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6월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팔짱을 낀 채 의자에 앉아 있고,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가 두 손으로 테이블을 누르며 트럼프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담긴 사진은 양 정상의 갈등 정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모습으로 주목을 받았다.
20일(현지시간)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메르켈 전 총리는 오는 26일 출간 예정인 『자유: 기억 1954-2021』이란 제목의 회고록에 트럼프의 지난 집권 당시 자신이 보고 느낀 인물평을 담았다. 메르켈은 '트럼프 달래기'를 위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조언을 구했던 사실도 털어놨다. 지난 2005~2021년 독일 총리를 지낸 메르켈은 유럽의 구심점이자 '자유세계의 지도자'로 불렸다.
메르켈은 회고록에서 트럼프를 두고 "부동산 개발업자의 눈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특정 지역의 개발 허가를 받을 기회는 단 한 번뿐이고, 자신이 허가를 받지 못하면 경쟁자에게 돌아간다'는 게 트럼프의 사고방식"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트럼프에겐 모든 국가는 경쟁 관계이고, 한 나라의 성공은 다른 나라의 실패를 의미한다"며 "트럼프는 협력을 통한 공동 번영을 믿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메르켈은 지난 2017년 3월 백악관에서 한 트럼프와의 정상회담 상황을 언급했다. 그는 "트럼프는 감정적이었고, 내 이야기에는 새로운 시빗거리를 찾으려고 할 때만 귀를 기울였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트럼프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선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며"푸틴에 대해 상당히 매료돼 있는 점이 분명해 보였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지난 집권 당시 공개적으로 푸틴에 대한 호감을 표현했다.
메르켈은 "귀국 비행기 안에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며 "그날 회담을 통해 국제사회가 트럼프의 협력을 받아 함께 일할 순 없을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메르켈은 지난 2017년 함부르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선언한 트럼프를 설득하기 위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조언을 구했다고도 했다. 메르켈은 교황에게 트럼프의 이름은 밝히지 않은 채 "정말 중요한 사람들과 근본적인 견해 차이가 있을 때 어떻게 이를 해결하느냐"고 물었고 교황은 "숙이고, 숙이고, 숙여라. 하지만 부러질 정도로 숙이진 말아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메르켈과 트럼프는 재임 당시 여러 현안에서 사사건건 충돌해 '앙숙'으로 불렸다. 메르켈은 트럼프의 자국우선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며 트럼프와는 정반대되는 다자주의를 추구했다. 방위비의 증액 갈등 끝에 트럼프는 독일주둔 미군 감축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메르켈이 트럼프의 G7 정상회의 초청을 거절하고 트럼프가 메르켈과의 전화 통화 도중 "멍청이"란 막말을 퍼부었다고도 알려졌다.
폴리티코는 "유럽 정치 지도자들에게 여전히 존경받는 메르켈의 트럼프에 대한 이런 혹평은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를 준비하는 지도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짚었다. 메르켈은 다음 달 미국에서 절친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함께 출판기념회를 연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다만 세계 지도자들 사이에선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모델'을 따르고, '메르켈 모델'은 피하자'는 기류도 존재한다고 알려졌다. 트럼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한 아베의 외교력을 본받고 트럼프와 대립한 메르켈의 전철을 밟지 말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