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베트남 패망 50년을 맞으며

카(Edward H. Carr)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역저를 통해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했다. 역사가들은 과거에 있었던 사실들을 토대로 역사를 구성한다. 그렇다면 과거에만 천착하면 되지, 왜 현재와 끊임없이 대화해야 하는 것인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말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과거 인간의 행동 패턴에 미래 예측 시사점
미국은 80년 전 진주만, 2001년 9·11, 50년 전 베트남에서 똑같은 실수
인종·문화적 편견, 무책임한 관료주의와 비밀주의, 트럼프 2기도 답습
친위 쿠데타 모면한 한국, 미국과 무역협상, 공정한 선거 관리 잘 되나
과거와 현재는 어떻게 대화하는가?

첫째로 현재의 관점에서 역사서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유교적 가치가 중심이었던 사회에서는 유학의 정통을 잇고 있는 기자조선이 중요했지만, 민족국가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고조선 중심으로 역사서술이 바뀌었다. 모든 과거의 사실들이 다 역사가 아니다. 시대에 따라서 어떤 과거 사실들은 역사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둘째로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진단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문제를 진단하기 위해 경제학적·정치학적, 그리고 사회학적 접근이 모두 중요하지만, 역사학적 방법은 사회과학과는 달리 장기적으로 문제에 접근한다. 금융위기의 경우 짧게는 발전국가의 시대, 길게는 식민지 시대로부터 위기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역사는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셋째로 역사를 통해서 현재와 미래에 필요한 교훈을 얻는다는 점이다. 역사가 반복된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역사학자들은 거의 없지만 인간이 역사를 만들기에, 유사한 패턴의 행동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 따라서 과거에 일어났던 인간의 행동 패턴을 분석하면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예측할 수 있다. 이는 과거의 실수나 문제를 적절히 파악하면 미래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진주만과 9·11의 만남
이런 관점에서 보면 최근 발간된 『전쟁의 문화』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로 해석할 수 있는 역사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저자 다우어(John W. Dower)는 일본 근대사 연구자이다. 문서와 함께 시각자료를 잘 이용하는 연구자이며, 개인적으로는 2007년 다우어로부터 한국 근현대사의 사진들을 이용한 공동연구 진행을 제안받기도 했었다.
이 책은 80년 전의 태평양 전쟁과 2001년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 사이에서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시도했다.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한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는 이 두 사건에서 미국이 유사한 실수를 했으며, 유사한 대응을 했다고 판단했다. 그는 9·11 이후 그라운드 제로에 선 성조기를 보면서 1945년 이오지마에 세운 성조기를 되돌아본 것이다.
그가 우선 주목한 것은 지피지기(知彼知己)를 강조한 일본 연합함대 사령관 이소로쿠(山本五十六)가 했던 말이었다. ‘적이 오만하게도 태만했던 덕분에 일본의 기습은 성공했다.’ ‘진주만의 성공은 그들이 우리를 얕잡아 봤기 때문이다. ‘위험은 무시할 때 가장 먼저 찾아온다’와 ‘작은 적이라고 무시하지 마라’라는 말은 정말로 중요하다.’
책임지지 않는 관료주의
두 번째로 주목했던 것은 책임지지 않는 관료주의 문화였다. 진주만 사건과 9·11 테러 조사보고서에서는 공통점이 있었다. “불의의 사건이 정부에 일어나는 경우, 그것은 보통 복잡하고 여러 차원에 걸쳐있는 관료제적인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는 책임의 유기도 포함되지만, 책임이 너무 부실하게 규정되거나 모호하게 위임되어 있으면 어떤 조치도 소용이 없다.”
다우어에 의하면 9·11의 시점에서 오만했던 미국 정부는 80년 전 진주만 사건 당시의 인종적 오만과 문화적 자만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그리고 승리에 취해 집단사고, 성전(聖戰), 체리피킹(유리한 근거만 선택), 임시변통, 비밀주의 등이 지속되었다. 집단이 사고하는 것에 대해 모두가 비판 없이 따라가고,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만을 받아들이려 하며, 자신의 행위를 성스럽게 포장했던 양태를 반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50년 전인 1975년 4월 30일 남베트남이 패망했다. 베트남 전쟁에서도 미국은 동일한 실수를 했다. 무엇보다도 미국은 상대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상대 국민이 왜 미국이 지원하는 정부를 반대했는지, 적들이 어떤 전술을 쓰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는 것이 사후 평가였다. 그렇기에 미국은 태평양 전쟁과 한국전쟁에서 성공적이지 못했던 전략폭격을 퍼부었다. 베트남도, 세르비아도, 이라크도, 아프가니스탄도 폭격으로 인해 항복하지 않았다.
