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인공지능(AI)과 국제정치 역학
2025년 새해에도 인공지능(AI)이 초래하는 디지털 전환(DX), 즉 ‘AI 전환(AX)’이 세간의 큰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AI 전환은 국제정치의 전환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미·중 AI 패권경쟁이다. 이 두 나라의 AI 경쟁은 단순한 기술과 산업의 경쟁만이 아니다. 경제뿐만 아니라 안보·국방·외교·규범 등 국제정치 전반에 걸친 다차원적 패권경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AI 전환 시대의 국제정치 전환을 이해하는 핵심이자 미래 국가전략 수립의 전제가 아닐 수 없다.
AI 기술은 디지털 부국강병 달성 위한 첨단기술 역량의 상징
외교 등 국제정치 전반에 걸친 다차원적 패권경쟁으로 확대
개방형 협력 질서에서 지정학 중심 폐쇄형 경쟁 질서로 변화
전환의 시대에 국가적 생존 위해 종합적 ‘국가책략’서둘러야
첫째, 최근 가속화되는 미·중 기술경쟁에서 AI의 비중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과거 해당 시기 첨단기술의 우위를 확보한 나라가 글로벌 패권을 장악했던 것처럼 오늘날 AI 기술은 디지털 부국강병을 달성케 하는 첨단기술 역량을 상징한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미·중 양국은 모두 국가적 차원에서 AI 기술혁신에 매진하고 있다. AI 기술 투자 면에서 미·중은 선두를 겨루며 경쟁하고 있다. 다만 미국이 세계 민간 AI 투자의 3분의 2가량을 도맡고 있다면 정부 AI 투자에서는 중국이 전 세계 국가를 모두 합친 것보다 1.5배나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AI 모델 개발에서도 미·중은 1, 2위를 다투지만, 최근 양국의 격차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 AI 모델 개발을 위한 컴퓨팅 파워를 의미하는 AI 반도체 분야에서는 미국의 엔비디아가 글로벌 시장의 80~90%를 점유하며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기타 분야의 미·중 AI 경쟁력을 평가하면 미국이 우수한 인력과 데이터 인프라에서 앞서가고 있다면 중국은 기술적으로 미국을 추격하는 가운데 AI 모델 개발의 기반이 되는 로컬 데이터의 규모와 가용성을 바탕으로 잠재력을 키워가고 있다.
폐쇄형으로 변하는 AI 생태계
둘째, AI 생태계의 성격 변화는 미·중 AI 패권경쟁의 양상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기존에 AI는 개방형 오픈소스 생태계에서 학습됐으나 최근 오픈 AI나 구글과 같은 AI 선두주자가 나서 소스코드를 공개하지 않는 추세를 이끌어 가고 있다. 이러한 폐쇄화의 조짐은 개방형 생태계에 편승하여 미국을 추격해 온 중국의 행태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전략 변화와도 맥을 같이 한다, 특히 2021년 기준으로 총 7300만 명의 깃허브(GitHub) 이용자 중에서 중국 국적자가 10%나 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미국은 AI 생태계의 개방성을 재고하게 됐다.
이러한 대립의 양상은 양국의 디지털 플랫폼 경쟁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전반적으로 미국 플랫폼 기업들이 앞선 가운데 디지털 미디어와 콘텐트 및 전자상거래 등 여러 층위에 걸쳐서 ‘차이나 플랫폼’이 약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업 간 플랫폼 경쟁에 양국 정부까지 가세하면서 ‘플랫폼 지정학’을 들먹일 정도가 되었다. 여기에 더해서 자칫 인터넷이 둘로 쪼개지는 ‘분할인터넷(Splinternet)’이 출현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한편 이러한 미·중 플랫폼 경쟁의 핵심에 추천 AI 알고리즘 개발 경쟁이 자리 잡고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셋째, 최근 미국의 대중국 AI 수출입 제재도 양국의 패권경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중국산 AI 제품과 서비스가 지닌 데이터 안보 문제를 경계하는 미국의 제재는 AI 반도체뿐만 아니라 안면 인식 AI와 틱톡 플랫폼, 커넥티드카 부품 등으로 확장되고 있다. 미국은 2023년 8월에 발표한 ‘AI 행정명령’에서 특정 AI 시스템에 대한 대중국 투자를 금지했다. 또한 미 정부는 중국 AI 기업들의 미국 클라우드 서비스 사용을 금지하기도 했다. 이러한 대중국 규제의 행보는 향후 거대언어모델(LLM)에도 적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AI 기술의 안보 문제를 보는 미·중 양국의 인식이 너무 달라서 그 자체가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다. 미국이 ‘경제 안보’와 ‘중국 견제’를 중시한다면 중국은 ‘체제 안정’과 ‘국가 주권’을 앞세운다. 중국은 최근에 자국산 AI 제품을 수출하면서 자국의 AI 규제 표준도 함께 전파하여 개발도상국들의 기술 권위주의적 관행을 지원하려는 행보를 보인다. 예를 들어 중국은 미국보다 거의 두 배나 많은 국가에 AI를 수출하고 있는데 그 품목 중에는 중국 내에서 정치적 감시에 악용된다며 논란이 일었던 중국산 안면 인식 AI가 포함되어 있다.
