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자주 보는 정보 진짜라 믿고
불확실성 뺀 단정적 표현 선호
건강한 의심과 회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 필요해
2024년 연말은 격변과 혼란 속에서 지나갔지만, 새해가 밝고 나서도 대체 무엇이 진실일까,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 하는 의문만 더 커지고 있다. 사실 누구나 당연히 알고 있는, 납득 가능한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가? 그런데 한 가지 사건에서만 생기는 의문이 아니라 뉴스와 신문기사들을 보면 볼수록 더 이해하기 힘들어지는, 납득이 어려운 이야기들이 점점 더 많이 등장한다. 진실은 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혼란스럽지 아니할 수 없다.
무엇이 진실인가에 대한 논쟁은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이다. 최근 뉴스에 따르면, X와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플랫폼뿐 아니라 메타가 소유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과 같은 미디어에서도 더 이상 팩트 체크를 하고 가짜뉴스를 지우기 위한 시도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미국에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며 일론 머스크를 필두로 여러 빅 테크 기업의 대표들이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권리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결정짓는 잣대 자체가 중립적일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 역시 트렌드처럼 되어 버렸다.
뇌 안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헷갈리게 되는 이러한 혼란이 생겨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일단 뇌가 ‘진짜’와 ‘가짜’ 정보를 구분하는 메커니즘을 살펴봐야 한다. 뇌는 대체 왜 사실이 아닌 정보를 사실이라고 믿을까?
첫째, 뇌는 자주 보는 정보를 진짜라고 믿게 된다. 2017년도부터 온라인의 가짜뉴스를 연구해 온 MIT의 뇌과학자 데이비드 랜드 교수팀은 우리의 뇌가 반복적으로 어떠한 정보에 노출되었을 때, 그 정보의 노출 빈도가 그 정보가 사실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점진적으로 높인다는 것을 보여줬다. 실험자에 참가한 500명의 사람에게 여러 뉴스의 헤드라인을 평가하게 시켰고, 나중에 돌아와서 다시 어떤 헤드라인들이 사실일지의 가능성에 대해서 평가하게 했다. 사람들은 여러 뉴스 헤드라인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가짜뉴스 헤드라인이 더 자주 보였으면 그 뉴스가 사실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답했다.
둘째, 뇌는 지름길을 좋아한다. 특정 전문가나 인물을 신뢰하면 그 사람의 말을 통해서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다른 정보를 찾아보기를 귀찮아하는 경향성이 아주 높다. 스탠퍼드대학교의 샘 와인버그 교수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은 책이나 논문에서 어떤 정보를 접할 때와 온라인의 SNS에서 어떤 정보를 접할 때를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 어떤 정보에 대해서 책이나 논문을 따로 찾아보는 습관을 지닌 사람의 경우는 가짜뉴스에 속을 가능성이 훨씬 작다. 우리의 뇌는 게으르기에 어떤 사람의 말을 듣고 믿을 만한 정보의 소스를 찾았다고 생각하면 책과 논문 같은 다른 소스를 찾아보려 하지 않는다. 뇌의 에너지 소모를 아끼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경향성 때문에 사람들은 편향된 정보도 사실이라고 믿고 가짜뉴스에 속을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것이다. 끊임없이 팩트 체크를 하는 사람의 경우는 계속 새로운 정보를 업데이트해서 가짜뉴스에 잘 속지 않는 반면, 특정 웹사이트나 채팅방, 특정 인물이 하는 이야기를 떠나지 않는 사람의 경우는 가짜뉴스에 더 잘 속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셋째, 뇌는 불확실성을 배제한 단정적인 표현을 더 좋아한다. 2020년에 미국 NYU 연구진이 발표한 한 논문에서는 뇌의 반응도가 “팩트와 진실”인 것처럼 포장된 정보에 대해서 “그럴 가능성도 있다”는 종류의 정보에 비해 훨씬 높다는 것을 보여줬다. 즉, 뇌는 단정적으로 표현된 정보에 대해서 더 진짜라고 신뢰하고, 가능성과 확률을 이야기하는 불확실성이 더 높게 표현된 정보에 대해서는 덜 신뢰한다는 것인데, 같은 정보라도 표현방식에 따라서 진짜와 가짜의 판단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문제는, 온라인에서 더 많이 퍼지는 가짜뉴스의 경우는 “이건 백 퍼센트 맞다”라는 형태로 과하게 표현하는 사기꾼들과 가짜 전문가들이 많은 반면, 실제로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과학자들이나 진짜 전문가들의 견해는 조심스럽게 “확률”이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가짜뉴스가 더 진짜라고 확신하게 되는 이유기도 하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수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바보들과 광신도들은 항상 자기 자신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신에 차 있는 반면, 보다 현명한 이들은 늘 의심과 회의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생긴다.”
인터넷도 나오기 전인 20세기 초에 남긴 말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울림이 있는 것 같다. 지금 이 시대야말로 지나친 확신에 찬 이들을 경계하고, 세상을 건강한 의심과 회의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연습해야 할 때가 아닌가.
장동선 궁금한뇌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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