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6500만원을 받는 여의도 증권가 직장인 김유진(가명·28)씨는 지난해 10월부터 1년째 한 달을 35만원으로 생활하는 ‘자린고비 챌린지’를 이어오고 있다. 우선 부모님과 함께 살며 경제적으로 의지하는 ‘캥거루족’으로 지내면서 공과금·생활비를 극단적으로 아낀다. 불필요한 저녁 약속은 줄이고 점심은 회사 팀장과 함께 먹는다. 상사와 같이 식사할 경우 보통 밥값은 상사가 내기 때문이다. 식사 후 커피나 디저트는 선물로 받은 ‘기프티콘’이 있을 때만 사 먹고 간식이 고프면 회사 탕비실로 향한다. 쇼핑은 가급적 카드사 포인트로만 한다. 가족 내 경조사비는 자신의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환급 포인트를 많이 챙긴다.
김씨가 사회 생활을 시작한 처음부터 이런 극단적인 절제 생활을 한 건 아니다. 그는 과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유행하는 디저트 맛집과 옷가게를 다니면서 한 달에 100만원 가량을 썼지만, 지난해 10월부터 이런 생활 패턴을 싹 바꿨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게시물은 소수의 삶일 뿐이지 내 삶이 될 수는 없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김씨는 말했다. 김씨는 내년 3월까지 6000만원을 모으는 게 목표다. 그는 “길 가다 좋아하는 빵집에서 빵 냄새가 새어 나와도 꾹 참고 지나간다”며 “일정 수준의 돈을 모아 주식 공부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근 MZ 세대 사이에서 지출을 극단적으로 줄이고, 이를 SNS 등을 통해 공유하는 게 유행하고 있다. 점심 식사는 도시락을 싸서 다니거나 구내식당에서 해결하고, 운동을 할 땐 비싼 헬스장을 끊는 대신 러닝을 하거나 야외 운동 기구를 이용하는 식이다. 돈 버는 애플리케이션(앱)으로 포인트를 모아 현금화하는 ‘앱테크’를 병행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직장인 오모(28)씨는 “걸을 때마다 소액이 쌓이는 만보기 앱과 농작물을 키우면 실제 수확물을 집으로 보내주는 앱도 쓰고 있다”며 “꾸준히 모으다 보면 한 달에 커피 한 잔 값은 벌 수 있다”고 말했다.
SNS·블로그·오픈 채팅방에서는 자신의 절약 습관을 다수와 공유하는 이른바 ‘라우드 버짓팅(Loud Budgeting)’ 문화로 번지고 있다. 라우드 버짓팅은 직역하면 ‘시끄러운 예산 편성’이란 뜻으로,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대신 실제 재정 상태와 지출 계획을 다수에게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SNS에 명품 언박싱 등을 올리며 과시하는 ‘하울(haul)’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린고비 챌린지’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관련 게시물 수천건이 떠오른다. 한 달 가계부나 일지를 올리고, 정해진 현금으로만 생활하는 ‘현생’ 참여자를 모집하는 식이다. 관련 오픈 채팅방을 보니 매일 오후 8시~12시 참여자들이 하루 소비 내역을 올리고 절약·재테크 꿀팁을 공유하고 있었다. “급 술약속은 자제하라” “올리브영에서 (화장품) 안 사고 나오셨다니 잘했다” 등 조언과 격려가 오갔다.
MZ세대의 근검 절약은 과거 기성세대와 달리 적극적인 투자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아낀 돈을 쌓아두기만 해선 재산을 증식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한 달에 40만원씩 주식 투자한다는 직장인 김현우(31)씨는 “현금의 가치가 점점 떨어지는 상황에서 예·적금만 하는 건 돈을 놀게 두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며 “어렵게 모은 돈이더라도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투자한다”고 했다. 부지런하고 모범적으로 사는 ‘갓생(God 生)’ 브이로그로 15만 구독자를 모은 유튜버 ‘오너스’는 자신의 채널에서 “이제는 소비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할 정도로 절약이 너무나 쉬워졌다”며 “다만 은행 이자에 기대하기보다 주식 투자를 통해 목표 자산에 훨씬 빨리 도달했다”고 밝혔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소비를 줄이되 투자에 관심을 갖는 흐름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3일 기준 소비 동향을 보여주는 통계청의 소매판매액 지수를 보면 지난 3분기 지수는 100.7(불변·2020년=100)로 전년 동기 대비 1.9% 감소했다. 2022년 2분기부터 10개 분기 연속 줄어든 것으로, 1995년 1분기 이후 최장기간 감소세다. 코로나19 사태 때 급증한 유동성이 꺼지자 씀씀이를 줄이기 시작한 것을 의미하는 수치로 풀이된다. 반면 MZ 세대의 투자 의지는 강세다. 한국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19년 기준 20·30대 투자는 각각 6.2%, 17.5%였으나, 지난해 말 11%, 19.4%로 증가했다. 투자를 비관적인 경제 상황의 돌파구로 택하고, 이를 위한 자금 마련 목적이 '짠테크'의 배경인 셈이다.
절약한 돈으로 투자하고 이를 다수에게 알리는 젊은층의 소비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성취를 확인받고자 하는 심리와 연결돼 있다고 봤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신이 고생하는 상황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SNS를 통해 같이 극복할 수 있는 친구를 찾는다”며 “사치품을 자랑하는 플렉스(flex)와 달라 보이지만, 솔직한 내 모습을 보여줘 공감을 얻고 이를 극복하며 성취감을 전시한단 측면에서 목표는 같다”고 말했다.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는 “다수에게 자산 계획을 공개하면 꼭 이뤄야겠다는 동기부여가 생긴다”며 “취업·경제난 등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일종의 성취감을 달성할 수 있는 대안으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