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은 오랫동안 주식·채권에 투자하는 자산운용사와 헤지펀드 등 기관투자자들에게 유용한 도구였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2018년 인공지능 연구소를 설립하고 AI 플랫폼 ‘알라딘’을 구축해 시장 데이터 분석과 포트폴리오 관리 같은 핵심 기능에 투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주식·채권 시장처럼 막대한 데이터가 상시로 생산되는 환경에서 AI의 활용은 더욱 일반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생성형 인공지능(GAI) 혁명 이후로 AI의 추론 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어 투자 전략 수립과 포트폴리오 관리의 고도화까지 가능해졌다. 조만간 기관투자자뿐 아니라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AI 어드바이저’의 보편화가 현실이 될 것으로 보인다.

JP모건이 지난해 5월 선보인 ‘인덱스GPT’가 그 대표 사례다. 투자 테마를 입력하면 관련 키워드를 생성해주고, 뉴스 기사 등에서 해당 키워드가 언급된 기업을 선별해 준다. 예컨대 클라우드 컴퓨팅, e스포츠, 사이버 보안과 같은 테마에 부합하는 기업을 추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도록 자문한다.
반면 비상장 기업에 직접 투자하거나 사모펀드에 출자해 간접 투자하는 기업 투자 시장에서는 그간 AI의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GAI 혁명이 본격화되면서 투자 자문을 제공하는 증권사·회계법인·법무법인·컨설팅업체 등에서 적극적인 AI 도입으로 생산성을 높이려는 시도가 이어졌고, 가시적인 성과도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투자 대상 기업과 산업에 대한 리서치 분야에서 GAI가 맹활약 중이다. 자문사들은 특화된 AI 솔루션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면서 자체 AI 플랫폼 구축에도 막대한 노력을 쏟고 있다. 이를 통해 리서치 결과의 신뢰성을 높이고 시간과 비용도 획기적으로 절감하고 있으며, 이러한 경험을 고객사인 기관투자자에게 전파하는 작업도 본격화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베인앤드컴퍼니는 기관투자자들이 AI를 직접 도입하면 5년 이내에 업무 자원의 30~35%를 절감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남는 시간과 인력을 투자 실행이나 전문성 강화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투자 성과 향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일부 기관투자자들은 아예 AI를 투자심의위원회 구성원으로 포함하는 실험도 시작했다. 현재는 AI에 실질적인 투표권을 부여하지 않고 있으나, 의사결정에 필요한 데이터가 축적되고 신뢰성이 쌓이면 투표권을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인간적인 직관이나 경험을 배제한 AI의 의사결정이 실제로 더 나은 투자 성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이철민 VIG파트너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