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동반한 한미 무역협상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당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인공지능(AI)을 선도하는 자국 빅테크 기업 보호를 명분으로 디지털세와 플랫폼 규제에 추가 관세를 경고하면서 협상 타결까지 난항이 예상됐지만, 두 달여 만에 타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빅테크 산업을 중시하는 이유는 수치로도 명확하다. 미국은 전통적인 일반 재화·서비스 무역수지에서 적자를 기록하지만, 디지털 분야에서는 막대한 흑자를 내고 있다. 미국 경제분석국(BEA)에 따르면, 정보서비스 등 디지털 방식의 서비스 수출은 2023년 6560억달러로 전체 서비스 수출의 64%를 차지한다. 즉, 디지털 무역은 미국 경제의 핵심 수익원이자,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 자산인 셈이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빅테크 보호를 강조하는 트럼프 정부도, 내부적으로는 디지털 생태계 독점 구조와 사회적 기여 부족에 깊은 고민을 안고 있다. 미국 주요 규제기관 수장들 역시 빅테크의 불공정 행위를 경계하고 있다. 브렌든 카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은 “빅테크 기업들이 통신망을 이용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면서도 정당한 기여는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고, 앤드루 퍼거슨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 역시 “트럼프-밴스 행정부는 빅테크의 불공정 행위에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미국 의회에서도 공유되고 있다. 미국 의회 조사처(CRS)에 따르면, 지난 수년간 플랫폼 기업에 대한 독점금지법 및 소비자보호법 개정 논의가 이어지고 있으며,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 재원을 조달하는 '보편적 서비스 기금(USF)'의 기여 대상을 아마존·구글 등 대형 플랫폼 기업으로 확대하려는 입법 논의가 2020년대 초반부터 지속돼 왔다. 또, 2025년 회기에서도 관련 법안이 재발의돼 구체적 검토 중이다. 이는 가계와 기업이 광대역망 구축 비용을 부담하는 반면, 빅테크들은 이를 활용해 이익만 취하고 있는 불공정 구조를 바로잡으려는 취지다.
우리 정부 역시 이번 협상에서 자동차·반도체 등 기존 산업의 경쟁우위를 지키는 동시에, AI·플랫폼을 통한 미래 성장 기반을 확보해야 하는 복합적 과제를 안고 있다. 단기적으로 플랫폼 규율은 협상 과정에서 난제로 작용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디지털 시장의 공정성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끄는 제도적 기반이 될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가 세계 3대 AI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2030년 전체 인터넷 트래픽의 64%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AI 트래픽을 감당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필수다. 이를 위해 정부는 △데이터센터 전력 및 냉각 인프라 지원 정책, △AI 전용 백본망 투자 인센티브 △대형 플랫폼 기업의 인터넷망 공정 이용 구조 확립 등 대응책을 병행해야 한다. '망 무임승차 방지법' 역시 지속 가능한 AI 생태계 조성 차원의 디지털 정책 관점으로 조속히 제도화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AI가 이끄는 새로운 산업혁명의 여명기다. 제조·금융·교육 등 전 산업의 생산성과 가치 사슬이 AI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으며, 이는 국가 간 디지털 패권의 핵심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전환기에 요구되는 새로운 국제 질서는 디지털 주권의 확립과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의 구축이다. 각국은 자국의 이익만 앞세우기보다, 글로벌 디지털 생태계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상호 신뢰를 통한 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우리 정부 역시 장기적인 관점의 정책 판단과 적극적인 글로벌 대응을 통해 AI 시대 새로운 성장의 길을 주도적으로 열어가야 할 것이다.
손혁민 가천대 전자공학과 교수 hson102@gach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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