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키우는 연구

2025-05-07

연구과제 제안서 작성의 시기가 돌아왔다. 이맘때면 대학의 많은 교원과 연구소의 연구원들이 제안서를 쓰느라 모니터 앞에서 골머리를 앓는다. 작년에 R&D 정책이 급변하며 개인이 수행하던 소액 과제들이 사라진 후, 각종 과제의 선정률이 현저히 낮아진 여파가 상당하다. 학회에 참석한 동료들을 만나도 반가움은 잠시, 대화의 주제는 어느새 연구비 걱정으로 바뀌곤 한다. 작은 대학이라면 교육에만 신경을 쓰지, 무슨 대단한 연구를 한다고 연구비가 필요하냐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이는 대학의 연구와 교육을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호기심을 가진 학생에게 연구의 경험은 최고의 교육이기 때문이다. 세계적 수준의 연구를 지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생 개개인을 중심에 두고 그들의 역량을 세심히 키워내는 연구도 필요하다.

필자의 연구 주제 중 하나는 디스플레이 기술이다. 20년의 재직 기간 중 100명을 훌쩍 넘는 학생들이 이 주제에 관심을 갖고 필자의 연구실을 거쳐갔다. 일부는 대학원생으로서 학위에 걸맞은 연구를 수행했지만 많은 경우 학부 연구생으로 1~2년을 보낸 후 기업 연구소로 들어가곤 했다. 교수와 대학원생을 멘토로 학부 교과목에서 다루기 힘든 장비와 재료를 활용해 조금씩 아이디어를 확장하며 성과를 이뤄가는 연구 경험은 그들에게 기업의 R&D에 필요한 역량과 자신의 내력을 키우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는 소규모나마 연구과제라는 든든한 언덕이 버티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부의 집중 지원이 필요한 분야의 대규모, 전략적 연구과제도 필요하다. 그에 못지않게 소수의 학생들과 머리를 맞대고 연구 다양성을 추구하며 의미 있는 성과를 이뤄가는 소규모의 풀뿌리 과제도 중요하다.

사람을 소중히 키워나가는 연구, 중소·중견기업과의 유기적 연계 속에 인재를 키우는 연구를 해오던 많은 연구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씨를 뿌리려면 밭이 있어야 한다.

고재현 한림대 반도체·디스플레이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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