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하면 끝?···밸류업이 무색한 ‘중복상장 랠리’

2024-12-02

모회사와 자회사가 동시에 증시에 상장하는 ‘중복상장’이 잇따르고 있다. 중복상장은 국내 증시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장기투자 유인을 저해하는 대표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꼽힌다. 국내 증시에 대한 투자자 신뢰 제고를 위해 기업들의 전향적인 태도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식품업체 빙그레는 최근 인적분할(기존 회사 주주가 지분율대로 신설 법인의 주식을 나눠 갖는 것)을 통한 지주회사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기존 상장법인인 빙그레는 내년 5월 지주회사인 ‘빙그레홀딩스’로 전환하고 실질적인 영업을 하는 사업부문은 ‘빙그레’로 재상장하는 것이 골자다. 지주회사이자 모회사인 빙그레홀딩스, 식품업에 집중하는 자회사 빙그레 모두 상장되는 ‘중복상장’인 셈이다.

시장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인적분할을 해 지주회사로 개편하고 현물출자 유상증자를 진행하는 것은 기업의 대표적인 ‘승계’ 방식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특히 시장과 주주들은 중복상장으로 인한 주가 하락을 우려한다. 기업가치가 중복 계산되는 ‘더블 카운팅’이 발생해 모회사의 가치가 할인되기 때문이다. LG화학에서 물적분할해 상장한 LG에너지솔루션이 대표적인 사례다. 모회사 LG화학의 주가는 이후 내리막을 걸었다.

IBK투자증권에 따르면 국내 증시의 중복상장 비율은 약 18%로, 일본(4.38%), 대만(3.18%), 미국(0.35%), 중국 (1.98%)보다 월등히 높다. 상장회사가 많아져 자본은 늘더라도 기업가치는 높아지지 않는다. 증시가 저평가된다는 것이다. 김종영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코스피의 중복 상장 비율이 증가하고 있기에,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순자산비율(PBR) 할인은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국내 지수 평가시 보수적으로 순이익의 10~15%를 할인하는 게 적절하다”고 밝혔다.

물적분할을 통해 핵심 자회사를 매각하는 ‘쪼개기 상장’ 등이 주주가치에 역행한다는 비판이 커지면서 한국거래소는 상장심사 기준을 높였고 금융당국도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를 의식해 빙그레도 전체 발행주식의 약 10%에 달하는 자사주를 전량 소각했다. 그럼에도 중복상장이 계속 이뤄지고 있어 밸류업에 역행한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빙그레뿐만 아니라 SK, LG, 롯데 등 대기업들도 여전히 알짜 자회사의 중복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대체로 재무적투자자(FI)로부터 기업공개(IPO)를 조건으로 투자를 받은 경우들이다. SK이노베이션의 윤활유 제조 자회사 SK엔무브는 내년 상반기를 목표로 IPO를 준비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자금이 필요할 때마다 수 차례 알짜 자회사들을 중복상장했던 만큼 “해도 너무 하다”는 것이다. SK그룹의 코스피·코스닥 상장 계열사는 올 상반기 기준으로 21개에 달한다. LG와 롯데 그룹은 총 11개 계열사가 증시에 상장돼 있다. 투자자들 사이에선 애플이 한국기업이었다면 ‘애플카드, 애플페이, 애플’ 등으로 중복상장이 계속됐을 것이란 비아냥도 나온다.

천준범 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변호사)은 “중복 상장이 되면 모회사 주주와 자회사 주주간 이해상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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