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도 ‘평화적 계엄’이란다. 그 궤변에 웃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전두환의 ‘정의사회구현’ 때는 웃을 수도 없었으니.
농담으로 끝나는 것인 줄 알았었다. ‘실패한 계엄’ 이후, 시인 박노해 선생의 시 ‘그가 다시 돌아오면’을 보았을 때, 작년 12월에도. 그래서 웃으며 그 시를 읽을 수 있었다. “그가 다시 돌아오면/ 계엄의 밤이 도래하겠지/ 번뜩이는 총구가 우리를 겨누고/ 의인들과 시위대가 ‘수거’되겠지/…김건희의 국빈행사와 일상을 띄워대며/ 패션과 미담의 화제거리로 도배되겠지/ 단 몇 줄 올린 글로 검은 제복이 찾아오겠지/ 너 좌빨이지, 불순분자지, 완장을 찬 극우대의/ 광기어린 폭력에 숨도 못 쉬겠지….”
대통령 탄핵은 자승자박의 결과
주권자 국민이 남용된 권력 수거
헌재 판결문은 헌법 교과서 되고
K-민주주의 다시 빛 발하는 순간

생각지도 못하게 헌재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완벽한 농담인 줄 알았던 그 시가 호러물이 되고 있었다. 헌재의 시간이 길어지며 갈등이 증폭되는 사이 많은 추측이 나돌았다. 헌재가 절대반지를 운명의 산으로 옮겨놓은 호빗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의혹도 생겨났다.
호빗족은 작다. 난장이족보다 작다. 작고 욕심 없는 호빗만이 절대반지를 옮길 수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작다는 것은 자기를 내세우려 하지 않는다는 뜻이겠다. 거품욕망으로 팽창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고,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겠다. 그러므로 작아진다는 것은 상태가 아니라 능력이다. 대단한 직함으로 자아팽창이 되어있는 지도자일수록 중요한 능력이겠다.
다행히도 공들인 결정문엔 좌우도, 이해관계도 없었다. 거기에서 빛나는 것은 헌법의 정신이었다. 재판관들은 호빗이었고, 반박할 수 없는 그 판결문은 갈등이 증폭될수록 음미해야 할 살아있는 헌법 교과서가 되었다. 보수로, 중도로, 진보로 분류된 재판관들은 국민의 신임을 배반하고 독재의 꿈을 꾸는, 시대정신과 역행하는 대통령을 한목소리로 파면했다.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하였습니다.”
대통령이 피바람을 일으켜 수거하려 했던 민주주의는 그가 엄청나게 남용한 권력을 수거했다. 자승자박이었고, 인과응보였다. 생경했던 말, ‘대한국민’이 쏙 들어왔다. 그것은 헌법이 이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천명한, 바로 우리였다. 헌재는 계엄이 일찍 끝났던 것은 2시간짜리 경고성 계엄을 준비했기 때문이라는 궤변과 거짓의 말에 손들어주지 않고 똑똑하게 이렇게 표현했다.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요구를 결의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
K-민주주의가 다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 판결문은 우리 수준이었다. 우리 대한민국, ‘대한국민’의 수준이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위대한 시민의 민주주의, 그 등불을 다시 밝힌 국민의 뜻을 헌재가 똑똑히 읽은 것이었다.
날짜도 잊어버릴 수 없는 2024년 12월 3일 밤, 계엄군의 군홧발에 짓밟힐 뻔했던 대한민국을 구한 것은 국민이었다. 세계를 놀라게 한 대한민국의 계엄, 그리고 더 놀라게 한, 대한국민의 저력을 보여준 그 날의 시민들, 헌재는 우선 그 평범한 시민들의 저항을 주권자의 권리로 존중했다. 그리고 그날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동원되어, 원하지 않는 군홧발이 된, 상처 입은 군을 무조건 배격하여 모두 수거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이해하고 분별하여 구제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긴 시간을 숙고했을 8:0이 통합의 메시지였듯 메시지 자체도 ‘통합’이었다.
그 통합을 일궈내고 헌재를 나오는 문형배 권한대행이 화제다. “대한민국의 헌법의 숭고한 의지가 우리 사회에서 올바로 관철되는 것”을 찾는데 전력을 다하겠다는 임명 당시의 결의까지 회자되고 있다. 그런데 헌법이 숭고하다니?
숭고미라는 것이 있다. 칸트 미학의 핵심 개념이다. 그것은 ‘나’를 압도해버려서 ‘절대적’이 되어버린 어떤 대상에 대한 성스런 경험에서 발견된다.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다고 고백하는 시인의 마음에서 드러나는, 완전히 매혹된 아름다움의 경험이겠다.
가난한 농사꾼의 장남이었던 문형배 학생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꽤 오랫동안 ‘줬으면 그만이지’란 마음으로 장학금을 준 어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야의 숨은 고수 김장하 선생이었다. 사법시험에 붙고 나서 감사하다고 어른을 찾아갔을 때 그 어른은 자신에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며, 혹 갚고자 한다면 사회에 갚으라고 했단다.
안 갚아도 그만이었다. 그런데 청년 문형배는 생색내지 않고 무주상보시(無主相布施)를 할 수 있었던 무심한 어른의 정신을 숭고하게 간직한 것 같다. 그는 그 소중한 인연을 만나게 해준 가난까지 간직했다. 숭고한 인연에 감사했던 그는 뼈를 굵게 하고 살을 붙여준 그 시절의 가난까지 잊지 않고 그 힘으로 사회적 약자라고 차별받지 않는, 진짜 민주 세상의 초석이 되고자 한 것이다, 법꾸라지가 되지 않고 법의 의지가 된 것이다.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이 지탱하고 있는 거라!”는 선생의 정신을 새긴 것이기도 했다. 법을 숭고하게 만든 것은 바로 그 정신의 힘이었다.
부의 뿌리는 가난이다. 위대함의 뿌리는 평범함이다. 그 대극을 통합하게 해준 숭고의 뿌리는? 힘들고 어려운 삶에 존엄을 부여하게 된 어떤 경험이겠다,
이주향 수원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