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현장에서] 집중력의 빈자리를 메우는 멍 때리기

2025-08-03

요즘 아이들을 보면 멍하니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등굣길엔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보고, 쉬는 시간엔 친구와 대화하거나 학원 숙제를 한다. 하교 후에도 곧장 학원으로 이동하고, 저녁 시간은 다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앞에서 마무리된다. 그 사이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없다. 아이들의 하루는 온통 자극으로 가득 차 있다.

며칠 전, 수업 시간에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를 보게 되었다. 평소 활발하고 산만한 친구라 그런 모습이 오히려 낯설었다. “무슨 생각해?”라고 묻자, “아무 생각도 안 했어요. 그냥 하늘 보다가 잠깐 눈 감았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순간, 그런 시간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 뇌가 발달하는 시기의 아이들이 끊임없는 자극 속에 노출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 미국 텍사스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멍때리는 시간, 즉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가 활성화되는 시간은 창의력, 기억력, 자기 성찰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네트워크는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을 하지 않을 때 주로 작동하며, 그동안 경험한 정보를 정리하고 새로운 사고를 생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디지털 기기에 과도하게 노출된 아이들은 이러한 멍때리기 시간이 부족하다. 한 연구에선 하루 평균 4시간 이상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청소년은 인지 기능에서 낮은 수준을 보였고, 특히 집중력 유지 시간이 짧았다. 이는 단순히 학업 성취와 연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자기 통제력, 감정 조절 능력, 사회적 관계 형성 등 모든 측면에서 영향을 준다.

교실에서도 이와 관련된 현상이 자주 관찰된다. 예전 같으면 잠시 멍하니 있다가도 금세 활동에 집중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짧은 집중 후 곧장 “다 했어요”, “심심해요”라는 말을 반복한다. 정적인 활동보다 시각 자극이 강한 콘텐츠에 익숙해진 결과다. 조용한 독서 시간조차 집중하지 못하고 책장을 넘기기만 하는 경우가 늘었다. 아이들 집중력이 약해진 걸 교실에서 체감한다.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수업 마무리쯤에 의도적으로 ‘멍때리는 시간’을 넣기 시작했다. 활동이 끝난 후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눈을 감고 있어 보자”는 식의 안내를 하고, 1~2분간 교실 전체를 멈춘다. 처음에는 킥킥 웃거나 실눈을 뜨고 두리번거리던 아이들도, 차츰 멈춰있는 상황에 적응하게 되었다.

이러한 짧은 멍때리기 시간은 아이들에게 일종의 숨 고르기 역할을 한다. 감정이 과도하게 고조된 상황을 진정시키고, 활동 간의 전환을 부드럽게 해주는 기능도 한다. 특히 체육 시간처럼 과도하게 승부욕이 올라오는 상황을 정리하는데 큰 도움을 얻었다. 조금 전까지 씩씩거리던 아이들도 눈을 감고 있으면 단숨에 차분해진다.

멍하니 있는 시간은 낭비가 아니다. 오히려 그 시간 동안 뇌는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스스로를 정리하는 힘을 기른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학습이 아니라 더 건강한 집중이다. 그 출발점은 어쩌면, 그냥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데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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