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 최고봉에서 아이언 샷 날리는 핑맨…“산 오르듯 골프 세일즈도 한 걸음부터”

2025-02-04

핑은 골프계의 ‘소리 없는 강자’다. 시끌벅적한 마케팅 없이도 골퍼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특히 국내에서는 G 시리즈 드라이버가 큰 사랑을 받으면서 ‘국민 드라이버’라는 기분 좋은 애칭을 얻었다. 이런 핑의 글로벌 세일즈와 마케팅을 총괄하는 팻 로프터스 부사장이 한국을 찾았다.

사실 1월의 어느날 로프터스 부사장을 만나기 몇 시간 전까지도 하더라도 그와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고민했다. 자칫 모범 답안이 정해져 있는 뻔한 대화만 오가는 게 아닐지 걱정도 들었다. 그러던 차에 유튜브에서 그의 영상 하나를 발견했다. 눈 덮인 산 정상에서 온통 얼굴에 성에가 낀 그가 아이언 샷을 날리는 게 아닌가. 그 산은 해발 6168m로 북미 최고봉으로 알려진, 미국 알래스카에 있는 데날리였다. 더 놀라운 건 그가 7대륙 최고봉 중 4개를 정복했다는 것이었다.

1955년생으로 올해 일흔 살인 로프터스 부사장은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핑에 근무하며 판매와 마케팅 분야에서 대부분의 경력을 쌓아 최고의 세일즈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극한의 산행을 즐기는 그와 핑의 조용하지만 강한 면모에는 어떤 접점이 있을까.

이번에 한국을 찾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

“한국은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골프 시장이다. 핑으로서도 그만큼 중요하다. 한국에 지금까지 총 세 차례 방문했는데 가장 최근은 3개월 전이었다. 올해는 여러 번 올 계획이다.”

올해 한국을 자주 찾게 된다는 말은.

“한국이 워낙 중요하다는 거다. 한국 총판을 맡고 있는 삼양인터내셔날과 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어떻게 시장 점유율을 높일지 등에 대해 다각도로 논의할 예정이다. 또한 한국 골퍼들은 다이내믹하고 골프에 대해 열정적이기에 관심이 많다.”

지난해 한국에 핑의 생산 공장을 설립했다. 생산 시설이 생긴 건 미국, 유럽, 일본에 이어 한국이 네 번째였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한국 시장 자체가 하나의 생산 공장을 가질 정도로 사이즈가 충분히 커졌다는 걸 의미한다. 한국에서 직접 생산하게 되면서 커스텀 피팅 제품들을 더 빠른 시간 내에 소비자한테 전달할 수 있게 됐고, 유통 매장들에게도 원하는 제품의 종류와 수량을 빠르게 공급할 수 있게 됐다. 핑 전체적으로 보면 글로벌 판매량이 많이 증가했는데, 미국 피닉스 공장에도 여유가 생겨서 미국 내에 있는 소비자들도 더 빨리 제품을 전달받을 수 있게 됐다.”

지난해 한국 생산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한 후 커스텀 피팅에 대한 수요가 많이 늘었나.

“사실 공장 자체는 작년 하반기에 세팅이 됐고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건 올해부터다. 기반을 마련했으니 올해부터는 커스텀 피팅 확대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커스텀 피팅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커스텀 피팅에 대한 글로벌 상황은 어떤가.

“시장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미국이나 일본 같은 경우에도 늘어나는 추세다. 가장 큰 이유는 고객들이 원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피팅 클럽을 사용함으로써 골프라는 게임을 좀 더 즐길 수 있고 스코어도 더 낮출 수 있다. 소비자가 원하기 때문에 일선 매장 입장에서도 커스텀 피팅 서비스 제공 여부가 중요하게 됐다. 소비자들에게는 지속적으로 커스텀 피팅이 얼마나 중요한지 홍보하면서 우리는 그걸 제대로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한국 공장 설립은 그만큼 시장 커졌다는 의미…커스텀 피팅 수요도 늘 것”

핑의 역사를 보면 힐-토 밸런스, 페리미티 웨이팅 아이언, 컬러 코드 차트 등 다양한 혁신을 이끌어 왔는데.

“핑 자체가 워낙 제품 중심의 회사다. 기본적으로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철학과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에 따라 박사급 인재를 포함한 개발진이 매우 풍부하다. 제품에 대해 진심이기 때문에 그런 혁신이 가능했던 것이다.”

핑은 가족기업이고 창업자인 카르스텐 솔하임은 엔지니어이면서 독실한 신앙인이기도 했다. 핑만의 독특한 기업 문화가 있는 것 같다.

