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여성이 ‘다시 만난 남태령’… 이들이 ‘길 위의 싸움’ 계속하는 이유

2025-03-26

지난해 12월 이른바 ‘남태령 대첩’으로 모두를 놀라게 한 2030여성들이 3개월여만에 다시 남태령에 모였다. 지난해 12월21일 전국농민회총연합(전농)·전국여성농민회총연맹(전여농) 소속 농민들로 구성된 전봉준투쟁단의 트랙터들이 서울과 경기 과천의 경계인 남태령 고개에서 경찰 차벽에 막혔을 때 직접 나서서 해결했던 이들이 이번에도 길 위의 싸움에 동참하고 나섰다. 지난 23일 경찰의 트랙터 시위 제한 통고와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 공지가 나오면서 ‘2차 남태령 대첩’이 예고되자 이들은 25~26일 다시 밤샘 농성에 들어갔다. 지난해와 달리 이번 시위는 평일에 진행됐지만 전국 곳곳의 2030 여성들이 남태령 도로에 앉았다. 이들에게 ‘남태령’의 의미를 물었다.

[플랫] “언제나 어디에나 있었는데, 이제서야 보이는 것”…2030 여성 모인 ‘남태령’

2030여성은 왜 남태령 대첩에 모였나

26일 오전 5시쯤 만난 대학원생 임지홍씨(28)는 친구 3명이 자는 곁에서 걸그룹 에스파 노래 ‘위플래쉬’에 맞춰 “차 빼라!”라고 외치고 있었다. ‘남태령 2회차’인 그는 “봄인데도 날씨가 춥다”며 은박 담요를 덮었다. 임씨는 “지금도 계엄 같다”며 “헌법재판소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이 기각됐다는 사실을 듣고 참여하게 됐다. 윤석열 파면이 안 될까 봐 위협적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임씨는 지난해 12·3 비상계엄 이후 해결된 게 없다는 불안감이 크다고 호소했다.

지난해 첫 번째 남태령 대첩에서 이들은 시민 한 명 한 명의 힘을 알게 됐다고도 말했다. 임씨는 “광장에 있는 것 말고 시민들에게 선택지가 없는 것 같다”며 “헌재처럼 시민들이 파면 결정을 할 수 없으니 여기에 앉아 숫자로 얘기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오전 9시’ 직장 출근 시간을 지켜야 하는 박안젤라씨(30)도 다시 남태령으로 돌아와 밤샘 농성을 강행했다. 박씨는 “나 같은 작은 시민 한 명이 소리를 내서 평화적으로 이길 수 있다는 게 크게 와닿았다”라며 “남태령은 내 인생에서도 하나의 전환점이 되는 중요한 페이지”라고 말했다.

이들에게 남태령은 ‘다양성을 인정받고 시야를 확장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임씨는 전날 밤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집회 무대에 올라 찬송가를 부른 상황을 인상 깊은 장면으로 꼽았다. 그는 “탄핵 반대 집회에서 기독교가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데, 탄핵 찬성 집회가 이렇게 화합의 장이 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대학생 강나영씨(20)는 “집회에서 여성이나 성소수자 문제는 많이 언급되는데 성매매 여성에 대한 얘기는 많지 않았다”며 “최근 용주골 강제철거 논란이 화제 됐는데 성매매 여성 투쟁 당사자들이 지난 집회에서 직접 경험을 전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2023년부터 파주시청이 경기 파주시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를 강제철거하면서 그곳에 살고 있던 성매매 여성들이 반발하고 있다.

강씨는 남태령을 다시 찾은 이유로 ‘소수자들이 편하게 정체성을 드러내고 연대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을 들었다. 그는 “사실 소수자로서 정체성을 터놓고 이야기할 기회가 현실에서는 많이 없다”며 “여기서는 저와 같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또 한 번 경찰 차벽에 트랙터가 막히는 일이 반복되는 걸 보게 되자 지난 남태령 대첩 때 오지 못한 사람들도 한달음에 왔다. 지난해 12월 겨울방학이라 고향에 내려가 있던 대학생 김현주씨(22)는 “집에서 라이브 영상을 보면서 마음의 부채가 있었다” “비상계엄이 있던 날에도 여의도를 못 갔는데 군인의 장갑차 앞을 막아선 시민이나 남태령에서 고생한 분들을 생각하면 나도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시간 많은 대학생이 집회에 최대한 나와야죠”라며 웃었다.

남태령 대첩과 ‘키세스 시위대’ 등 서울의 밤샘 투쟁을 온라인으로 접한 김지현씨(25)도 남태령 소식을 듣고 경남 창원에서 곧바로 KTX를 타고 올라왔다. 김씨는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구호를 외치며 승리한 것을 보면서 우리가 힘을 합치면 어떤 것이라도 깨고 나아갈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남태령 시위대는 이날 오전 6시쯤 해산한 뒤 광화문 인근 집회로 합류했다. 전농 소속 트랙터 1대가 광화문 인근에서 경찰에 막힌 현장이었다. 남태령에서 핫팩을 나눠주던 한 20대 여성은 손을 번쩍 들어 “광화문 같이 가실 분!”을 외쳤다.

▼ 박채연 기자 applaud@khan.kr · 박정연 기자 jungyeon@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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