AI 군비경쟁 본격화 가능성
넷째, AI 수출입 제재 논란은 군사안보 분야로도 전이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민군 겸용의 첨단기술과 전략물자는 수출통제의 대상이었는데, 최근 미국은 AI를 전략자산으로 천명하며 수출통제 목록에 군사 관련 AI도 포함했다. 특히 미 상무부가 만지작거리고 있는 LLM의 수출통제 카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미국산 LLM을 군사적으로 활용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인데 최근 메타가 자사의 오픈소스 기반 LLM인 라마의 군사적 활용을 허용하면서 중국이 미국산 AI를 군용으로 전용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더 커졌다.
이러한 AI의 군사화 추세 속에 미·중 AI 군비경쟁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있다. AI 기술은 특정 무기체계를 증강할 뿐만 아니라 재래전·핵무기전·사이버전·우주전자전·드론전·데이터전·인지전 등의 수행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중을 포함한 주요국들은 첨단무기 개발에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이를 지원할 자국 기반의 첨단 방위산업 육성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과거 원자탄 개발을 위해 진행했던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착안하여 ‘AI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초거대 프로젝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동맹외교의 주요 안건으로 부상
끝으로, 최근 AI는 외교·안보, 특히 동맹외교의 주요 안건으로 부상했다. 아직 이 분야의 국제규범이 없는 상황에서 서방 국가들의 정부 간 정책 공조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는 2020년 6월 발족한 AI 전담 협의체인 GPAI(Global Partnership on AI)다. 이외에도 미국은 동맹·파트너 국가들과 협력하여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협의체),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간 안보 동맹),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등에서 AI 분야의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서방 진영의 AI 거버넌스 구축 노력은 2023년 5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히로시마 AI 프로세스’로 결실을 보기도 했다.
이외에도 최근 여러모로 AI 국제규범이 모색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주요국들의 치열한 물밑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AI 무기규범 분야는 향후 미·중 AI 패권경쟁의 주요 싸움터가 될 것이다. AI의 의도적 남용·오용을 규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AI의 ‘설명 불가능성’, 즉 왜 AI가 그렇게 했는지 인간도 AI도 모두 알지 못하는 상황을 방지하려는 국가 간 상호 규제안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이에 미·중 양국은 지난해 11월 핵무기 사용에 대한 권한을 AI에 맡기지 않고 인간이 통제한다는 데 합의한 바 있다.
근대 국제질서의 질적 전환도
미·중 AI 패권경쟁의 전개는 여러 가지 차원에서 국제정치의 전환을 부추기고 있다. 특히 지구화 시대의 개방형 협력 질서에서 지정학 시대의 폐쇄형 경쟁 질서로의 전환이 눈에 띈다. 이 과정에서 AI는 ‘오늘의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내일의 패자’가 된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키워드다. 또한 AI 패권경쟁의 가속화는 20세기 후반 핵무기를 기반으로 형성됐던 국제질서가 AI 무기를 기반으로 새롭게 재편될 가능성도 엿보게 한다. 더 나아가 인간의 이성에 기반을 둔 근대 국제질서의 질적 전환까지도 거론케 하고 있다.
오늘날 AI 전환과 연동된 국제정치의 전환은 구한말 개항기 ‘대포와 군함’으로 대변되는 근대 과학기술 문명의 영향에 못지않은 큰 충격을 안겨줄 가능성이 있다. 단편적인 대응을 넘어서 종합적인 ‘국가책략(statecraft)’의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국가적 차원에서 AI 역량을 기르는 노력이 우선으로 필요함은 물론이다. 아울러 강대국들이 주도하는 국제정치 전환의 파도를 헤쳐 나갈 중견국 전략도 추구해야 한다. 특히 AI 전환이 초래하는 국제정치 전환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부터 깨달아야 한다.
김상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