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정부가 미국의 관세 정책과 자국 국방비 증액 등에 대한 대비책으로 올해 정부 지출을 140억 파운드(약 26조 4800억 원) 대거 삭감하기로 했다. 대외 불확실성 증대로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반 토막으로 낮췄다.
레이철 리브스 영국 재무부 장관은 26일(현지 시간) 이 같은 내용의 봄 경제 전망과 재정 계획(Spring statement)을 발표했다. 그는 우선 올해 영국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매우 커지고 있다고 봤다. 리브스 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관세 전쟁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무역 상황이 불안정해졌다고 언급했으며 “세계적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우리 공공 재정과 경제에 후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영국 예산책임청(OBR)은 미국이 모든 수입품에 20% 관세를 부과하면 영국이 목표로 하는 990억 파운드(187조원)의 재정적 여유분이 사라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런 이유로 OBR은 영국의 올해 국내총생산(GDP)이 지난해 대비 1%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는 지난해 전망치인 2%보다 크게 낮아진 것이다. 다만,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1.8%에서 1.9%로, 2027년은 1.5%에서 1.8%로 각각 높여 잡았다.
영국 정부는 경제 불확실성에 따른 재정 압박에 대응해 공공 지출 삭감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주로 복지 정책과 관련한 지출이 대상이다. 건강 관련 보편적 복지 수당을 새로 신청하는 경우 지원금을 절반으로 줄이고 2030년까지 동결하기로 했으며,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하는 개인자립지원금(PIP) 수령 요건을 강화한다. 또 정부 부처 행정 비용은 2030년까지 15% 절감하기로 했다. 자발적 퇴직제도 등을 통해 공무원 1만명이 감원될 것으로 예상된다. OBR은 2030년까지 복지 지출 삭감으로 48억파운드(9조 1000억 원)가 절감되고, 정부 부처 행정 비용으로는 36억파운드(6조 8000억 원)를 아낄 것으로 추산했다. 노동연금부 추산에 따르면 복지 삭감으로 320만명이 경제적으로 연 평균 1720파운드(325만원) 가량 복지 혜택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미성년자 5만명을 포함해 약 25만명이 상대적 빈곤층 기준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는 뜻이다.
대신 국방비는 늘린다. 국방비는 2025∼2026회계연도에 22억파운드(4조 2000억 원) 증가해 GDP의 2.36% 수준으로 늘어난다. 리브스 장관은 방위 장비 예산의 10%를 드론과 인공지능(AI) 중심의 신기술에 투입하고, 신기술이 전선에 더 빨리 투입되도록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해군함과 군 복지, 군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늘릴 예정이라면서 영국이 ‘방위 산업의 초강대국’이 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지 매체들은 영국 정부의 재정 계획이 국내에서 큰 반발에 부딪힐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복지 축소는) 많은 수의 국민을 빈곤으로 몰아넣을 위험이 크다”고 분석했다. 여당인 노동당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노동당의 데비 에이브럼스 하원의원은 “복지 삭감은 심각한 빈곤과 보건 악화로 이어진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