놔두시라, 몫 없는 이들의 몫

2025-03-10

지난달 19일 문화체육관광부는 ‘5개 국립예술단체 통합안’을 발표했다. 각 영역별로 국민 세금으로 만들어 운영하던 단체들을 하나로 통합한다는 것이다. 대상은 국립오페라단(1962년), 국립발레단(1974년 국립무용단에서 분리 독립), 국립합창단(1973년),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1985년 사설로 창단, 2001년 문체부 산하 재단법인으로 변경, 2022년 국립교향악단으로 명칭 변경), 국립현대무용단(2010년)이다.

국립예술단체들은 각기 다른 형태로 예술적 임무를 수행해왔다. 각 단체의 운영과 단체장 임명, 사회적 역할 이행 관련 문제들이 끊임없이 예술 현장으로부터 제기되어 왔지만, 현장의 고질적인 문제들은 묻혔다. 이제 각 단체의 필요 여부를 포함해 단체들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활동할 것인지, 고질적인 문제들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논의할 때다.

그러나 그것은 예술가와 국민, 즉 주체들의 몫이다. 예술가와 국민의 의견 수렴과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통해 논의해야 할 사안이지, 문체부와 소수가 일방적인 통합으로 내리꽂을 일이 분명히 아닐 것이다.

이번 갑작스러운 발표에 대한 문제 제기가 예술 현장에서 진행되고 있다. 한국춤비평가협회는 지난달 27일 성명서에서 그 문제점과 우려 사항을 지적했다. 또 무용예술가들은 ‘예술의 자유를 지키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국립현대무용단 통합(통폐합) 반대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하루에 1100명 이상이 서명하고 있다.

모든 생명체는 생명을 보존하고 증식하고자 늘 혁신한다. 물론 특별한 경우에는 외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병들어서 썩고 죽게 생겼을 때는 칼을 대야 한다. 원인을 정확히 진단해 썩은 세포를 도려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이 그때인가? 가뜩이나 정국이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모든 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는데, 국가 예술정책의 중요한 사안을 밀어붙인다고 될 일인가? 예술 분야에 더 급한 문제는 없는가? 이런저런 논의 없이 느닷없이 국립예술단체 통합안을 발표한 이유는 무엇일까? 혹여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것은 아닌지 실로 우려된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불화>에서 “몫 없는 이들의 몫”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는 몫 없는 이들이 자신의 몫을 찾아가는 과정을 일컫는다. 예술 또한 기존 감각체계를 뒤엎고 보이지 않던 존재를 드러내고 말할 수 없던 목소리에 목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럴 때 예술과 정치는 기존 위계와 체계를 재구성하고, 국민들은 주체화한다. 감각의 평등이란 예술이 새로운 주체성을 구성하는 힘을 말한다. 우리는 이 개념으로 예술에 대한 기존의 이해 방식을 쇄신하고, 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삶, 예술, 민주주의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절실한 때다. 이것은 예술가와 국민들의 책무이자 과제이다.

예술은 삶을 주체화하고 삶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힘이고, 몫 없는 이들의 몫을 찾게 하는 길이다. 예술 생태계의 자율권을 깨는 문체부의 그 어떤 정책도 국민과 예술가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체부는 부디 예술의 주체들이 가지고 있는 그 몫과 힘을 인정하기를 바란다. 예술가와 국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마련해주길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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