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이 아니어도 괜찮아! Episode 14.

2024-09-02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장 쉽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건 말이 아닐까. 흔히들 말로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한다고들 한다. 명심보감에 상인지어 이여형극(傷人之語 利如荊棘)이란 말이 있다. 상처 주는 말 한마디는 날카롭기가 마치 가시와 같다는 뜻이다.

원만한 대인관계를 위해선 세 치 혀로 상대방에게 상처 주지 않도록 조심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말은 상대방을 행복하게도 하지만 아프게도 하기 때문이다. 나도 항상 말을 잘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후회하길 반복한다.

과거 나의 부모님은 책 읽기와 일기 쓰기에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그 영향인지 나는 꽤 언변이 좋은 축에 속하는 것 같다. 물론 ‘말을 잘한다’ 속에는 장단점이 모두 존재한다.

앞에 나가 사실을 발표하고 의견을 전하는 일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고 조리 있게 생각을 잘 표현하는 편이다. 이건 장점이겠지만 반대로 너무 쉽게 말을 뱉어 후회하는 순간도 있다. 그래서 요즘은 스스로 말을 너무 잘하는 게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말이 많은 사람이 실수도 많은 건 진리인 것 같다.

소담센터에 근무하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고민이 갑질이나 성희롱, 인격 비하, 다양한 의견 다툼이다. 모든 문제의 시작은 결국 대다수가 말에서 비롯된다.

말을 너무 심하게 하고, 강압적인 말로 상대의 마음을 다치게 하면 그건 갑질이 된다. 관계의 선을 정확히 모른 채 농담이라는 포장지로 싸서 내뱉는 말은 성희롱이 된다. 상대를 평가하고, 비하하고 점수를 매겨 말로 표현하면 인격 모독 또는 비하가 될 수 있다.

상대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 상태에서 역지사지의 마음 없이 내 생각대로 이야기를 꺼내면 서로 이해충돌이 일어나고 나아가 싸움이 되기도 한다.

모든 대화의 긍정적인 시작은 설명이다. ‘why?’에 대한 납득과 설득 없이는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why에 대한 설명이 충분할 때 사람들은 움직이게 된다.

마음속에 why가 사라지지 않으면 감정의 골이 생기고 불신이 시작될 수 있다. 이렇듯 모든 문제의 씨앗은 말인데 사람들은 그 가장 중요한 말을 잘 하지 못한다.

지휘관이 되면 조심해야 할 것들이 늘어난다. 그중 한 가지도 말이다. 부하직원에게 말로 본인의 뜻을 전달하고 리드하기 위해선 수십 번 생각하고 지속해서 공부해야 한다. 본인의 감정을 넣은 채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는 순간 모든 관계와 지휘체계는 무너지고 만다.

사람들은 존중받았다고 느낄 때 감사한 마음이 든다. 배려받았다고 생각될 때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렇듯 모든 관계의 기본은 ‘GIVE&TAKE’다.

사람 마음이 하루아침에 내 것이 될 수 없지만 상대방을 조금이라도 내 쪽으로 움직이게 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준 만큼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일부만이라도 돌아오면 성공이 아닐까.

소방은 조직사회다 보니 계급이 존재한다. 지휘관이 되면 그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 카리스마 있는 지휘를 해야 한다. 그럴 때 항상 상대를 존중하고 감정적인 말은 지양해야 지휘관을 믿고 따라줄 것이다.

세상은 변했고 예전처럼 ‘나를 따르라(그냥 묻고 따지지 말고 하라면 해)’는 이제 통하지 않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과거 소담센터에서 성희롱 고충 상담을 진행한 적이 있다. 서로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이에서는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다. 그러나 친하다고 생각하는 온도가 서로 같아야 한다.

한쪽은 비즈니스적인 온도인데 상대방이 착각하고 선을 넘는 농담을 한다거나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는 순간 성희롱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친한 사람끼리 하는 농담이었어요’ 가해자는 가볍게 농담이었다고 한다. ‘농담이 너무 지나쳐 불쾌해요’ 피해자의 말이다. 정말 친한 사이가 아니었을 수도, 친했지만 선을 넘은 것일 수도 있다.

내 경험을 하나 이야기하면 평소 농담을 주고받던 팀장님과 여러 명의 직원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운동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그렇게 운동을 여러 개 하는데 왜 살은 안 빠져?” 팀장님의 말에 순간 민망했지만 관계를 위해 반박은 하지 않았다.

가끔 차도 마시고 이야기도 하는 좋은 관계였지만 외모를 평가하는 말을 한다거나 약점을 드러내 이야기하면 불쾌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친하고 안 친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예의와 매너의 문제로 느껴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항상 마음속의 말을 밖으로 꺼내기 전엔 여러 번 생각해야 한다. 만약 말로 표현한 순간 상대방이 기분 나쁘다고 표현하거나 상황이 어색해지면 뒤도 보지 말고 바로 진심 어린 사과라도 해야 한다.

“에이~ 우리 사이에 농담도 못 받아들이면 어떡해?”와 같은 말로 상황을 더 자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방송 프로에서 수위 높은 개그를 한다고 우리도 일상에서 수위 높은 농담을 하면 재밌는 사람으로 평가받을 거란 착각은 애당초 안 하는 게 신상에 좋다.

마지막으로 계급이 존재하는 조직에서는 승진이 발목을 잡는 일이 허다하다. 승진 때문에 참기도, 이용당하기도, 견뎌내기도 한다. 위아래가 존재하는 것이니 당연히 내가 하위직일 땐 예의를 갖춰 잘해야 하는 게 상도다.

그러나 본인의 지위를 이용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누군가가 지휘관에게 보고를 들어가기 전 담당자의 생각으로 어느 정도 결론을 내려서 대면했다고 가정해 보자.

마음에 드는 사람이 보고할 땐 “이렇게까지 생각을 하다니… 정말 잘했어!”, 평소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지금 나한테 다 결정된 걸 가져와서 결재만 하라는 거야?”라고 할 것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격이다.

어차피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떻게 해도 혼나는 게 정해진 답이다. 그러나 이는 지위를 이용해 개인감정을 담은 갑질이 명백하다.

정말 잘못된 부분에 대한 지적이 합리적이어야 하고 본인 감정과 상관없이 공과 사를 구분해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물론 업무로만 평가받는 게 아니라 업무 외의 평가가 더 크게 작용할 때가 많다는 점이 문제긴 하다.

모든 사람에게 다 좋은 평가를 받으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도 너무 좌절할 필요는 없다. 소담센터에 근무하며 다양한 상황을 지켜보니 음지가 양지가 되고 양지가 음지가 되는 게 세상의 이치였다. 게다가 내가 이상하다고 여기는 것들은 일반 사람들도 이상하다고 공감한다.

현재의 성공은 끝이 아니다. 공직 생활을 잘 마무리하려면 항상 말을 조심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경기 파주소방서_ 이숙진 : emtpara@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9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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