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의 종말은 사이버로부터 온다.'
사이버 보안 분야를 처음 취재하기 시작할 즈음 전문가들로부터 추천받은 책 중 하나다. 인사이동으로 새로운 분야를 맡게 되면 다시 제로(0)베이스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 때문에 빠른 시일 내 해당 분야를 파악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필독서' 추천을 부탁하곤 한다.
제목만으로 구미가 확 당기는 이 책의 저자는 뉴욕타임스에서 10년간 사이버 보안 분야 등을 취재한 니콜 펄로스 기자다. 7년여간 해커, 활동가, 수사관, 학계 인사 등 3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를 기반으로, 사이버 무기를 은밀히 거래하는 암시장과 제로데이(알려지지 않은 소프트웨어 보안 취약점) 위협 등을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전한다. 특히 사이버전은 현재 진행 중이며, 국가 배후 해킹조직이 활개를 치며 우리가 영위하는 디지털 사회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음을 경고한다.
최근 SK텔레콤의 유심(USIM) 해킹 사태와 중간 조사 결과를 보고 있자면,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받은 충격이 오버랩된다. 사이버 보안 분야를 취재하는 동안 크고 작은 해킹사고를 목도했지만, 협력사가 해킹을 당하거나 직원의 개인용컴퓨터(PC) 자료가 탈취되는 수준이었다. 국내 1위 통신사의 메인서버에 악성코드가 심어져 고객의 유심 정보가 빠져나갔다는 것은 SK텔레콤 스스로 인정하듯이 '역대 최악의 해킹사고'라 할 수 있다. 조사가 진행되면서 피해 규모가 당초 예상보다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사이버 보안 분야에 막 입문한 기자에게 이 책을 추천한 이유가 어렴풋이 짐작된다. 해킹 공격에 맞서는 사이버 보안이 공상과학(SF) 영화가 아닌 현실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취재에 임하는 게 도움이 될 거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끊임없이 터지는 보안사고를 접하며 수도 없이 강조한 '사이버 보안 중요성'은 메아리 없는 외침으로 끝나는 듯 했다. 하지만 이번 사고는 국민 대다수가 사이버 보안에 눈을 뜨게 된 사건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기업의 종말은 사이버로부터 올 수 있다”고 말이다.
조재학 기자 2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