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년 전쯤 교토의 관광 거리에서 한 겹 안쪽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일본인과 함께 한 여행이라서 외국인이 찾기 어려운 식당과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말하자면 00 지역의 봄바람을 맞고 자란 나물, 00 지역의 날씨를 견딘 무로 만든 단품 요리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길을 걷다가 스모 선수들을 만나고 게이샤도 만났다. 엄밀하게는 구경한 것이다. 그 나라 고유의 문화에는 알 수 없는 아우라가 있어서 귀한 느낌을 받게 된다.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상영하고 있는 영화 <국보>를 보는 내내 그때 거리에서 만난 게이샤가 어른거렸다. 단아하고 귀하고 예술가의 기운으로 가득했던 사람.
영화 <국보>는 재일 한국인 영화감독 이상일의 작품이다. 일본 전통 예술 가부키를 배경으로 가부키에서 여성 역할을 하는 남자 연기자 온나가타의 삶을 다루었다. 온나가타가 혈통 중심의 전통에서 재능을 인정받아 국보가 되는 여정을 그린 영화이다.
가부키는 노래와 춤, 그리고 기술과 연기를 하는 예술이다. 일본의 중요무형문화재이고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다. 가부키는 여성의 역할도 남성이 하는 공연예술로 등장인물 전체가 남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온나가타의 옷차림은 과장되고 화려하고 많은 장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의상을 교체하거나 벗겨주는 역할을 하는 무대 보조가 무채색 옷을 입고 등장한다.
영화에서 중요한 배경은 가부키 가문의 세습 전통으로, 아버지의 온나가타 역은 핏줄인 아들에게만 전수한다. 주인공 키쿠오는 야쿠자 집안에서 태어난다. 그러나 집안이 다른 조직원에게 피습당하고 홀로 남자 가부키 명문가 집안에서 양자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가문의 친아들과 함께 온나가타로 혹독한 수련을 시킨다. 두 사람은 형제이지만 라이벌로 키워지는데. 가문의 친아들은 혈통을 이어받은 자이고, 키쿠오는 재능을 가진 자이다. 이 둘을 통해 전통이 요구하는 의무와 여성을 연기하는 남성,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정체성들을 보여준다.
온나가타의 특징은 흰 얼굴 화장이다. 실제의 피부가 보이지 않도록 목덜미 대부분까지 하얗게 칠해서 마치 인형처럼 느껴지게 한다. 수동적이고 연약해 보이는 여성성을 드러내기 위한 눈썹과 입술 화장을 한다. 여성이 입는 기모노는 실제 복장보다 더 무겁고 겹이 많은 무대의상을 사용한다. 그래서 검은 옷을 입은 무대 보조가 배우의 움직임에 따라 옷을 들어준다. 우리나라 결혼식장에서 신부의 드레스를 대신 들어주고 펼쳐주는 역할을 하는 것과 같다. 머리는 가발은 사용하고 상당한 무게가 있어서 무대 뒤로 나오면 제일 먼저 가발부터 벗겨주는 장면이 나온다.
3시간 동안 이런 과정을 자세히 다루는 영화 국보는 가부키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 흥미로운 영화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드는 생각은 중요무형문화재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다는 것의 의미이다. 혈통 중심으로 가부키를 이어가야 한다는 조건, 가부키에 여성의 역할을 남성이 하는 17세기적 발상, 여성성에 대한 수동적 표현 같은 것들은 시대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국보’로 지정된 사람의 삶을 형해화시킨다는 것이다.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는 관광업으로 먹고사는 도시이다. 이 도시는 1991년 유네스코가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으로 지정해 유고슬라비아의 폭격으로부터 살아남는다. 도시는 남았으나 물가는 다른 지역의 30% 이상 비싸고 옛 시가지에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다. 관광객의 사진으로 남아 구경거리가 되고 있다. 마치 ‘국보’가 된 온나가타처럼 홀로 17세기에 남겨진 것처럼 느껴진다. 예술과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질문하게 되는 영화이다.
조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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