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급여 공화국 해부 〈상〉
중앙일보는 17일 비급여 관리 체계와 실손보험 제도 개선 방안을 찾기 위한 전문가 좌담회를 열었다. 구슬이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장, 김진현 서울대 간호학과 교수,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국장, 서남규 국민건강보험공단 비급여관리실장,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이하 호칭 생략)가 참석해 머리를 맞댔다. 이들은 세부 방안에선 견해가 달랐지만, 비급여 진료와 실손보험을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데엔 한목소리를 냈다. 본지 신성식 복지전문기자가 진행했다.
▶사회=비급여 관리가 필요한가.
▶김진현=우리나라처럼 비급여 가격·빈도 등 모든 걸 의료기관 맘대로 하도록 내버려 둔 국가는 없다. 환자들은 강제보험(건강보험)에 따라 건보료를 납부하지만, (비급여로 인해) 내 진료비가 얼마인지 가늠하지 못한다. 예상치 못한 의료비 지출의 위험에서 가입자를 보호한다는 건보의 본질적인 기능이 무너진 셈이다.
▶이주열=비급여 문제가 사회보장 제도를 훼손하는 수준으로 커졌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할 필요성은 충분하다. 소비자는 잘 모른 채, 공급자(의료기관)가 하자는 대로 비급여 진료를 하는 상황을 통제할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남은경=의료 이용자 입장에선 의사가 제안하는 비급여가 안전한지, 효과가 있는지 명확히 알기 어렵다. 꼭 필요하지 않을 수 있는 의료 행위에 과도한 부담을 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은 병·의원의 비급여 진료 단가 등을 보고받아 지난해부터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의료기관에서, 어떤 비급여 항목을 제공하는지 명확히 알긴 어렵다. 전체 비급여 항목도 추정만 할 뿐, 몇 개나 되는지 확인할 수 없다.
▶서남규=‘비급여’라고 통칭하는 의료행위 중에서도 (급여 항목처럼) 표준 코드가 있는 비급여도 있지만, 없는 것들도 많다. 특히 영양주사·미용·성형 등의 선택 비급여는 정해진 코드·명칭이 없어 분류부터 어려운 상황이다. 합리적인 의료 이용을 위해선 비급여 목록을 정비해 필수적인 것과 선택적인 것부터 구분하는 게 중요하다.
▶김진현=현황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급여·비급여 구분 없이 일단 의료기관이 총진료비 내역을 제출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실태 파악부터 해야 그다음 단계인 비용 관리도 가능하다.
▶남은경=전수 파악이 필요하다고 본다. 어떤 비급여 항목이 얼마에, 어떻게 제공되고 있는지 알아야 이에 상응하는 정책도 나올 수 있다. 의료계가 반대할 수 있는 만큼 조심스럽겠지만, 보건당국이 비급여 현황을 정확히 파악해야 금융당국의 실손보험 통제도 가능해진다.
▶사회=새로운 비급여는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
▶서남규=의료기관이 새로운 비급여 진료를 하려고 할 때, 등록·신고를 거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현재 대만이 그렇게 한다.
▶김진현=공보험 환자를 대상으로 의료기관이 임의로 비급여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대부분 국가에선 신의료기술이라 해도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 같은 기관에 안전성·유효성 평가 자료가 있어야 (진료를) 할 수 있다. 필요하다면 건보를 적용하되, 필요성이 낮다면 비급여로 가는 대신 가격은 마음대로 받지 못하게 돼 있다. 우리도 이러한 목록·가격을 정부가 관리해야 한다.
▶사회=일본처럼 건보 급여·비급여 혼합진료를 금지하는 게 필요한가.
▶남은경=처음부터 전면 적용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도수치료, 백내장 수술 등 주요 과잉 비급여들은 많은 국민이 인식하는 문제인 만큼 이들 항목에 먼저 시도한 뒤,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게 좋다고 본다.
▶김진현=영양주사처럼 의학적 필요가 낮지만, 환자 선택으로 이뤄지는 비급여는 혼합진료 금지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이를 이용하려는 환자는 진찰료 등 급여 항목까지 전액 본인부담 하도록 해야 한다.
▶사회=공급자뿐 아니라 의료 소비자 수요도 적절한 통제가 필요할까.
▶김진현=실손보험으로 본인부담금이 없으면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1·2세대 실손보험은 비급여에 더해 법정 본인부담금까지 보장해주는데, 앞으로의 실손 상품은 이걸 못하게 해야 한다. 본인 부담이 있게끔 공·사보험이 협력해야 양쪽이 상생할 수 있다.
▶구슬이=실손보험은 '보험료를 내기만 하고 돌려받지 못하면 손해’라는 인식 때문에 더 의료 이용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 국민이 실손 대신 선택할만한, 더 매력적이되 지속 가능한 의료비 보장 제도를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 싱가포르의 의료저축계좌(매달 일정액을 납입하고 의료비 목적으로 인출해 사용) 같은 해외 사례를 참고하고, 세제 혜택이나 의료비 외 사용처 확대 등을 추가하는 걸 검토해볼 수도 있다.
▶사회=법을 바꿔야 하는 대안도 많은데, 개선이 가능할까.
▶구슬이=실손보험 제도 개선 등에 대한 국회의 관심은 아직 한참 부족하다. 실손으로 이득을 보는 소비자도 있기 때문에, 정치인 입장에선 굳이 현 제도를 건드릴 이유는 없는 것이다. (비급여·실손 제도) 관련 주체가 여러 곳으로 나눠진 것도 큰 문제다.
▶이주열=비급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 생태계를 크게 건드리는 건 우려스럽다. 대만처럼 비급여 진료에 가격 상한선을 정하는 등 현재 틀을 유지하면서 문제가 되는 부분을 디테일하게 핀셋 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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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정종훈ㆍ남수현 기자 sssh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