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도 시민이다

2025-01-08

1. 모든 사람은 죽는다. 2. 나는 사람이다. 3. 따라서 나는 죽는다. 누구나 들어봤을 간단한 삼단논법의 예다. 다른 예도 들어보자. 1. 우리 모두는 민주공화국의 시민이다. 2. 과학자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다. 3. 따라서 과학자도 시민이다.

우리 사회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가진다. 그중 하나가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다. 시민의 부분집합으로서 과학자도 당연히 다른 이가 침해할 수 없는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가 있다.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다. 정치적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다른 이의 의사 표현 자체를 막거나 비난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우리는 삶의 매 순간 어떤 것이 맞고 틀린지, 어떻게 하는 것이 좋고 나쁜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판단한다. 판단은 사실에 대한 것일 수도, 가치나 당위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손에서 놓은 돌멩이가 위가 아니라 아래로 떨어진다는 판단, 오늘 아침에 마신 우유가 유효기간을 훌쩍 넘겨 상했다는 판단은 사실판단이다. 오늘 아침 어제처럼 우유를 마실지 그제처럼 주스를 마실지, 길 위에 놓인 만원짜리 지폐를 슬쩍 주머니에 넣을지 말지, 어느 정당을 지지할지에 대한 판단은 객관적 사실판단이 아닌 가치에 대한 판단이다.

과학은 주로 사실판단을 다룬다. 아무리 내가 특정 결과가 연구를 통해 확인되기를 바란다고 해도, 연구로 얻어진 명확한 사실판단이 가치판단과 다르다면 바꿔야 할 것은 가치판단이지 사실판단이 될 수 없다. 많은 이가 과학을 신뢰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가치판단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사실판단의 힘이다. 모든 과학자가 원하는 결과를 자연이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면, 자연이 아니라 과학을 바꿀 일이다.

뉴턴의 운동방정식을 적고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해서 한 줄 한 줄 수식 계산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물리학자의 가치판단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공화당을 지지하는 미국 물리학자와 민주당을 지지하는 미국 물리학자가 얻은 결과가 다르다면 각자의 계산을 꼼꼼히 다시 살필 일이지, 지지 정당이 달라서 결과가 달라졌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물론 계산의 모든 단계가 하나같이 가치중립적이라고 해서 연구 전체의 가치중립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방금 마친 계산이 몇 m 높이에서 원자폭탄을 터뜨려야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라면, 이 문제에 관심을 둘지 말지는 사실이 아닌 가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간혹 과학의 가치중립성과 과학자의 가치중립성을 혼동한다. 과학의 가치중립성 자체에 내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백번 양보해 과학이라는 독특한 활동이 가치중립적이라고 해도, 과학 연구를 진행하는 개별 과학자가 매사에 가치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가능할 리 없는 비약이다. 자신의 연구가 가치중립적이라고 주장하는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에 대한 가치판단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과학자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고 나는 믿는다. 지난 정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의 국회 청문회에서 특정 단체를 후보가 후원한 것을 두고 장관 후보의 정치색을 문제 삼는 국회의원이 있었다. 과학자의 가치중립성이라는 불가능한 신화를 다시 보게 되어 안타까웠다. 사람들은 이처럼 자주 과학과 과학자의 가치중립성을 혼동하고, 과학자가 정치적 의견을 드러내면 비난하기도 한다. 헌법이 모든 시민에게 보장하는 권리임에도 말이다.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국적이 있다. 언제 어디서나 성립하는 보편성을 추구하는 과학은 당연히 국경이 없어서 유럽의 양자역학 방정식이 대한민국과 다를 리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학자는 어떠한 정치적 색채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연역할 수는 없다. 과학자뿐 아니라 모든 시민이 마찬가지다. 우리는 한 사회의 시민으로서, 땅 위에 두 발을 딛고 살아가는 구체적인 개인으로서만 세상에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가치중립적일 수 없고, 누구나 정치적 의사를 가진다. 아무런 정치적 의견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조차도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겠다는 가치판단에 근거한 정치적 의사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다.

1. 과학자도 시민이다. 2. 나는 과학자다. 3. 따라서 나는 과학자이자 시민으로서 내가 가진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자유가 있다. 대통령 윤석열이 헌법을 어겼다는 것은 가치판단이 아닌 명백한 사실판단이다. 나의 가치판단이 말한다. 헌법을 어긴 윤석열을 파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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