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경제부 기자들이 쓰는 [경제뭔데] 코너입니다. 한 주간 일어난 경제 관련 뉴스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서 전해드립니다.

국내 건설사들의 공사 실적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든 가운데 공사 현장에서 대형사고와 중대재해가 잇따르면서 업계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진적 산재 공화국을 뜯어고치겠다”며 ‘산재와의 전쟁’을 선언한 뒤 사망 사고율이 다른 업종에 비해 유독 높은 건설업계에 쇄신 요구가 집중되고 있습니다.
17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발간한 ‘건설동향 브리핑’ 보고서를 보면 2023년 건설업 사고사망만인율(노동자 1만명당 사망자 비율)은 한국이 1.59퍼밀리아드(만분율)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제 10대국 중 가장 높았습니다.
사고사망만인율이 가장 낮은 영국(0.24)과 비교하면 한국은 이 수치가 6.6배나 높았습니다. 10개국 건설업 사고사망만인율 평균은 0.78로, 한국의 절반보다 낮은 수준입니다. 다른 국가에 비해 한국 건설노동자가 죽음에 더 가까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형 건설사들 사이에선 ‘다음 중대재해 발생은 우리 차례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높습니다.
올해 초 가장 크게 주목받은 사고는 현대엔지니어링이 시공을 주관한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사고였습니다. 지난 2월25일 발생한 일이었는데요, 건설·토목업계 관계자들은 이 사고를 “10년 이내 보지 못한 대형 참사”로 꼽았습니다.
이 사고로 노동자 6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습니다. 국토교통부 건설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는 곧 사고 원인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대통령이 ‘산재 사망사고’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후 처음 나오는 사고 조사 결과여서 발표 이후 결정될 행정처분 수위에 관심이 쏠립니다.

업계에선 사고 원인이 시공사에 있다는 결론이 나오면 영업정지 등 최고 수위의 행정처분이 뒤따를 것으로 봅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 3월에도 2건의 인명사고가 이어지자 주택 및 인프라 공사 수주를 전면 중단한 상태입니다.
지난 4월에는 경기도 광명시의 신안산선 공사 현장에서 터널이 붕괴하고 노동자 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사조위는 포스코이앤씨가 시행한 이 사고에 대해서도 다음달 15일 종료를 목표로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 5일 대표이사를 교체하고 전국 104곳 사업장의 공사를 중지한 상태입니다. 올해 들어서만 공사 현장에서 4명이 사망해 이 대통령으로부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는 강한 질타를 받았는데도 또 사고가 난 데 따른 조치입니다.

이 대통령이 포스코이앤씨에 대해 “건설면허 취소와 공공입찰 금지 등 가능한 모든 제재 방안을 찾아보라”고 지시한 후 업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습니다. DL그룹 계열사인 DL건설은 지난 8일 경기도 의정부시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추락사가 발생하자 사흘 만에 대표이사부터 현장소장까지 임원진 전원이 ‘일괄 사표’를 냈습니다.
금융시장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 등 국내 주요 신용평가사는 최근 포스코이앤씨의 신용등급 하향 조정을 우려하는 취지의 보고서를 냈습니다. 한신평은 “현 시점에서 구체적인 제재 수위를 예상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공정 관리와 안전사고 관련 통제 능력에 대한 신뢰성 저하로 평판 위험과 수주경쟁력 약화 가능성은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했습니다.

올해 시공능력평가 16위로 올라선 서희건설의 ‘뇌물’ 의혹도 건설업계 평판에 큰 타격을 주고 있습니다. 이번 의혹은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이 ‘김건희 특검팀’에 자수서를 내면서 알려지게 됐는데요, 이 회장의 자수서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 당선 직후 김건희 여사에게 6000만원대 명품 목걸이를 직접 전달했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이 회장은 김 여사에게 자신의 맏사위를 공직에 기용해달라는 청탁을 했다고도 썼습니다. 이 회장의 맏사위인 박성근 전 검사는 실제로 윤석열 정부에서 국무총리 비서실장으로 발탁됐습니다. 특검은 현재 이 회장 등 서희건설 관계자들을 뇌물 공여 혐의 등으로 수사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건설경기도 좋지 않은데 정부가 ‘기업 때리기’를 한다고 하지만 건설업계가 그간 노동자 목숨을 가볍게 여긴 것이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아울러 윤석열 정부 당시 서희건설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다면 수사당국이 과연 엄정한 수사를 했을까라는 ‘합리적 의심’이 뒤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