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 유족은 '상속세 폭탄' 맞게됐다…무안 참사 1년, 또다른 비극

2025-12-09

김성철 유족회 상임이사 - 무안공항 참사 1년…아내·딸 잃은 가장의 절규

무안공항 여객기 참사가 오는 29일로 1년을 맞는다. 항공사고 특성상 가족들이 유명을 함께 한 경우가 많아 비극성이 더하다. 그러나 참사 원인 규명과 책임자 문책은 전혀 이뤄진 게 없다. 유족들이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삭발하고 릴레이 시위를 하는 이유다. 참사 유가족 협의회 상임이사인 김성철(53)씨도 아내와 딸을 동시에 잃었다. 지난 7일 대통령실 앞 시위에 나선 김 이사를 만났다.

179명 숨진 참사…40여명 입건이 고작

항철위, ‘오염된다’며 자료 감추기 급급

‘셀프 공청회’ 열려다 유족 항의로 연기

고아 유족들, 상속세 폭탄 맞을 우려 커

“줄초상 유족 많아…18명 숨진 집도”

어떻게 시위에 나서게 됐습니까.

“참사 1년인 오는 28일까지 희생자 수에 맞춰 179일간 모든 유가족이 돌아가면서 시위하고 있습니다. 마침 오늘(7일)이 숨진 맏딸의 생일이라 이날을 택해 시위하러 올라온 거죠. 1남 1녀를 뒀는데 이젠 아들만 남았습니다.”

가족을 둘이나 잃으셨으니 슬픔이 오죽하시겠습니까.

“희생자가 둘인 유족은 평균입니다. 세 명에서 다섯 명 잃은 분들이 많고 18명을 잃은 유족까지 있습니다. 부모님 팔순을 기념해 온 식구가 여행 갔다 변을 당한 겁니다. 부부 여행객이 많았으니 아이들만 남은 집도 많고, 아이들끼리 여행 갔다 변을 당해 악상을 치른 집, 남편이나 부인들끼리 여행 갔다가 홀아비·과부가 되신 분들도 많습니다.”

시위에서 요구하는 핵심은요?

“참사 조사 기구인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항철위)가 우리 유족들에게 정보를 전혀 공개하지 않아요. 179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참사인데 1년이 지나도록 처벌된 사람 하나 없고 원인도 규명된 게 전무해요. 경찰도 9개월 동안 잠잠하다 석 달 전부터 지금까지 관련자 40여명을 기소도 아니고 입건한 게 전부입니다.”

어안이 벙벙합니다.

“꼬리 날개 등 사고기 파편들이 1년째 무안공항 내 공터에 방수포만 씌워놓은 채 방치돼 있어요. 유족들이 3주 전쯤 시신의 일부라도 발견될까 해서 파편들 조사를 요청한 끝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20명쯤 와 정밀 검사를 하기로 했어요. 한데 검사 당일 항철위가 현장에 기자들 접근을 막고, 유족들에게도 ‘파편은 볼 수만 있고 촬영은 안 된다’고 해요. 이유를 물으니 ‘촬영하면 오염이 된다’는 겁니다. 어머니 유족들이 격분해 ‘1년간 허허벌판에 파편을 방치한 건 항철위 아니냐. 파편에 시신 일부라도 있으면 그야말로 오염됐을 것 아니냐’고 따졌어요. ‘촬영이 안 된다면 파편 내역 리스트라도 보여달라’고 하니까 ‘없다’는 거예요. 파편 내역 조사 한번 안 했으면서 무작정 ‘촬영하면 오염된다’라니 어이가 없었죠. 결국 검사는 무산됐습니다.”

항철위는 당초 4일과 5일 중간보고 성격의 공청회 개최를 추진했는데 유족들 반대로 연기했는데요.