“창업자였던 솔하임은 제품이나 유통 관계자, 소비자 등을 대하는 데 있어 진실한 마음이었다. 그런 마인드는 현재 3대까지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우리는 제대로 된 제품을, 필요한 사람에게, 올바른 이유로 제공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언제든지 진실만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것들이 변치 않고 유지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가 가족기업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경영에서도 다른 점이 있나.

“일반 회사는 매 분기 실적 보고를 해야 하고 그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핑 역시 열심히 영업을 하지만 매 분기 실적에 연연하지 않고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 팔면 결국 좋은 실적으로 연결된다는 기본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게 실제 결과로 나타난다. 또한 여성 골프 발전을 위해 솔하임컵을 개최하거나 미국에서 참전용사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런 활동들은 마케팅 목적이 아니라 골프 커뮤니티에 필요한 올바른 일을 해야 한다는 신념과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게 결과적으로 우리의 성과에도 긍정적으로 영향을 준다고 믿는다.”

일반적인 회사에서는 이익 극대화가 최고의 목적인데.

“모든 브랜드마다 그들의 존재 이유를 생각한다. 핑이 존재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우리의 직원들에게 제대로 된 근로 여건과 급여를 지급해 그들이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는 좀 더 나은 제품을 만들고 공급해 골퍼들이 더 나은 게임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우리가 생각하는 핑의 존재 이유다. 핑에서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가. 미국 핑 직원들은 다들 오래 근무한다고 들었다.

“30~40년 된 직원들도 많고, 평균 근무 기간은 22년이나 된다. 또한 핑은 골프 쪽에서는 ‘일하고 싶은 기업’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경쟁사로 이직하는 인원도 적다. 패밀리 기업이라고 해서 창업자인 솔하임 가문만 패밀리가 아니고 같이 일하는 직원들도 가족으로 여기는 문화가 있다.”

솔하임이 그런 선한 인성을 가졌던 건 어떤 것에서 비롯됐나.

“솔하임은 종교적인 가정에서 태어났고 본인 자체가 워낙 진지했다. 내가 솔하임을 만났을 때가 그가 60대였을 때였는데 어떤 일에 항상 진지하고 사람들을 워낙 좋아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쉽게 다가가고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종교적인 배경과 개인적인 품성이 어우러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핑의 존재 이유는 첫째가 직원의 행복, 둘째는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핑은 주요 골프 브랜드 중 유일하게 볼을 생산하지 않고 있다. 과거 잠시 생산하다 중단했는데 다시 뛰어들 계획은 없나.

“지금 당장 골프볼 시장에 뛰어들 계획은 없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전에 진지하게 볼을 다시 생산할까 검토한 적이 있었는데 마침 그때 전 세계적인 불황이 겹치면서 계획을 접었다. 현재 골프볼 시장은 워낙 경쟁이 치열한 데다 드라이버나 아이언, 웨지 등 클럽을 만드는 게 더 우선이기 때문에 볼에 신경 쓸 여력은 없다.”

우승자에게 주는 골드 퍼터는 현재 몇 개나 보관돼 있나.

“대략 3300개 정도의 골드 퍼터가 있다.”

핑은 후원 선수가 우승하면 골드 퍼터를 기념으로 제작해 준다. 일반 대회 우승자에겐 24k 금도금 퍼터를 주고 메이저 대회 우승자에게는 순금으로 만든 퍼터를 만들어 준다. 선수에게 주는 것과 동일한 퍼터를 하나 더 만들어 골드 퍼터 금고에 보관하고 있다. 퍼터 헤드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순금 퍼터의 경우 개당 가격이 5만~7만 달러가 된다고 한다.

등산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더라. 당신이 산 정상에서 샷을 날리는 영상을 봤다.

“높은 산에 올라가면 자기만의 어떤 퍼포먼스를 한다. 예를 들어 재를 뿌리는 사람도 있다. 나는 뭘 할까 고민하다 골프스윙을 하기로 했다.”

로프터스는 2009년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인 킬리만자로(탄자니아·5895m)를 시작으로 2010년 유럽의 엘브루스(러시아·5642m), 2011년 북미의 데날리(미국·6168m), 2012년 남미의 아콩카과(아르헨티나·6960m)까지 7대륙 최고봉 중 4개를 올랐다. 그때마다 정상에서 샷을 날리는 그만의 작은 자축 의식을 치렀다. 험준한 고산에 오르는 탓에 클럽을 챙겨가는 게 난관이었는데 다행히 엔지니어가 채를 3등분 할 수 있도록 개조해준 덕분에 배낭에 넣고 오를 수 있었다.

