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아보하’를 누리는 새해가 되길

2025-01-03

밸리에 삽니다. 하루는 코리아타운에 가려고 프리웨이를 탔습니다. 습관대로 앞차를 따라가며 운전하는데, 늘 보던 주위 환경이 왠지 낯설어 보였습니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어서 그런가. 그래도 삼십 년을 지나다닌 길인데. ‘그래. 익숙했던 풍경도 때론 낯설게 보일 수도 있어’라고 위로하며,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깨달았죠. 길을 잘못 들은 것을. 118번 프리웨이에서 5번 사우스로 갈아타야 하는 데 405번 사우스를 탄 것입니다. 이런 날도 지나고 보니, 여태껏 살아온 날 중의 하나였습니다.

트렌드 코리아에서 뽑은 2018년 키워드는 ‘소확행’이었습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개인적으로 ‘소확행’을 좋아했습니다. 그 단체는 2025년 키워드 중의 하나로 ‘아보하’를 선정했습니다. 아주 보통의 하루. 무탈하고 안온한 일상을 일컫는다고 합니다.

내일이 불안한 시대에서 아무 일이 생기지 않는 오늘을 사는 것이 기적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잔잔하고 평범한 일상에 만족해도 괜찮으냐는 물음에, 그래도 괜찮다는 대답이겠죠. ‘아보하’는 평범한 날도 나쁘지 않다는 위로입니다.

마음에 여유가 없는데, ‘아보하’가 주는 평온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자문해 봅니다. 딸들이 어렸을 때는 하루가 빨리 지나가길 바랐어요. 아이들이 어서 자라서 저 혼자 걸어다니고, 스스로 숟가락질해서 먹고, 혼자 옷 입고 신발 신고, 아이스크림 흘리지 않고 먹어서, 닦아주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날이 오기를 기다렸죠. 그리고, 그런 날이 왔습니다. 이제는 다 커서 더는 나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가끔 그때가 그립습니다. 어제와 오늘이 같아서 지루했던 그 ‘아보하’가.

우리가 사는 하루하루가 늘 특별할 수는 없겠지요. 오히려 지금은 멋진 한순간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상에 만족합니다. 여행 가서도 유명한 맛집에서 먹는 한 끼 식사보다, 온 가족이 호텔 방의 커피 메이커에서 빼어낸 뜨거운 물로 만들어 먹던 덜 익은 컵라면이 더 좋습니다. 이제는 여유를 갖고 ‘아보하’를 제대로 즐기려 합니다.

김종서가 부른 ‘아름다운 구속’의 가사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살아있는 오늘이 아름다워’. 2025년 을사년, 푸른 뱀의 해에는 살아있는 오늘이 아름다운 날들의 연속이기를 기원합니다. 아주 보통의 하루를 누리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더불어 가끔 좋은 일이, 밤나무에서 잘 익은 밤이 툭툭 떨어지듯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한 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하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리나 / 수필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