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UFC를 찾은 이유

2025-04-14

키드록의 요란한 음악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군중의 환호를 받으며 입장한다. 과격하기로 이름난 종합격투기 UFC 경기장이다. 지난주 토요일 밤, 79세의 트럼프는 피로를 잊은 채 격투기 경기장을 찾아 새벽 1시까지 다섯 경기를 내리 관람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털시 개버드 국가정보국장(DNI) 등 그의 측근 혹은 충복들을 거느린 채 위세를 과시했다.

세계를 상대로 고율의 관세를 퍼붓던 트럼프가 미국 국채 시장이 요동치자 한발 물러서 중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에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한다고 발표한 직후였다. 아마 트럼프는 링 위에서 상대방에게 무차별적 공격을 퍼부은 뒤 포효하는 승자의 모습에 자신을 이입했을 것이다. 현실에서 일방적 승리를 거두지 못하니, 그런 식으로라도 도파민을 공급해야 했다.

트럼프는 UFC의 오랜 팬이다. UFC는 전통이나 품위, 규칙과는 거리가 멀다. 주짓수, 무에타이, 태권도, 스모부터 막싸움까지 포괄한다. 이기기 위해서라면 협박, 거짓말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트럼프의 방식과 흡사하다. “점점 더 대담하고 뻔뻔하게 힘을 과시하는 방식으로 공약을 이행해 온 트럼프의 모습을 상징하는 장면”이라는 뉴욕타임스의 평은 적확하다.

오는 29일이면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지 100일이 된다. 트럼프는 집권 2기를 맞아 한층 더 공격적이고 저돌적인 행보를 보이며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캐나다와 그린란드에 대한 영토 야욕을 드러내는가 하면, 유럽을 맹비난하며 80년간 이어온 대서양동맹을 파기하고 러시아와 밀착했다. 지난 2일(현지시간) 전 세계를 상대로 상호관세를 선포한 것은 하이라이트였다.

그날 트럼프가 손에 든 큰 패널에 적힌 국가별 상호관세율의 계산법을 놓고 경제학자들의 왈가왈부가 있었는데, 사실 트럼프에게 구체적 숫자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UFC 링에 오른 챔피언처럼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중이었다. 그러니 한국의 상호관세율이 25%에서 26%로 정정됐다가, 다시 25%로 바뀐 것에 대한 납득할 만한 설명은 필요 없었다. 그에게 관세는 세계 각국을 상대로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휘두르는 전가의 보도였다. 한국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을 관세 협상과 연계시키며 “원스톱 쇼핑은 아름답고 효율적인 프로세스”라고 말한 것도 이런 인식에서다. 관세로 무릎을 꺾은 뒤 원하는 것을 얻어내겠다는 말이 ‘원스톱 쇼핑’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에 따르면 트럼프의 관세는 정책이 아니라 “상대를 압도하고 복종하게 만드려는 ‘지배력 과시’” 행위다.

트럼프가 뉴욕의 부동산 거물로 성장하기까지 이야기를 다룬 영화 <어프렌티스>에서 어수룩한 트럼프는 매카시즘으로 악명 높은 변호사 로이 콘으로부터 ‘승리를 위한 세 가지 법칙’을 배운다. 첫째, 공격, 공격 또 공격하라. 둘째, 상대방의 말을 부정하라. 셋째, 절대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승리를 주장하라. 트럼프가 지금까지 성공해온 방식이자, 지금 세계를 상대로 벌이고 있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세계는 UFC의 좁은 링 안의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중국은 당분간 미국의 힘자랑에 굴복할 의향이 없어 보인다. 배짱 좋던 트럼프는 미 국채 금리 급등으로 경제위기 우려가 제기되자 뒷걸음질 쳐야했다. 자고 일어나면 말이 바뀌는 혼란스러운 트럼프의 행보에 미국에 대한 신뢰는 추락하고 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트럼프가 깔아놓은 UFC의 좁은 링을 벗어나기 위한 상상력과 전략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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