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조 국민성장펀드, 반도체부터 집중 투자 …"기존 정책펀드와 중복 출자 최소화해야" [시그널]

2025-12-04

정부가 국민성장펀드의 첫 투자처로 대규모 반도체 인프라 사업을 검토하는 것은 150조 원의 막대한 재원을 제대로 활용할 투자처가 있느냐는 업계 일각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선 정부의 ‘관제 펀드’가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 상황에서 인공지능(AI) 반도체 분야 1위 기업인 SK하이닉스의 대규모 투자에 합류하면 안정성과 수익성·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재계와 업계는 대기업이 주도하고 민간 자본이 참여하는 수조 원 규모의 메가 프로젝트 방향이 적합하다고 평가하면서도 국민성장펀드와 기존 정부의 출자 사업 중복을 최소화하고 목표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정부와 산업은행은 국민성장펀드 투자 대상을 심의하기 위해 사모펀드(PEF) 업계 관계자 등 외부 인사를 포함한 위원회를 조직했고 증권사 등 민간 출신 전문가를 영입해 산은 내 국민성장펀드 사무국을 구성했다. 산은의 기존 간접투자실은 2%대 저리 대출인 융자 기능을 포함해 간접투융자실로 확대 개편했다. 직접투자실은 현대차증권에서 자기자본 투자를 담당해온 인사가 새로 합류한다. 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펀드로 투자하는 만큼 중복이나 불필요한 투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위원회와 사무국을 통해 촘촘하게 관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성장펀드에서 가장 큰 규모인 최대 50조 원을 차지할 인프라 투융자는 AI와 반도체 인프라에 해당하는 산업단지뿐 아니라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일반 발전소와 해상풍력발전소, 용수, 데이터센터 등 건별로 수조 원의 자금이 투입된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형태로 인프라 건설 과정에 필요한 자금을 투입하는 만큼 경영권 투자나 소수 지분 투자같이 지분성 투자에 주력하는 일반 벤처캐피털(VC)이나 PEF보다는 인프라 펀드나 증권사의 PF 부서가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인프라 시설을 건설한 뒤 사용하게 될 전력 회사나 기업, 국민성장펀드가 고위험인 지분과 후순위에 투자하고 5~6%대의 중순위에 인프라 펀드나 증권사 등 민간 자본의 참여를 예상하고 있다. 선순위 대출은 산은 등 정책금융기관이나 은행에서 맡게 된다. 다만 업계에서는 5~6%의 수익률은 비교적 중수익을 겨냥하는 인프라 펀드나 사모대출 펀드에서 참여하기에도 낮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목표로 하는 수익률이 달라서 사모대출 펀드나 인프라 펀드도 참여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정부 재정으로 고위험을 막기 때문에 일반 PF 투자보다 안정적이라는 점에서 비교적 낮은 수익률을 보완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PEF와 VC 업계에서 관심을 갖는 부분은 35조 원 규모의 간접투자 분야다. 금융 당국과 산은 등은 설명회를 통해 일부 구상을 공개했는데 주로 기술기업에 대한 투자라는 점에서 국민성장펀드가 직접 투자하는 직접투자와 간접투자 간 구분이 모호하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이에 대해 당국은 설명회를 통해 직접투자는 수익성보다는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하는 기업 투자에 해당한다면서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의 비상장사)으로 성장한 AI 기업 퓨리오사를 사례로 들었다.

국민성장펀드는 블라인드 펀드(투자 대상을 정하지 않고 여러 기업에 투자하는 대규모 펀드) 대신 대규모 프로젝트 펀드 조성을 우선할 계획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이미 대형 블라인드 펀드 조성을 마친 대형 PEF 운용사는 PEF협의회를 통해 당국에 기존 펀드가 있다고 해서 출자사 선정에 불이익을 주지 않을 것을 요청했다. 반면 그동안 대형 PEF 운용사에 밀려 중소형 프로젝트 펀드를 통한 투자에 머물렀던 중견 PEF 운용사는 이번 출자 사업을 통해 업계 순위를 뒤바꾸려는 의지를 보였다.

국회를 포함해 투자 업계는 국민성장펀드가 투자 대상으로 삼은 AI·반도체·2차전지·우주·방산·바이오·로봇 등의 첨단산업은 각 부처의 모태 펀드나 금융위원회 산하 공공기관을 통한 펀드와 겹친다는 우려가 높다. 이번 예산심의 과정에서 국민성장펀드 규모가 100조 원에서 150조 원으로 늘어난 만큼 정부 재정 투입 규모를 1조 원에서 1조 5000억 원으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재정 낭비라는 야당의 비판으로 무산됐다.

실제로 중소벤처기업부의 10대 초격차 기술 모태 펀드(누적 조성 규모 10조 원)는 올해 예산이 삭감되기는 했지만 내년 예산 8200억 원을 토대로 민간 매칭으로 펀드를 조성한다. 그 밖에 과학기술부(AI·펀드 규모 6조 원), 보건복지부(바이오백신 2조 7000억 원), 항공우주청·방사청(항공우주·방산 1조 5000억 원)은 국민성장펀드와 같은 분야에 투자하는 펀드다. 금융위 산하 펀드 가운데 국민성장펀드와 겹치는 펀드는 통합했지만 다른 부처 펀드는 남아 있는 상태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국민성장펀드위원회를 통해 다른 부처와 투자 대상이 겹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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