“항철위는 공청회에서 ▶조류(버드 스트라이크) ▶방위각시설·둔덕(로컬라이저) ▶기체·엔진 ▶운항 등 총 4개 주제별로 조사 내용을 설명하고 유족들을 대표한 전문가들과 논의할 예정이었는데요. 그러려면 유족 측 전문가들이 조사 내용을 어느 정도 알아야 공청회에서 토론이 되잖아요. 그래서 항철위에 ‘1차 조사 개요라도 달라’고 하니 ‘못 준다. 공청회 현장에서 주겠다’고 해요. 유족은 공청회에서 질문을 못 하게 법에 규정돼 있어 전문가들이 대신 묻도록 한 건데 이분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공청회장에 들어가게 되는 거죠. 말이 됩니까. 또 조류와 둔덕은 이미 지난 7~8월에 용역 보고서가 나왔다고 합니다. 유족들이 그때  조사 내용을 달라고 했는데 또 ‘오염된다’며 못 준다는 겁니다. 조달청이 조사했으면 공개가 되는데 이 건은 유독 모 연구소에 수의계약을 준 것이라 접근도 못해요. 유족들이 항의하니까 ‘공청회 때 발표하겠다’고 해요.”

“분노한 유족 6명, 자진 삭발”

그래서 유족들이 공청회를 거부했군요.

“저를 포함해 6명이나 삭발하며 항의한 끝에 연기된 거죠. 항철위는 독립기구라고 주장하지만, 인사권을 국토부가 갖고 월급도 국토부에서 나와요. 사무국장부터 국토부에서 파견된 인사입니다. 국토부 책임을 묻는 기구가 국토부 하부조직이니 말이 되나요. 지난 6월 이재명 정부로 바뀌면서 유족들은 항철위 행태가 달라질 거로 기대했는데, 변한 게 전혀 없어요. 결국 국토부 내 카르텔이 문제의 본질 아닌가 합니다.”

그동안 항철위가 유족들에 해준 것은요?

“형식적인 간담회 정도밖에 없어요. 항철위는 늘 하는 말이 유가족과 10여회 넘게 소통했다는 것인데, 실은 ‘조사가 총 16단계인데 지금은 몇 번째 단계’라는 얘기나 해주는 수준입니다. 조금이라도 내용을 내놓은 건 지난 7월 엔진 조사 결과인데 그때 항철위는 ‘조종사가 엔진을 끈 게 사고의 원인’이라며 기자회견을 열고 조종사 과실로 몰아가려 했어요. 유족들이 격하게 항의해 회견은 무산됐고 항철위는 나중에 국회에서 ‘다른 요인이 있을 수 있다’고 정정했죠.”

지난 7월 항철위가 사고기 엔진 조사 결과를 발표하려다가 중단된 이유군요.

“그렇죠. 손상은 오른쪽 엔진에 많았는데 조종사가 실수로 왼쪽 엔진을 끄는 바람에 양쪽 엔진이 다 정지돼 참사가 났다고 항철위는 주장했어요. 그러나 어차피 왼쪽 엔진도 손상된 만큼 엔진을 끈 것이 결정적 원인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새떼 충돌과 관제 시스템 등도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겁니다. 특히 외국 전문가들이 지적한 대로 다른 나라 공항에서 찾기 힘든 둔덕형 시설물이 활주로 끝에 있던 점은 반드시 주요 원인으로 다뤄졌어야 합니다. 그 구조물에 사고기가 충돌한 끝에 폭발한 것 아닙니까? 항철위나 국토부가 그건 쏙 빼고 조종사 실수가 유일한 원인인 양 몰아가니까 유족들이 분노한 거죠.”

둔덕형 시설물을 주요 원인으로 보는 이유는요?

