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전문가’ 서정건 교수, 특강에서 강조
“北 비핵화 포기 땐 韓 현실적 대안 필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 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날 가능성이 매우 큰 만큼 우리 정부가 시급히 대비해야 한다는 학계의 진단이 나왔다. 향후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는 경우 과거 빈손으로 끝났던 하노이 회담과 달리 한국에 불리한 내용의 타협이 이뤄질 수 있으므로 여야가 합심해 대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서울대 총동창회는 18일 서울 마포구 SNU 장학빌딩에서 올해 마지막 ‘수요특강’ 행사를 개최했다. 미국 전문가인 서정건 경희대 교수(정치학)가 연사로 나서 ‘2024 미국 대선 분석과 미국 외교 전망’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서 교수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해 텍사스대 정치학과에서 미국 의회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미국 국내 정치 연구 분야의 권위자다.
트럼프는 1차 집권 기간인 2018∼2019년 김정은과 총 3차례 만나 회담을 가졌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이 이른바 ‘노딜’(No deal)로 끝나며 북한 비핵화 등 가시적 성과를 내지는 못 했지만 김정은을 국제 외교 무대로 이끌어 냈다는 점만으로도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 서 교수는 트럼프를 자기애가 대단히 강한 인물로 규정하며 “싱가포르와 하노이에서 김정은과 만났을 때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은 일을 잊지 못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정은과 다시 만날 가능성이 매우 큰 만큼 우리 정부가 시급히 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회동 시점에 대해 서 교수는 “2027년 이후가 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오는 2025년 1월 취임하는 트럼프의 임기는 2029년 1월까지다. 일단 연방의회 상하 양원의 중간 선거가 있는 2026년 말까지는 인플레이션, 불법 이민 등 미국 국내 문제 해결에 주력함으로써 공화당의 선거 승리에 ‘올인’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헌법에 따라 트럼프는 3연임에 도전할 수는 없다. 따라서 2027년이 되면 야당인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도 차기 대선 후보를 뽑기 위한 레이스에 본격적으로 돌입하게 된다. 서 교수는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을 꺼리는 트럼프로서는 김정은과의 ‘깜짝’ 만남으로 세계인의 시선을 끌고 싶을 것”이라며 “에어포스원(미국 대통령 전용기)이 평양 공항에 착륙하는 이벤트를 연출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거기서 어떤 논의가 이뤄질 것인지는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노딜로 끝난 하노이 회담과 달리 이번에는 한국에 불리한 ‘배드딜’(Bad Deal)이 이뤄질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미국을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폐기하고 핵무기는 현 수준에서 동결하거나 일부 축소한다는 전제 아래 미국이 대북 제재를 해제하는 시나리오가 바로 그것이다. 서 교수는 “과거 북·미 정상회담 때와 달리 미국 내부에서 ‘그래도 노딜보다는 배드딜이 더 낫다’고 여기는 목소리가 커졌다”며 “이 경우 ‘한국의 현실적 대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우리의 입장 정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12·3 비상계엄 사태와 그로 인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로 인해 한국은 ‘트럼프 리스크’에 대응할 컨트롤타워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 국무총리가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와 대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란 언론 보도가 나왔으나 서 교수는 “트럼프가 한 권한대행과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외교 당국을 향해 “트럼프 측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지금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대비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김태훈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