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의 그림자, ‘뒤집힌 세계’의 괴물들

2025-01-23

대통령 윤석열의 난동을 보면서 넷플릭스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1980년대 미국이 배경인 드라마에는 두 개의 세계가 나온다. 현실 세계와 이 세계에 거꾸로 붙어 있는 ‘뒤집힌 세계(The Upside Down)’다. 뒤집힌 세계는 얼핏 현실 세계를 닮았지만, 최강 빌런 베크나를 비롯해 괴물들이 지배하는 음침한 곳이다. 괴물들은 인간을 납치하거나 정신을 조종하는 등 끊임없이 현실 세계를 위협한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대한민국에서도 ‘뒤집힌 세계’의 위협을 목격하고 있다. 무장 군인들이 국회에 난입하는 모습을 지켜본 게 끝이 아니었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은 법원의 체포영장을 부정하면서 관저를 요새화하고, 수사에 응하지 않는 등 갖은 수단을 써서 제 한몸을 지키려 하고 있다. 명색이 검찰총장이었던 자가 거짓말과 궤변, 말뒤집기와 남 탓으로 법치주의를 흔들고, 아스팔트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려 하고 있다. 그의 탈법·무법 선동은 결국 법치의 보루인 법원에 대한 난입·폭력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불렀다. 무식한 줄만 알았더니 사악하기까지 하다.

지난 대선에서 손바닥에 ‘왕(王)’자를 적고 나왔을 때 알아챘어야 했다. 윤석열은 “짐이 곧 국가”인 전제군주를 꿈꾸는 자였고, 유신이나 전두환 독재를 흠모하는 자였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그의 부친이 ‘아들이 뭐 모르고 자라서 좀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에 너무 집착한다’면서 지인에게 따끔한 충고를 부탁한 것은 ‘금쪽같은 내 새끼’를 차마 어쩌지 못하는 회한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윤석열이 술과 무속, 유튜브에 중독돼 있다는 건 부차적인 문제다. 왕 놀이에 빠져 구름 위에서 살고 있다는 게 본질이다. 윤석열이 관저에서 체포된 뒤 공개된 녹화영상 담화에서 그의 첫마디는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였다. 내란 사태로 나라를 망치고, 시민들을 불안에 빠뜨린 것에는 전혀 괘념치 않는 모습이 섬뜩하다.

대통령경호처가 윤석열 생일에 맞춰 불렀다는 ‘헌정곡’은 또 어떤가. 윤석열은 “새로운 대한민국 위해서 하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대통령”이고 “84만5280분 귀한 시간들 오로지 국민만 생각한 당신”이다. 김건희에 대한 맹목으로 ‘조선의 사랑꾼’ 소리를 듣는 윤석열의 주변엔 ‘조선의 아부꾼’들이 넘쳐난다. 권력에 중독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을 것이다.

생일 행사를 기획한 김성훈 경호차장은 “친구 생일파티, 축하송 안 해주냐”고 되물었는데, 그건 공사 혼동이자 권력사유화 사례일 뿐이다. 김 차장은 또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했는데, 그게 바로 윤석열 일당이 살아가는 ‘뒤집힌 세계’다. 그 세계는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의지는 사라지고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겠다는 욕망만 넘치는 곳이다. 자신의 실정은 모두 반국가·종북좌파세력 탓이며, 이들을 잡아다가 방망이로 족치면 다 해결된다는 망상이 가득한 곳이다.

한국 민주주의는 국회 계엄 해제와 탄핵안 가결, 윤석열 체포와 구속을 이뤄냈지만 갈 길이 멀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과 법원의 내란죄 판결까지 윤석열 일당이 또 어떤 꼬투리를 잡아 국가 분열과 국민 불안을 부추길지 모른다. 지금도 극우세력은 계엄을 대통령의 정당한 권한 행사라 우기고, 법원 난입·폭력 사태를 십자군 성전에 빗대고 있다.

헌정질서를 유린하고 법치주의를 무시한 자들에겐 철퇴를 내려야 한다. 정의를 짓밟는 자들을 단죄하지 못한 후과를 일제강점기와 해방 정국, 군사독재 시절 등 한국 현대사에서 수차례 보아왔다. 어설픈 양비론이나 동정론은 제2, 제3의 윤석열을 키울 수 있다.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괴물들은 ‘뒤집힌 세계’에서 슬금슬금 기어나와 현실을 흔들고 미래를 인질로 잡을 것이다.

윤석열은 서울구치소의 3평 독방에서 지내고 있다. 당분간 구치소 담장 밖으로 나오기 힘들 것 같으니, 선동질은 그만하고 그곳 생활이라도 알차게 보내길 바란다. 이참에 술도 끊고 사색과 성찰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으면 한다. 한 달 가까이 미루던 안과 치료도 했다고 하니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판매가 급증했다는 민주주의와 헌법 관련 책들을 읽는 것도 좋을 것이다. ‘뇌썩음’을 유발한다는 유튜브 동영상에 빠질 수 없게 된 걸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길 바란다. 예전에는 ‘죽어야 중독이 끝난다’는 말이 있었지만, 그 정도 상태는 아니리라 믿는다. 아 참, 손바닥 ‘왕’자가 아니라 배에 ‘왕’자가 생기도록 복근운동을 하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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