사이공에서 무역전쟁으로
미국뿐만 아니라 인류가 전혀 반성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1970년대를 통한 반전운동과 인권외교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 속에서 나온 결과였다. 유럽에서도 68혁명이 있었다. 인간만이 동물도 인공지능(AI)도 하지 못하는 과거의 실수에 대한 성찰을 통해 현재와 미래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고 믿었건만 현실은 결코 그러지 못했다고 반성했다. 그러나 그때 뿐이었다.
9·11이라는 최악의 테러를 겪기 이전에 인류는 이미 걸프전, 유고슬라비아 내전, 르완다 학살을 겪었고, ‘블랙 호크 다운’으로 알려진 소말리아 사태를 경험했다. 1941년을 반성하면서 언급되었던 인종적 편견이나 문화적 오만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개입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는 결국 어떤 진보도 얻지 못했다. 오히려 이슬람국가의 탄생, 탈레반의 승리라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지피지기의 부재, 무책임한 관료주의, 집단사고, 체리피킹, 그리고 비밀주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듯하다. 트럼프 2기에서 나타나고 있는 보호무역정책 속에서도 이런 현상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 같다. 관세율의 적용이 체리피킹을 통해 잘못된 통계를 인용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고, 미국의 산업구조를 잘못 읽어 며칠 만에 관세 유예를 선언하기도 했다.
작은 국가가 아니라 세계질서를 움직이는 미국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현상은 전 세계를 점점 더 무정부 상태로 몰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2022년 제77차 유엔총회에서 선언했던 것처럼 가장 위험한 시대에 접어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제법도 국제기구도 무력화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한국 역시 50년 전에 끝난 베트남 전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남베트남 정부가 패망하자 한국 정부는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분열하면 안 된다. 공산국과의 협정을 전적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 동맹국에만 의지하면 안 된다. 미국이 남베트남을 배신했고, 남북 베트남 사이의 평화협정은 지켜지지 않았으며, 남베트남에서의 적은 북베트남이 아니라 남베트남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제대로 교훈을 얻지 못한 한국 사회
한국 정부가 제시한 교훈들은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진정 얻어야 할 적절한 교훈을 놓친 것도 적지 않았다. 우선 베트남에서 사망하거나 다치고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했던 군인들에게 사과해야 했다. 그리고 베트남에서의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으며, 결과적으로 남베트남 정부를 지킨다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던 사실에 대해 반성해야 했다. 그리고 남베트남과 달리 국민이 지키고 싶은 국가를 만들겠다고 했어야 했다.
베트남 전쟁에서의 경험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했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의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키고 싶은 나라를 만들기보다는 긴급조치를 선언하기도 했다. 또한 50년 전의 경험에 대한 논의는 현재 한국 사회의 분열을 조장하는 또 다른 기제가 되고 있다. 아직도 참전군인에 대한 보상, 과거사 문제 등 해결되지 않은 과제들이 남아 있다. 베트남 전쟁 시기에 있었던 친위 쿠데타와 긴급조치는 2024년 재현될 수도 있었다.
작년 말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철저한 지피지기 위에서 미국과의 무역협상, 주변국에 대한 외교정책이 결정되는지 의문스럽다. 위기 상황에서 이를 수습해야 하는 일부 지도자들의 움직임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관료제적 문제와 책임의 유기, 그리고 부실하거나 모호하게 규정되어 있는 책임의 문제를 떠오르게 한다.
위기상황에서 제시되는 자료와 결정들도 의심스럽다. 유리한 자료들만을 내놓는 건 아닌지, 비밀리에 모든 결정이 나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정확한 사실 파악이 필요하지만, 미국 고위관료의 입에서 한·미 간의 협상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기도 했다. 어떤 정책도, 어떤 협상도 투명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베트남 파병 과정도 전혀 공개되지 않았고, 정부 발표 속에서 우리 군인들은 항상 승리하고 있었다. 지금 정부와 일부 언론은 미국과의 무역협상이 잘 될 것이고, 공정하게 선거관리가 이루어질 것이라고만 한다. 정말 우리는 과거와 제대로 대화하고 있는가?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