실제 골프볼을 때린 건가.

“그렇다. 2011년 데날리에서 샷을 할 때는 발밑이 약 1220m 절벽이어서 너무 떨린 나머지 풀스윙을 하지는 못하고 하프 스윙으로 때렸다(그는 소파에서 일어나 당시 그의 모습을 재연하며 설명했다). 그때 사용했던 채가 핑 G20 8번 아이언이었다. 나중에 아래로 내려와서 동행자 중 한 명이 관리인에게 정상에서 볼을 날렸다고 했더니, 정상에는 어떤 쓰레기도 남겨놓으면 안 된다면서 볼을 주워 왔냐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1220m 아래로 보냈는데 어떻게 주워오느냐고 했더니, 다음에는 그러지 말라고 하더라.(웃음)”

산 정상에서 샷을 날린 건 언제부터 한 건가.

“2009년 킬리만자로에 올랐을 때부터다.”

앨런 셰퍼드는 지구인 최초로 달에서 샷을 날렸다. 혹시 그걸 따라서 한 건가.

“누굴 모방한 건 아니다. 높은 산 정상에 오르면 다들 자기만의 특별한 퍼포먼스를 한다고 해서 나는 그냥 스윙을 한 번 해볼까 한 거다. 처음 킬리만자로에서 쳤을 때는 투 터치를 해서 볼이 앞으로 안 가고 뒤로 갔다.(웃음)”

처음엔 많이 긴장했었나 보다.

“아니다. 사실 처음인 데다 피곤해서 그런 거였다. 데날리 같은 경우에는 12시간 걸어 올라가는 등 최고봉에 오르려면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근데 정상에는 고작 20분 정도밖에 머무를 수 없다. 거기서 짐 풀고 클럽 조립하고 스윙을 해야 하는데 이런 것들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실수를 한 거였다.”

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뭔가.

“난 언제나 경쟁적인 삶을 살아왔다. 높은 산을 오르는 건 힘들지만 내 삶의 치열함을 그곳에서도 느낄 수 있다. 역경을 이기고 오르는 그 성취감에 희열을 느낀다. 처음 산을 오르기 시작한 게 50대 때였는데 같이 오르던 친구들은 모두 20대였다. 그들에게 뒤처지지 않고 올라가는 건 더 힘든 일이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정상에 올랐을 때의 만족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골프를 산에 비유한다면 마지막으로 오르고 싶은 산은 어딜까.

“(옆에 있던 한국 총판 삼양인터내셔날 부사장을 바라보며) 우선 핑이 한국에서 넘버원 브랜드가 되는 거다.(웃음) 잘 알다시피 등산은 중간중간 쉴 수도 있고 정상에 오른 후에는 다시 밑으로 내려오지만 골프 비즈니스는 끊임없이 계속 노력해야 한다. 나중에 내가 은퇴했을 때 내가 시작했을 때보다 핑이 더 좋아졌다면 그게 아마 보람일 것이다.”

산소가 희박한 고산을 오르는 건 극한의 고통이다. 그럼에도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면 어느 순간 정상에 이른다. 좋은 제품을 만들다 보면 언젠가는 소비자들이 찾는다는 핑의 철학이 고산 등반에 관한 로프터스 부사장의 견해와도 맞닿아 있는 듯했다.

“삶의 치열함이 등산과도 같아…언젠가는 에베레스트에도 오르고 싶어”

나이가 적지 않다. 지금도 고산에 오르나.

“작년에는 남미에 있는 파타고니아의 피츠로이산을 올랐다. 파타고니아는 빙하도 유명하고 풍경이 정말 너무 아름다웠다. 당신은 나보다 훨씬 젊으니 충분히 도전할 수 있다.”

나머지 7대륙 최고봉에 계속 도전할 계획인가.

“물론이다. 다섯 번째를 오르기 위한 열정을 갖고 있다. 근데 그걸 달성하려면 엄청난 훈련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데날리에 올랐을 때는 빙하 위에서 2주 동안 얇은 슬리핑 패드 위에서 잠을 자야 했고 오트밀 하나로 4일 동안 먹어야 했다.”

에베레스트에는 언제쯤 갈까.

“베이스캠프에는 갔었는데 아직 그 위로는 못 올라갔다. 내 컴퓨터 스크린 세이버 화면이 에베레스트산인데 베이스캠프에서 직접 찍은 거다. 일흔의 나이를 생각하면 사실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계속 훈련을 하고 몸을 만들어 언젠가는 오르겠다는 열정을 가지고 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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