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정규직화 막는 ‘103만엔·130만엔의 벽’

2024-11-04

일본의 슈퍼마켓 아르바이트나 파트타임은 시급 1200엔(1만800원) 정도로 하루 4~5시간만 일한다. 대체로 주부들이 주 3~4일 일하고 월 6만~9만 엔을 받는다. 이 정도만 일하는 이유는 부양가족 소득공제 때문이다.

부양가족인 배우자의 연소득이 103만 엔(930만원)을 넘길 경우 소득 신고를 해야 해 부양가족 공제를 받을 수 없게 되고 130만 엔(1175만원)마저 넘어가면 건강보험도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시간과 일수를 늘려 일을 더 했다간 공제 혜택이 줄면서 오히려 실수령액이 줄어들 수 있는 구조이다.

일본에선 이를 ‘103만 엔의 벽’ ‘130만 엔의 벽’이라고 표현한다. 학생이나 전업주부 등이 일을 더 해서 소득을 늘리고 싶어도 실제론 허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 일본 중의원 선거 과정에 가장 ‘빅히트’를 낸 정당은 국민민주당이었다. 일본 유권자들은 가계 소득에 대한 적극적 정책이 없었던 자민당보다는 소득 공제 기준을 178만 엔으로 높이겠다고 나서면서 소비세와 유류세 인하까지 내건 국민민주당에 관심을 보였다. 가계 소득을 늘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데 치중한 결과 중의원 7명에 불과했던 군소정당은 28명까지 몸집을 4배로 불렸다. 자민당과 공명당 연립 여당의 중의원 과반까지 무너진 지금 일본 정치계의 ‘캐스팅보트’로 자리매김했고, 지금은 자민당을 향해 자신들의 정책을 받아들여야만 지원해주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상황이다.

공제액이 상향된다면, 파트 타임 등 비정규직은 일을 더 하고도 부양 가족으로 남을 수 있게 되고, 정규직은 연소득과 무관하게 기초 공제액이 높아지면서 실질소득 증대로 이어질 수 있다. 물가는 오르는데, 임금은 제자리 걸음인 일본인들 입장에선 반길 만한 제도이다.

하지만, 논의 과정을 지켜보면 부양 공제 대상으로서 전업 주부인 여성이 가사와 육아를 돌보며 왜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역할을 담당하는지는 담론에서 빠져 있는 듯 하다.

‘103만엔·130만엔의 벽’에 대한 재고가 처음은 아니다. 2022년 기시다 전 총리 때는 아예 폐지도 검토했다. 1961년 전업주부에 대한 처우 개선을 위해 도입된 제도가 반세기가 넘도록 유지되면서 오히려 여성을 비정규직으로 내몰고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일본은 지난 2022년 기준 6077만 명의 취업자 중 34.7%인 2111만 명이 비정규직인데, 이 중 68.5%인 1446만8000명이 여성이었다. 공제액 상향은 미봉책이다. 그런데도 국민 관심이 고조된 것은 그만큼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하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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