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의 엑스레이(X-ray) 사용을 허용하는 법안 발의에 의료계의 반발이 확산하는 가운데 '레이저 미용시술'이 양한방 갈등의 새로운 도화선이 됐다.
20일 의료계에 따르면 이달 초 서울 동대문경찰서가 한의사 A씨의 국소마취제 사용 및 레이저·초음파·고주파 의료기기 시술에 대해 '불송치(혐의 없음)' 결정을 내린 걸 두고 의사단체와 한의사 단체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한의사가 레이저 의료기기로 미용시술을 하고 이 과정에서 국소마취제를 사용한 것이 면허범위를 벗어난 행위인지 여부다. A씨는 환자에게 국소마취제인 '엠마오 플러스 크림'을 도포한 뒤 레이저·초음파 의료기기의 일종인 '오퍼스듀얼·스펙트라'로 미용시술을 해 한의사의 면허 범위를 벗어난 의료행위를 제공한 혐의로 고발당했다. 그러나 경찰은 A씨가 사용한 국소마취제가 의사의 처방 없이 약국에서 구입 가능한 일반의약품이고, 레이저·초음파 기기가 한의학 교육과정에서 사용되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대한의사협회(의협) 한방대책특별위원회(한특위)는 즉각 규탄 성명을 내고 "한의사가 미용 시술을 명목으로 의료행위를 수행하고 대가를 수수한 건 무면허 의료행위 및 한의사 면허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며 "이번 결정은 의료체계의 근간을 정면으로 훼손한 중대한 판단 오류"라고 주장했다. 일반의약품이라고 해도 피부에 마취 크림을 도포한 후 레이저 시술을 하는 행위는 의사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의료행위이며, 한의학 교육과정에 포함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행위를 정당화해선 안 된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의협 한특위는 "경찰은 법적 판단 기준을 잘못 적용하고 법리를 오해해 무면허 의료행위에 대한 처벌 근거를 간과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의 신청 및 수사 심의 신청을 통해 신속히 재수사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한의계는 "레이저·국소마취제를 활용한 한의사의 미용치료는 합법"이라고 경찰의 불송치 결정을 환영하고 나섰다.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는 이날 입장문에서 "한의사들이 한의대와 전문의 수련 과정에서 레이저·초음파·고주파 원리 및 사용법을 충분히 교육받고 있고, 다수의 학회에서도 실습 기반의 임상 교육을 지속적으로 이수하고 있다"며 "양의계는 근거 없는 왜곡·폄훼 멈추고 본연의 진료에나 집중하라”고 비꼬았다. 현행 의료법이 한의학과의 전공과목 중 한방 피부과 영역을 독자적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한의사도 수술·수혈·전신마취 등의 침습적 치료를 시행할 수 있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음에도 양의계가 왜곡된 주장과 악의적인 폄훼를 일삼는다는 지적이다. 한의협은 동대문구청이 보건복지부의 유권해석에 따라 한의사의 레이저, 고주파, 초음파 및 단순 자동진단 의료기기 사용이 가능하다고 답변했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레이저수술기’를 한방행위 관련 장비로 분류해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국민을 기만하는 양의계의 이 같은 행위는 즉각 중단돼야 마땅하다"고 질타했다.
의료기기 등을 둘러싼 의사와 한의사의 다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올해 초 엑스레이 방식의 골밀도 측정기를 사용해 기소된 한의사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수원지법 항소심 판결이 검찰 상고 없이 확정되자 한의협은 엑스레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고 선언하며 보건복지부를 향해 "조속히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 안전관리책임자 자격기준'에 한의사를 추가하라"고 촉구했다. 국회에서는 지난달 한의사의 엑스레이 사용을 허용하는 법안을 발의하며 한의사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의협은 해당 법안을 "면허 체계의 근간을 훼손하는 악법으로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시도"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지난 16일에는 한의사의 엑스레이 허용 법안을 포함해 국회에서 발의된 성분명처방 의무화 법안, 정부가 추진 중인 검체검사 위·수탁 제도 개편 등에 반발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국의사 대표자 궐기대회'를 열었다. 국회와 정부가 의사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이들 법안을 강행한다면 전면 투쟁에 돌입한다는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