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를 처음 만난 건 2004년 여름 전북작가회의 사무실에서다. 젊은 작가들과 어울리고 싶다며 입회원서를 쓰겠다고 했다. 한 뼘 높이의 스프링노트를 내밀고, 무작정 한글 워드 작업도 부탁했다. 일흔 중반의 노(老) 작가가 볼펜으로 힘주어 쓴 글자들은 그 자체로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일제강점기나 6·25전쟁은 뻔한 소재가 아니에요. 그 역사에서 우리는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했잖아요. 더 파고들어야 합니다. 젊은 작가들에게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저도 조국 통일에 도움 되는 글을 쓸 겁니다. 내 남은 생을 온통 소설 집필에 바칠 겁니다.”
몇 차례의 만남에서 그는 글쓰기에 대한 당위와 다짐을 들려줬고, 그 후 20여 년 동안 쉬지 않고 소설을 쓰며 약속을 지켰다. 지난봄 작고한 정창근(1930∼2025) 소설가 이야기다.
소설가 정창근은 누구도 넘보기 힘든 수식어가 있다.
첫째는 남과 북에서 자기 뜻으로 소설을 발표한 유일한 국내 소설가다. 독일 국적으로 살던 1989년 북한 문인들의 초청으로 2주간 북한을 방문한 그는 월간지 『통일문학』(조선문인협회)에 ‘동진’이란 필명으로 소설 「들쥐」를 발표했다. 한국전쟁 후 사회개혁을 외치던 지식인들이 변절하는 상황에서 개혁의 뜻을 굽히지 않던 한 젊은이의 방황과 좌절을 그린 중편소설이다.
둘째는 90대까지 왕성한 필력을 보여준 장편소설의 장인이다. 전주 출신인 작가는 5·16 군사쿠데타 이후 민주화운동에 몸담았다가 1974년 간호사인 아내와 함께 독일로 갔고, 그곳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솟아난 노래」(1985)를 시작으로 『남산 위의 저 소나무(전 5권)』(1994)와 『포츠담 인터체인지』(1995)를 냈다. 1997년 귀국해 정읍에 터를 내리고는 오직 소설 쓰기만 매달렸다. 고희인 1999년에는 『소설 정여립』을 냈고, 2000년 ‘남북 두 조국에 보내는 독일 망명객의 사랑 이야기’를 부제로 한 『브란덴부르크 비가』, 2013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인 『슬픈 제국의 딸: 데이신다이』, 2014년 임진왜란 때 역관 홍순언의 일대기를 다룬 『마자수의 별이 되어』 등 쉬지 않고 발표했다. 국내외 문예지에 중·장편소설을 연재하고, 퇴고를 거쳐 다시 세상에 내는 일도 반복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 쫓기는 심정으로 글쓰기에 몰입했고, 구상이 끊기지 않도록 펜을 잡으면 몇 날 며칠 쉬지 않고 단숨에 써 내려갔다. 심지어 90세를 넘기고도 장편소설 『보복』(2020), 『쪽발이』(2021), 『북소리』(2022)를 발표하며 상상 초월의 필력을 보여주었다.
그의 소설 쓰기가 멈췄다는 비보를 듣고 첫 만남에서 받은 『남사당의 노래』(모시는사람들·2003)를 다시 펼쳤다. 이 작품은 침묵과 인(忍)으로 힘겹고 고달픈 세월을 끌어안고 유랑했던 남사당패의 삶에 동학농민혁명을 녹여낸 그의 일곱 번째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혁명에 참여한 남사당패가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 영웅이 아니라, 백성 그 자체임을 역설한다. 정창근 소설가가 평생 숱한 문장으로 전하고자 했던 고단한 삶의 애환과 예인의 혼, 폭압에 대한 항거, 시대의 해학, 따뜻한 위로가 행간 가득 스며있다. 스스로 남사당이 돼 통일의 노래를 불렀던 작가가 뱉어낸 피의 언어다.
최기우 극작가는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소설)로 등단했다. 희곡집 <상봉>,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은행나무꽃>, <달릉개>, <이름을 부르는 시간>, 어린이희곡 <뽕뽕뽕 방귀쟁이 뽕 함마니>, <노잣돈 갚기 프로젝트>, <쿵푸 아니고 똥푸> 등을 냈다.
이영종 시인 - 유종화 시집 '그만큼 여기' 최아현 소설가-권진희 '언제라도 전주' 이경옥 동화작가-로이스 로리 '기억전달자' 오은숙 소설가-시몬느 드 보부와르 '아주 편안한 죽음' 김정경 시인-앤드루 포터 '사라진 것들' 기명숙 작가-정양 '나그네는 지금도' 장은영 작가-티나 오지에비츠 '도시의 불이 꺼진 밤' 장창영 작가-고대현 '어쩌다 환경인' 김근혜 작가-김연진 '눈물 파는 아이, 곡비' 김영주 작가-윤미숙 '렛츠 기릿 나나나나는 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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