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국방부 "이승만 농지개혁 찬양"…논란의 책, 돌연 폐기 지시

2025-08-17

국방부가 지난해 진중문고로 선정했던 도서를 “부적합한 내용”이 있다는 이유로 2주 안에 긴급히 버리라고 각 군에 지시했다. 그런데 국방부가 꼽은 폐기 이유 중 하나가 ‘농지개혁의 일방적 찬양’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선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벌어지는 ‘코드 맞춤형’ 장병 정신교육이라는 지적이다.

17일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국방부는 진중문고 도서 중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전쟁 이야기(할아버지…)』를 22일까지 회수·폐기한 뒤 보고하라는 공문을 8일 내려보냈다. 국방부는 “장병 교양증진 및 정신전력 강화에 부적합한 내용 일부 포함”을 폐기사유로 설명했다.

『할아버지...』는 육군대학 전쟁사 교관과 육군군사연구소 한국전쟁연구과장을 지낸 장삼열 한미안보연구회 사무총장이 썼다.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얘기해 주는 형식으로 개전부터 정전까지의 6·25전쟁 역사를 알려주는 교양서적이다. 지난해 진중문고로 선정돼 중대급까지 9948권이 배포됐다. 진중문고(陣中文庫)는 국방부가 일선 부대 도서관이나 생활관에 장병 교육용으로 보내는 책이다. 분야별 베스트셀러와 기관 추천 도서 명단을 두고 외부 전문가로 꾸려진 위원회가 선정한다.

유 의원실이 국방부에 질의한 결과 ①농지개혁을 일방적으로 찬양하고 ②이승만 대통령이 1950년 8월 14일 사흘간 구국 기도회를 연 뒤 비가 그쳐 융단폭격 작전에 성공했다는 구절이 『할아버지...』의 ‘부적합 내용’이다. ▶농지개혁에 대해 여러가지 평가가 있지만, 특정 입장만 반영해 균형성이 부족하며 ▶구국기도회 일화는 논리적 인과관계나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검증이 부족하다는 게 국방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 같은 내용을 지난해 진중문고 선발 과정에서 걸러내지 못한 이유에 대해선 국방부는 답하지 않았다. “앞으로 진중문고 선정 절차를 강화하겠다”고만 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추진한 농지개혁은 자작농을 늘려 사회를 안정화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이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유상매입 유상분배’ 농지개혁이 북한의 ‘무상몰수 무상분배’ 토지개혁보다 열등하다고 비판한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2023년 7월 15일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에서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는 데 가장 결정적인 장면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표면적인 이유보다 진짜 이유가 있다는 게 유 의원실의 분석이다. 바로 ‘극우 논란’ 리박스쿨과 연관성이다. 리박스쿨은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을 연구하는 역사 교육단체다. 일부 언론에선 리박스쿨이 자손군(자유 손가락 군대)라는 댓글팀을 운영해 여론조작을 시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박은정 조국당 의원은 지난 6월 16일 『할아버지... 』 추천사를 리박스쿨 강사진 출신인 김재동 목사가 썼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10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리박스쿨 청문회’에서 정을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할아버지... 』를 들고 “극우 진영의 추천 도서인데, 윤석열 정부가 1억 2000만원의 혈세를 들여 진중문고로 배포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장삼열씨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나는 리박스쿨과 관련 없으며, 김재동 목사는 지인”이라며 “국방부는 내 소명도 듣지 않고 황급히 폐기지시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집필 후 많은 전문가의 검수를 거쳤다”고 말했다.

국방부와 군 당국은 정권 교체 후 정신훈련과 정신교육의 방향을 180도 뒤집는 태도를 보여왔다.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국방부는 최근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기본교재)』에서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인 ‘담대한 구상’과 북한 추종세력의 위험성을 강조한 ‘내부 위협세력’ 관련된 내용을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기본교재』는 2023년 발간 당시 ‘내부 위협세력’의 위험성을 강조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는 “보수 정부에서 진보 정부로, 진보 정부에서 보수 정부로 바뀌면 국방부와 군 당국이 눈치를 보며 원칙 없이 정신전력 정책을 갈아엎었다”며 “일선 부대와 장병은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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