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영업자다
김은희(59)씨는 여장부였다. 집채만 한 2t 탑차를 직접 몰고 서울시내 구석구석을 누볐다. 거기엔 건어물과 곡물이 가득 실려 있었다. 김씨가 운영하던 세 곳의 서울시내 도매 점포에서 실린 그 물건들은 소포장된 상태로 나뉘어 거래처인 소매점과 마트들에서 하나둘 부려졌다. 느지막한 귀갓길, 텅 빈 탑차를 채운 건 돈이었다. 수십 명의 직원과 가족을 건사하고도 꽤 많이 남을 정도의 금액이었다.
그때만 해도 그의 앞길은 탄탄대로인 듯 보였다. 하지만 인생이 그렇게 쉬운 것일 리 없다. 길의 평탄함에 도취한 이가 포트홀이나 싱크홀을 간과하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김씨도 거짓말처럼 거기에 빠졌다. 스스로 ‘외도’라고 표현했던 ‘한눈팔기’의 후과였다.
구멍에 빠진 이들은 두 가지 선택지에 직면한다. 충격과 공포에 사로잡혀 그대로 주저앉거나, 악착같이 빠져나오거나.
김씨는 다시 일어서는 쪽을 선택했다. 그는 김밥을 말기 시작했다. 그리고 10년 뒤 부가세 많이 내기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알짜 자영업자로 부활했다. 김씨는 어떻게 성공했고 어떻게 좌절했으며 어떻게 재기했을까. 지금부터 파란만장했던 그의 자영업 인생길을 따라가 보자.
이런 내용들이 있어요
📍 원 없이 돈 만지게 해 준 건어물 유통의 추억
📍 추락… 돌파구가 된 김밥
📍 집 놔두고 가게 옆에 원룸 얻은 사장님
📍 배달 안 하고, 나이 든 직원만 쓰는 이유?
📍 월 매출액 0000만원… 비용과 순이익은?
충남 당진 출신인 김씨는 1982년 상경했다. 서울 반포 뉴코아(한신공영)에 취업한 그는 6년간 판매 직원으로 일했다. 결혼과 함께 직장을 떠난 그가 다시 일을 시작한 건 1995년이었다. 직장으로 복귀하지 않았다.
직장 생활만 해서는 돈을 벌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사업을 했죠. 나는 회사 다니는 아들한테도 ‘과장 정도까지만 일하면서 경험을 쌓고 그 뒤에는 사업해라’고 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