 했던 것인데, 말하자면 전략의 완전한 실패라 하겠다. 당시 의회 해산이 마크롱 정부의 일원들, 이를테면 장관들 대부분과 국무총리조차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주 비밀리에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전략을 누가 전면에 내세우고 강조했는지는 몰라도, 마크롱은 2년 남짓밖에 남지 않은 국정의 최소한 원활함을 보장하려면 이런 형편 없는 전략을 앞세운 측근을 꼭 내쳐야 하겠다.

이제 총선 결선이 며칠 남지 않았다. 누군가 내게 과연 프랑스 사회가 이전처럼 극우를 저지할 수 있겠느냐 하는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밝은 미래를 예상할 수는 없을 거라고 대답할 것 같다. 2002년 당시 장 마리 르펜의 대선 결선 진출은 프랑스 사회가 뒤집어질 만한 사건이었고, 이후 극우는 항상 프랑스에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꽤 주요한 역할을 해 왔다. 지난 대선에서 마크롱이 연임한 것이 극우 덕분이라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즉, 기존에 마크롱을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차악을 선택한다는 심정으로 마크롱에게 표를 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근 20년 동안 반복되면서, 괴물처럼 여겨졌던 극우는 점차, 특히 미디어에 의하여 정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미디어가 이른바 슈퍼 리치에 장악이 되면서, 극우 성향 패널이 미디어에 더 많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미 2022년 6월, 국민연합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는 프랑스인의 40%로 나타난 바 있다. 10년 전인 2011년에는 12%였고. 2002년, 극우 후보에 투표했다고 차마 부끄러워서 말도 못 하던 극우 지지자들이 2024년 오늘은 아주 당당히 혐오 발언에 목소리를 높이게 된 것이다.

이처럼 프랑스에서 극우의 성장과 정상화는 아주 오랫동안 진행되어 왔고, 이제 프랑스 시민들이 막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1차 총선 이후 이탈리아의 총리 조르자 멜로니가 "극우의 악마화는 더 이상 기능하지 않는다는 것을 프랑스가 깨달았다는 것이 반갑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극우의 반등에는 주변 유럽 국가에서의 극우 세력의 선전뿐만 아니라 현재 팔레스타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학살에 대해, 학살이라 말하는 순간 반유대주의로 몰리는 프랑스 미디어의 역할도 큰 몫을 하고 있다고 본다.

다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극우의 선전에 혼란스러워하며, 2차 투표에도 참여할 것을 밝히고 있기는 하지만, 여당이 2022년부터 취해 왔던 전략, 즉 좌파 연합을 극좌에 놓고, 극우도 안 되지만 극좌도 안 된다며 자신들을 믿으라는 전략을 내려놓지 않는 이상, 2차 투표에서 극우를 성공적으로 저지하는 것은 힘들지 않을까 예상한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외국인으로 살고 있는 나는 스스로의 미래에 대하여 강하게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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