“2007년 무안 공항 건설 당시 방위각 시설물이 항공 안전 구역에서 276m밖에 떨어져 있지 않게 설계됐으니 이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또 구조물 건설 당시엔 내부에 없던 콘크리트가 이후 누군가에 의해 설치됐어요. 이후 콘크리트가 문제로 지적됐지만 매년 유야무야 넘어가다 참사 전 해인 23년에도 지적이 되자 콘크리트를 제거하는 대신 그 위에 더 보강해버린 거예요. 이러니 참사가 난 것이라 유족들은 생각합니다. 누가 이런 결정을 하고 결재를 했는지 공문서에 다 나와 있을 텐데 국토부는 이 얘기만 나오면 답변을 피합니다. 2007년 공항 설계 때부터 지난해까지 구조물과 관련해 결재한 관리들이 수십명 될 텐데 구조물이 사고 원인으로 판명 나면 줄줄이 책임을 지게 될까봐 그런 것 아닐까 합니다. 한달 전쯤 유사한 구조물이 설치된 국내 공항들에 대해 국토부가 권고사항을 발표했는데 ‘장애물이 될 수 있는 것 치워달라’는 겁니다. ‘둔덕 구조물을 치워달라’고 하면 자신들의 책임을 자인하는 격이 될까봐 이렇게 에둘러서 표현한 듯해요. 이밖에 국토부나 항철위는 179명의 사망원인을 ‘화재’에서 찾으며 ‘동시에 숨졌다’고 하는 분위기인데 이것도 문제예요.”

“179명 사망 시점이 똑같다? 경악”

왜 그런가요?

“유족들은 참사 원인을 구조물과의 충돌로 인한 기체 폭발로 보는데 ‘화재’라고 모는 것부터 문제고요. 또 화재가 발생해도 179명이 동시에 숨질 수는 없습니다. 몇 초 간격이라도 사망 시점이 달라지죠. 그런데 항철위 측이 내놓은 사망 시점은 전원이 똑같으니 말이 안 됩니다. 이로 인해 부모가 다 숨져 고아가 된 유족들은 상속세 폭탄을 맞게 된 점도 큰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먼저 숨지고 어머니가 몇 초 뒤 숨졌다면 아버지 재산이 어머니에게 상속되면서 수억 원의 공제 혜택이 생기는데, 부모가 동시에 숨졌다면 그 혜택이 없어져 고아 유족들의 상속세 부담이 급증한 끝에 집을 팔아야 하는 처지에 몰립니다. 부모 잃고 집까지 잃어 피눈물 흘리는 신세가 되죠. 민주당 의원들에게 호소했더니 ‘안타깝지만, 부모 동시 사망의 경우 상속세 폭탄 피할 길이 없다’고 하니 큰일입니다.”

집권당 입장에선 특히 텃밭에서 일어난 참사이니 신경을 썼을 듯한데요.

“민주당이 신경을 썼죠. 참사 서너 달 만에 특별법이 만들어졌는데 상당히 빠르게 입법이 된 거라 하더군요. 근데 그분들은 이걸로 다 됐다고 생각한 듯해요. 참사 당시 계엄 정국이었고 이후 탄핵과 대선 등 큰일이 이어지다 보니 언론의 관심이 적었던 것도 안타깝죠. 늦었지만 최근 정부가 유족들 항의를 받아들여 항철위를 국토부에서 총리실로 이관시킨 만큼 객관적 조사가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유족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대부분 무안공항에서 텐트 치고 생활하며 순번을 정해 상경해 1인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저도 1주일에 6일을 공항 라운지에서 살고, 하루만 집에 가서 빨래를 해결합니다. 부모 잃은 미성년자와 대학생 유족이 10여명 되는데, 트라우마를 최소화하기 위해 유족회에선 그들의 후견인들을 통해서만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방송 기자였던 딸을 잃은 60대 남성 유족이 돌연 숨져 슬픔이 더하죠.”

돌아가신 가족 얘기 좀 해주시죠.

“아내와 딸(당시 26세)은 다 사회복지사였어요. 군에 간 대학 2년생 아들(22)이 내년 초 제대하기 전 모녀가 베트남 여행 다녀오는 길에 변을 당한 거죠. 저는 안전화 업체 연구소에서 근무해왔는데 참사 이후 일이 손에 안 잡혀 그만두고 유족회 이사를 맡은 겁니다. 아들에게 미안하죠. 한참 친구들과 어울릴 나이에 저 따라 시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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