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미니소 매장은 해리포터 캐릭터 제품을 사러 온 20대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이들은 “미니소가 중국 기업인 건 몰랐다”면서도 개의치 않아 했다. “초등학교 때나 ‘중국산 나쁘다’ 했죠. 샤오미 가습기·공기청정기를 굉장히 만족하며 쓰고 있는 걸요.”
# 중국 가전기업 샤오미가 지난 6일 한국 지사를 설립하고, 15일 스마트폰·TV·로봇청소기 등 22개 신제품을 국내 출시했다. 조니 우 샤오미코리아 사장은 “한국에 오프라인 매장을 열어 샤오미 제품 체험과 구매, 사후 관리(A/S)까지 모두 제공하겠다”라고 말했다.
‘제3차 차이나 공습’이 시작됐다. ‘대륙의 실수, 반값 보조 배터리’로 대표되는 2010년대 중반의 1차 공습, ‘빠른 직구’를 앞세운 알리·테무의 2020년대 초반 2차 공습에 이어, 품질·디자인을 무기 삼은 중국 제품이 2025년 벽두부터 한국인의 일상에 깊이 침투하고 있다. 중국산의 전략도, 소비자 시선도 예전과 사뭇 달라졌다. 로봇청소기를 포함한 중국산 청소기 수입 규모는 4년 새 두 배가 됐다.
샤오미 프리미엄 폰, 미니소 ‘최애템’ 한국 상륙
지난달 서울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 옆에 문을 연 ‘중국판 다이소’ 미니소 매장은 ‘최애캐(가장 좋아하는 캐릭터) 소품’이 가득한 곳으로 입소문이 났다. 매장 한쪽 벽면은 해리포터, 맞은편은 토이스토리·미니언즈 등 디즈니 캐릭터의 가방·우산·필통·쿠션 등 온갖 소품이 가득 진열돼 흡사 해외 놀이공원의 기념품 가게 같았다. 모두 디즈니 로열티를 지급하고 제작한 공식 제품들이다. 박모(30) 씨는 “미니소에서 디즈니 물품을 판매한다고 해서, 경기도 용인에서 찾아왔다”라고 했다. 캐릭터 인형을 고르던 대학생 이모(21) 씨는 “이미 중국 제품을 많이 쓰고 있어서 거부감은 안 든다”라고 했다.
오는 22일부터 국내 이동통신 3사 매장에서 샤오미의 5G 스마트폰을 개통할 수 있다. 그간 샤오미는 저렴한 제품 위주로 총판을 통해 판매하며 부실한 A/S로 악명 높았는데, 이제 전담 고객서비스센터와 매장을 통해 사후 관리도 직접하겠다고 나섰다. 또한 “서버는 유럽과 싱가포르에 있어 중국으로 데이터가 전송되지 않는다”라며 비호감 요인인 정보 보안 문제도 언급했다.
中 TV·에어컨 A/S? 쿠팡이 해결
지난 2015년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될 때만 해도, 업계는 국내 가전산업 영향은 적을 거라고 봤다. 1년 뒤(2016년) 소비자원 설문조사에서 국내 소비자는 중국산 보조배터리(51%), TV(12%), 스피커(11.5%)를 주로 샀고, 가격대는 3만원 미만(35%)과 3만~5만원(26%)이었다.
그러나 이제 ‘품질의 중국’이란 말도 어색하지 않다. 1등 공신은 ‘로보락’ 로봇 청소기로, 회사는 지난해 말 기준 한국 시장 점유율이 40% 중후반대라고 주장한다. 지난 2021년 국내 판매를 시작한 이듬해부터 국내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다. 로보락 관계자는 “매년 매출의 7% 이상을 청소 가전 연구개발(R&D)에만 투자한다”라고 밝혔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청소기의 국내 수입금액은 4억7801만 달러(약 6959억원)로 전년보다 43% 늘었고, 지난 2020년(2억1911만 달러)의 2.2배가 됐다.
국내 중국 가전 판매가 소형 위주에서 TV·에어컨 등 고가·대형 품목으로 넘어온 데에는 쿠팡의 ‘로켓 설치’도 한몫했다. TCL TV나 하이얼 에어컨 등을 쿠팡에서 구입하며 배송, 설치, 반품, A/S까지 신청할 수 있어서다. 최근 2~3년 새 알리·테무 같은 중국 e커머스 업체들이 저가 공세를 벌이고, 쿠팡은 가구·가전 설치 물류 서비스로 차별화하고 있다. 중국 가전이 한국산에 비해 열세인 서비스 격차를 쿠팡이 해결하는 역설이 벌어지는 셈이다.
한국 가전, ‘신기술·생태계’ 격차 벌려야
삼성전자·LG전자는 해외 시장에서 이미 중국 가전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기술 우위를 지닌 영역에서 선도적으로 신규 시장을 만들고, 하드웨어를 넘어 콘텐트·플랫폼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야 현재 3~4%대인 가전사업 영업이익률도 끌어올릴 수 있다.
LG전자는 자체 스마트TV 플랫폼인 웹OS를 키워 지난해 이 사업으로만 매출 1조원을 넘겼다. 최근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엑스박스(Xbox)와 협력해 웹OS에 대작 게임 콘텐트를 대폭 강화했는데, 타 제조사 TV에도 웹OS를 탑재해 ‘플랫폼 기업’이 되겠다는 포부다.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는 중국보다 기술 우위를 지닌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에서 새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특히 게임용 OLED 시장 성장세가 가파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 1~3분기 게임용 OLED 모니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배 성장해, 같은 기간 LCD 게임 모니터 성장률(32%)을 압도했다. ‘발로란트’ 같은 고사양 게임이 유행하면서 게이머들이 저가인 LCD보다 고가 OLED 모니터에 지갑을 열어서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4월 게임 장르에 따라 주사율·해상도를 변환할 수 있는 31.5인치 게이밍 OLED 패널을 업계 최초로 양산하기 시작했다. 삼성디스플레이도 지난 CES 2025에서 최고 주사율의 게임용 QD-OLED 모니터 신제품 2종을 공개했다.